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왜?”
“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누나.”
“우리 그만하자. 왜 이렇게 쓸모없는 감정싸움만 하려고 하는 거니? 우리 그냥 좋은 누나 동생을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고 싶은데 누나가 걱정이 돼.”
“걱정은 하지 마.”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상현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네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런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일단 네 마음은 어떻게 하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네가 정리를 했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는 사이는 아니니까.”
“모르는 일이지.”
상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그런 상현의 표정을 보는 은비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것은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은비는 방금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시 그 말을 주워 담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들어가자.”
“어.”
카페에 들어가니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은희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비는 황급히 은희를 도왔고 상현도 쓰레기통을 비웠다.
“무슨 일이야?”
“뭐가?”
“둘이 무슨 일 있는 거지?”
“아니.”
하지만 은희는 은비의 말을 믿지 않는 듯 미간을 모으고 은비를 바라봤다. 은비는 그런 은희의 시선을 피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뭘?”
“너 도대체 무슨 행동을 했기에 나도 제대로 못 보는 거냐고. 은비 너 무슨 사고를 친 것은 아니지?”
“아니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키스를 한 것을 알면 은희는 더욱 난리가 날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어떻게 둘이 같이 들어와?”
“앞에 있다가 만났어.”
“미안해.”
“어?”
“미안하다고.”
갑작스러운 은희의 사과에 은비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은희에게 다소 심하게 행동을 했었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
“네가 뭘?”
“언니가 그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 사람 이야기를 했으니까 말이야.”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었어.”
“그럼?”
은희는 계산을 하고 손님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리고 원두를 털어낸 후 다시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았다.
“나에게 화가 났어.”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이 바람을 펴서 헤어지게 된 거였잖아.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이 이상하게 밉지 않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도 사랑했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은희의 고백에 은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은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그게 정말이야?”
“응.”
은희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도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언니 결혼을 안 하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은희의 대답을 보면서 은비는 마음이 아팠다. 언니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너를 보면 더욱 화가 나는 것일 지도 몰라. 그렇게 여자 혼자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거든. 결국에 그런 마음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부질없는 거니까.”
“언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랬으니까.”
은희의 대답에 은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꼭 다물고 손님의 카드를 받아 계산을 했다. 그리고 일을 하는 내내 은희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 상현이를 좋아하는 이 마음으로 내가 아플 수도 있는 건가? 그런 것은 원하지 않는데. 하지만 지금 언니랑 내 상황은 다르잖아. 상현이는 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말이야. 언니의 그 사람은 언니를 사랑하지 않은 거고. 상현이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거고. 그러면 나는 언니랑은 다르게 기회가 있는 것 아닐까? 상현에게 기회를 줘도 되는 것 아닐까?
“카드 안 주세요?”
“아, 네.”
은비는 당황하며 카드를 건넸다. 은희는 그런 은비를 보면서 미간을 모으더니 가볍게 엉덩이를 때렸다.
“너 왜 그래?”
“아니야.”
“아닌 게 아닌데. 상현아.”
은희의 부름에 상현은 테이블 정리를 하다가 곧바로 카운터로 다가왔다. 은비는 그런 상현도 보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네. 누나. 부르셨어요?”
“카운터 네가 좀 봐. 지금 은비 상태가 말이 아니다. 얘, 지금 카운터 못 봐. 얘, 지금 너무 멍하니 있어.”
“아니야.”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좀 쉬어.”
상현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는 결국 카운터를 보지 않고 모아놓은 쓰레기를 밖으로 가지고 갔다.
“또 보네요?”
“아, 류 팀장님.”
은비는 당황스러웠다. 한 사람을 피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한 사람과 그녀가 만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도와드릴게요.”
“아니라고요!”
류하가 손을 계속 내밀자 은비는 자신도 모르게 까칠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럴 일도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은비 씨가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괜히 끼어든 것이죠. 미안합니다. 그럼 일 계속 하세요.”
“저기 류 팀장님.”
“네?”
“상현이에게 들었어요.”
“아.”
그제야 류하는 고민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듯 밝게 웃었다. 하긴 은비가 괜히 그를 밀어낼 리가 없었다.
“그래서요?”
“그러지 말아요.”
“네?”
은비의 말에 류하는 당황스러웠다. 이건 무슨 말일까?
“그게 무슨 말이죠?”
“상현이가 류 팀장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말을 해주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류하는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것, 오히려 마음을 숨기는 것이 바보였다.
“은비 씨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그러지 마시라고요.”
“그럴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가 여유가 없어요.”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마음에 빛이 들어올 여유가 있으니까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은비 씨는 아닙니까?”
“네. 저는 여유가 없어요. 쉴 틈이 없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다가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만 안 되는 겁니까?”
“네?”
류하의 질문에 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 꼬맹이도 안 되는 겁니까?”
“아, 상현이요.”
“네. 그 친구 말입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현이를 보면 분명히 기분이 좋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상현이에게는 마음이 열릴 지도 몰라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요.”
“겨우 삼 년 아닙니까?”
“거기까지 아시는 거예요?”
“네.”
류하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카드는 모두 사용을 해야 했다.
“그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도 이제 일 년이 넘은 시간이고 말이죠.”
