7장
“그게 지금 달라진 거라고 생각을 해?”
“어?”
“네가 취업을 한 상황도 아니잖아. 우리 두 사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아무도 모르지.”
은비의 물음에 상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러한 것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더 떠나서라도, 우리 두 사람이 좋으면 그냥 다시 사귈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만일 지금 너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 두 사람 여전히 미래라는 것이 없잖아. 이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거야. 나는, 나는 이런 식은 정말로 싫어.”
“누나.”
“고마워.”
은비는 상현을 보면서 밝게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우리 두 사람. 정말로 아니니까 말이야. 이건 아니니까 말이야.”
“왜 아니라는 건데?”
“말을 했잖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미래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야. 이런데 어떻게 사귀어?”
“우리가 만들면 되잖아.”
“싫어.”
은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나도 내 미래를 대신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내가 누군가에게 미래를 만들어주고 그러한 것은 싫단 말이야. 지쳤어. 이런 것은 이제 나랑 어울리지 않아.”
“누나.”
“네 잘못이 아니야.”
은비는 상현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상현이 너랑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라면 지금 네가 하는 말에 동의를 하고 이해를 해주기도 할 거야.”
“그럼 누나는?”
“나는 나이가 많잖아.”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나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넘었어. 그냥 서른이 넘은 것이 아니라 만으로도 이미 서른이 넘었다고.”
“누나.”
“그런 내가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을 하는 것은 분명히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나의 청춘을 다시 한 번 사랑에 모두 걸기에는 나는 너무 나이가 들었어.”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은비는 상현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이 미래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람 자체는 좋았다.
“나도 너랑 다시 시작을 하면 좋겠어.”
“그러면 하면 되는 거잖아.”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그럴 나이가 어디에 있어?”
“여기에 있어. 이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사회라는 것이 만든 거고. 나도 거기에 타협을 하고 싶어.”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은비를 보면서 상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은비가 이럴 줄 몰랐다.
“미안.”
“아니, 누나가 미안할 것은 아니지. 누나의 말처럼 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야.”
“나라도 미래가 있으면 달랐을 거야.”
은비는 상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도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이 언니가 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것은 미래가 아니잖아.”
“왜? 앞으로도 할 수 있잖아.”
“내 꿈은 이런 것이 아니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꿈을 가진지 너도 알고 있잖아.”
“응.”
상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는 다른 누구보다도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을 할 거야. 비록 지금은 상황이 안 되지만 말이야.”
“내가 누나의 곁에서 누나를 지켜주면 안 되는 거야? 나는 누나를 제대로 위로를 할 수 있다고.”
“이런 건 싫어.”
은비는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네가 나에게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야. 너는 내 삶에 있어서 최고의 사람이니까.”
“그런데 왜?”
“말을 했잖아.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단 말이야. 우리는 이걸로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라고. 그러니까 상현아 우리 다시 말도 안 되는 시작을 하려고 하지 말자.”
“누나는 왜 그렇게 도망을 가는 거야?”
“어?”
상현의 물음에 은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결국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 확신을 할 수 없어서, 그러니까 겁이 나서 물러난다는 거 아니야?”
“상현아.”
“제발 이러지 말라고.”
은비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상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메리카노의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도 줘.”
상현은 대답을 하지 않고 커피를 은비에게 건넸다. 커피처럼 마음이 서늘하고 아렸다. 씁쓸하고 힘들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잖아. 나도 너를 충분히 좋아하고 있지만 우리 두 사람이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은 바보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한 번 실수를 한 사이인데 다시 사귀기 시작을 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우스운 거 아니니?”
“왜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오히려 한 번 실수를 했으니까 더 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상현아.”
“나는 누나가 그렇게 숨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 이전의 그 당당하던 조은비는 어디로 간 거야?”
“당당하던 조은비?”
“그래. 당당하던 조은비.”
상현은 슬픈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던 그런 조은비는 이제 없었다. 그저 세상이라는 것에 적당히 타협을 한 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잊은 은비만 있었다.
“그런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아?”
“내가 뭐가 부끄러워?”
“그런 모습이라는 것 말이야. 이전에 누나가 어릴 적에도 누나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
“이게 내 탓이니?”
“누나의 탓이라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최소한 누나의 사랑에 대해서라도 모험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모험을 하기 싫어해? 모험을 하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고 그래?”
“응.”
은비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 거야.”
“누가 그래?”
“내가 만일 일을 하지 않으면 상현이 네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니?”
“당연하지.”
“이런 아르바이트로는 말고 말이야. 너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삼 년 이상이 남았잖아. 그 동안 나는 그저 너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있으라고? 그리고 행여나 그 전에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나는 그 동안 너를 사랑하면서 시간을 버리는 거라는 생각을 안 하니?”
“시간을 버린다고?”
상현은 눈썹을 모으면서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은 이전처럼 그렇게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그렇게 쓸 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게 내 마음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응.”
은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현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을 후회 안 하는 거야?”
“후회를 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마음을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이게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누나의 말은 누나랑 나랑 연인이 된다면, 그 시간이 그저 쓰레기라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러면?”
“아무리 우리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되더라도, 그것이 장밋빛으로 데리고 가지는 못한다는 거야.”
은비는 고개를 저으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지금 아무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상현을 잡을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나이가 들었고, 어려운 일이었다.
“너를 사랑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디에 있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상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채 기르지 않아서 짧은 머리가 까끌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나는 너랑 이 좋은 사이를 다시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지금 이 대화는 잊을게.”
“나는 싫어.”
“어?”
“나는 싫다고.”
상현은 붉게 변한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그런 상현을 보는 은비 역시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상현이 너 왜 그러니?”
“사랑하니까.”
“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말 전혀 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갑자기 너 왜 이러는 건데? 이유를 말해 봐.”
“그 사람이 누나를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누구?”
“류 팀장이라는 사람.”
“류 팀장이?”
“응.”
상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비는 당혹스러웠다. 그 사람이 그런 마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거랑 이런 식으로 네가 나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나는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을 하나도 몰랐거든. 그런데 지금 누나를 보니까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이 맞더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니, 누나의 곁에는 내가 있는 것이 맞더라.”
“싫어.”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상현이 지금 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나의 곁에 있는 것이 싫어서 그런 식으로 사랑한다고,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아니야.”
상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이 말이야.”
“그런 말이 아니야.”
“그럼 왜 조금이라도 전에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않은 건데?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누나가 나를 밀어낼 테니까.”
상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켰다. 그런 상현을 보며 은비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우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미련이 남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누나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했던 거잖아. 그렇다면 누나는 나보다 훨씬 더 마음의 정리가 잘 된 거 아니겠어?”
“너는 정말.”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현이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아프게 할 줄도 몰랐다.
“너는 내가 너에게 이별을 고했기 때문에, 여전히 너보다 덜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응.”
상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말이야. 누나는 그래도 그 입장에 대해서 선택을 할 수 있던 사람이었잖아. 하지만 나는 거기에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저 누나의 통보를 당한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래서 아팠다고.”
상현의 표정을 본 은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와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자.”
“나 많이 아팠어.”
“그럼 왜 잡지 않았어!”
“뭐라고?”
“왜 잡지 않았냐고.”
갑작스러운 은비의 물음에 상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 내가 너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 것은 맞아. 그렇다면 너도 한 번은 나를 잡으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너는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자고 했잖아.”
“그게 나를 위해서야?”
“아무튼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아무튼 너는 나를 붙잡으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거잖아.”
“미치겠네.”
상현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은비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몰랐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누나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냥 헤어진 것뿐이라고. 그런데 내 잘못이라고?”
“응.”
은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이 너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너무나도 우습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너무나도 우스워.”
“내가 뭐?”
“그 시절에 내가 너의 사람일 때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그 상황에서 네가 나를 잡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노력을 했다면 우리는 달라졌을 거야.”
“그건 누나의 잘못이지.”
“뭐라고?”
“그렇게 내가 누나를 다시 한 번 잡기를 원했다면 적어도 내가 누나를 만날 수 있을 때 했어야지.”
“그래서 내 잘못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야. 그 상황에서 누나에게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누나도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누나는 그저 일방적인 통고였잖아.”
“싫다고라도 해야지.”
“내가?”
상현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코웃음을 쳤다. 군대에 있을 때 차이는 사람들은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들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좌절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현은 다짐을 했었다. 은비가 만일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은비를 이해를 해주자고.
“나는 정말 너를 위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러고 나서 너에게 헤어지자고 한 거였다고.”
“그러면 더 나를 기다렸어야지. 아무리 나를 기다리는 것이 막막하다고 하더라도 나를 기다려야지.”
“내가 너를 어떻게 기다리니? 네가 나에게 무슨 미래라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그런데 내가 너를 도대체 무엇을 믿고 기다릴 수가 있어. 네가 그런 확신을 조금이라도 줬어야 할 거 아니야.”
“내 잘못이네.”
상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와 함께 있을 때 결혼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중에 은비와 가정을 꾸리면 즐겁겠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그 단계나 그러한 것을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누나에게 아무런 믿음도 주지 못한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모두 내 잘못이야.”
“상현아.”
“아무튼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말이야. 그렇게 과거에는 누나를 놓았더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지금은 아니라니?”
“누나를 잡을 거라고.”
상현의 표정에 은비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런 거 싫어.”
“누나에게 묻는 것이 아니야. 다만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포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상현아.”
“전에 어쩌면 누나랑 내가 사귀게 된 것이 이상하게 쉽게 사귀게 되어서 그럴 지도 몰라.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서로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상현의 말이 맞았다. 그 시절 누군가가 누군가에 첫 눈에 반하거나 그러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면서 서로를 다시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누나를 좋아한다고 먼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야. 그래야 달라질 테니까.”
“달라지지 않으면?”
“그것은 내가 정말로 매력이 없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누나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어떻게?”
“사랑이라는 확신이 드니까.”
“확신이 든다고?”
“응.”
상현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생각은 지금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 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결론을 내렸다.
“사랑이야.”
“상현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그저 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그러는 거라고.”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착각이야.”
은비는 힘을 주어 대답을 했다.
“지금 너는 오랜만에 나를 만나서 착각을 하는 것뿐이라고. 그리 우리 두 사람 사귀었던 사이잖아. 그래서 지금 더 오해를 하는 거야. 우리 두 사람이 사귀었던 사이였으니 말이야. 하지만 상현아. 그거 말 그대로 오해야. 그런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속이는 거라고.”
“그런 것이 아니면?”
“어?”
“그런 것이 아니면 어떻게 살 거냐고.”
상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은비를 바라봤다.
“너 정말 왜 이래? 상현이 네가 자꾸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네 얼굴을 볼 수가 없단 말이야.”
“알아.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 하지만 안 되는 걸. 나는 정말로 누나가 좋은 걸. 이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누나는 마음을 부정을 할 거야?”
“지금은 그저 장난이라고.”
은비도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상현이 너랑 지금은 그냥 처음이니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 그리고 너랑 나랑은 입장도 다르니까 말이야. 아무리 네가 남자라고 하더라도 우리 둘이 세월이 있으니까 내가 너보다 남자를 더 많이 만났을 거야. 나도 처음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평생 못 잊을 줄 알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추억이더라.”
“그래서 누나에게는 더 이상 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그러한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야?”
“그런 것이 아니야. 나에게 있어서 너는 평생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의미로 남을 거야.”
“그런데?”
“그것이 오늘에도 이어질 수 없다는 거지.”
“우리가 왜 이 시간에 서 있는 거야?”
“응?”
“내가 물었잖아. 이 시간에 있는 거냐고. 그런 힘든 것을 견디고 온 시간이 겨우 여기 밖에 안 되는 거야?”
“어떠한 것을 원하는 건데?”
은비의 물음에 상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떤 것을 딱히 원한다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거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나를 좋아해.”
“나도 네가 좋아.”
“그런 거 말고.”
“알아.”
상현이 역정을 내자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금 이 순간도 고민을 하고 있어. 그래도 여태 내 마음을 잘 알아주던 것은 김상현이었는데 이렇게 말이야.”
“그럼 나를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건 아니야.”
“어째서?”
“그렇다고 해서 행복할 거라는 보장을 해주는 것은 아니잖아.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어.”
은비의 말에 상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은비를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너무 미안해. 하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네가 가질 수 있는 것, 또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아무리 이리저리 계산을 해도 우리 두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어?”
갑작스러운 상현의 말에 은비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계산을 하는 거야? 사람의 마음이 좋으면, 그런 거면 그냥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기엔 너도 이제 어른이 아니니?”
“아니야.”
상현은 고개를 흔들며 가만히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상현의 태도가 변한 것을 안 은비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상현아.”
“나는 계산을 하기 싫어.”
“나도 계산이 싫어.”
“그럼 계산을 하지 마.”
상현의 입술이 갑자기 은비의 입술을 덮쳤다. 상현을 밀어내야 하는데 은비는 상현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김상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입술이 떨어지고 은비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상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묘한 기분이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았다.
“미안해.”
“아니, 지금 미안하다는 말을 듣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말을 했잖아.”
상현은 아랫입술을 물고 은비를 바라봤다.
“내가 누나를 좋아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한 거야?”
“응.”
“너 미친 거 아니야?”
은비는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현의 평소 행동처럼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뭐니?”
“나는 그 사람보다 부족하니까.”
“어?”
은비는 눈을 깜빡이며 상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상현이 누구를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류하라는 사람 말이야.”
“류 팀장님?”
“응. 그 사람은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잖아.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이 정말로 누나를 좋아한다고 행동을 하면 누나는 다시는 나를 바라보지 않을 테니까.”
상현의 고백에 은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대답을 해야 했지만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을 하자만 상현 같은 사람보다는 그런 사람이 더욱 어울렸으면 했다.
“봐. 누나도 지금 흔들리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나는 지금 그 누구도 사귀고 싶고, 그런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 제발 그만해.”
“그게 그 사람이어도 거절을 하는 거야?”
은비는 가만히 상현을 바라봤다. 솔직히 그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않고 여기에서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상현이 있었으니까.
“그런 것은 너랑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은비의 차가운 말에 상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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