“그래도 상현이랑 저랑은 시간을 견디고 그 사이에 인연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류 팀장님의 마음도 참 고맙지만, 류 팀장님을 받아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히 상현이에요.”
“이것 참.”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고백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거절을 당할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고백을 할 걸 그랬습니다.”
“류 팀장님.”
“그 동안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지도 않는, 아니 마실 줄도 모르는 커피를 샀습니다.”
“커피를 안 마시세요?”
“싫어합니다.”
“이런.”
류하의 말에 은비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희생을 했다.
“그러면 왜 그러셨어요?”
“당신이 알아봐주는 것이 좋았으니까요.”
“류 팀장님.”
“사실은 지금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직 은비 씨에게 다가가기에는 친하지 않은 사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주의를 하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나타났더라고요.”
“상현이요?”
“네.”
류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은비가 좋았다. 그리고 일 년이 넘는 동안 은비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다. 이런 식으로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저 사람도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상현이가요?”
“네.”
이 사람도 알 정도라면 상현이는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상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흔들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고백을 하신 거예요?”
“네. 빼앗길 것 같았으니까. 나보다는 당신의 곁에서 오래 있는 그 꼬맹이가 유리해 보였거든요.”
“그럼 어차피 잘 된 거네요.”
“네?”
갑작스러운 은비의 대답에 류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류 팀장님이 정말로 저를 좋아하셔서 고백을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었잖아요. 그저 상현이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 마음을 먼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고백을 하시고 만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류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하는 것은 물론 잘못이었지만, 이런 오해도 싫었다.
“저는 당신이 정말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당신의 마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되셨잖아요.”
“그 꼬맹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류하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꼬맹이가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본 것 보다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나에게 말을 하는 순간 알았습니다. 아, 만일 내가 은비 씨랑 좋은 사이가 되더라도 이 꼬맹이는 걸림돌이 되겠구나.”
“걸림돌이요?”
“은비 씨는 모를 거예요. 저 꼬맹이가 얼마나 용감한지 말이에요. 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하더라고요.”
“협박이라고요?”
“네.”
은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 불안했지만 모두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사실 그런 식의 유치한 협박은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서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래도 그 녀석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니 정말 진심이 묻어나더라고요.”
“진심이라.”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상현과 이야기를 하면서 녀석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랑 데이트를 하지 않을래요?”
“네?”
갑작스러운 류하의 물음에 은비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어차피 은비 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은비 씨에 대한 마음이 사실이니, 은비 씨와 데이트를 하고 싶습니다.”
“류 팀장님.”
“지금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은비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좋다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조금 생각을 하시죠.”
“달라지지 않으면요?”
“그래도 할 수 없는 거고요.”
“그렇게 자신이 넘치세요?”
“네.”
류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상현이 은비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리 작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상현과 붙어서 은비를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제 마음에 대해서 류 팀장님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은 그리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닌데요? 별로에요.”
“은비 씨의 마음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죠.”
“변하지 않아요?”
“네.”
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의 고백은 원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빠르게 고백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제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은비 씨가 거절을 하더라도 한 번 더 다가설 겁니다.”
“그래도 안 변하면요?”
“언젠가는 저도 분명히 포기를 하겠죠. 하지만 그것은 제 마음이 변해서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요. 조은비 씨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포기를 할 겁니다.”
은비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상현도 그렇고, 류하도 그렇고 그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에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은비 씨에게 왜 이러다니요?”
“솔직히 말을 해서 제가 예쁜 것도 아니고요. 키가 큰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직업이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상관이 있어요.”
은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류 팀장님을 볼 때마다 그저 부럽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류 팀장님이 남자로 보인 적 한 번도 없어요.”
“한 번도 없습니까?”
“네.”
은비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류하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도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사실 저희 언니도 류 팀장님이 저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역시 은희 씨가 눈치가 빠르군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아닐 거라고 했어요.”
은비는 류하의 눈을 보면서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를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류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류 팀장님이랑 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니까요. 저는요. 커피를 팔고요. 커피도 브랜드가 없어서 안 팔릴까봐 가격도 낮게 하고 있어요. 돈이 많이 남을 것 같죠? 한 달에 제가 백만 원 조금 넘게 벌어요. 그런데도 이게 참 다행이에요. 그래도 나는 일자리가 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류 팀장님은 아니시잖아요. 류 팀장님은 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사실 정도의 여유는 있으신 분이잖아요. 그런 사람하고 저하고요? 절대로 그림이 안 그려져요.”
“그런 것을 내가 다 이해를 한다면 어떻게 할래요? 나는 모든 것을 다 이해를 할 수 있다고요.”
“처음에는 이해를 하실 지도 몰라요.”
은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류 팀장님도 이해를 하실 수 없다고 생각을 하실 거예요. 이런 것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해라는 것은 한 순간 지나고 말 것이 아니니까요.”
“은비 씨.”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말이에요. 저도 상현이 그 아이를 마음에서 완벽히 지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아직 마음에 있다는 겁니까?”
“네.”
은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류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단순히 자신이 은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문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을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은비의 마음이 여전히 자신이 없는 것이라면 자신 역시 계속 그녀에게 다가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안 되는 건가요?”
“꼭 그렇다는 것 보다는.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류 팀장님은 저와는 다른 곳에 사시는 분이니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요.”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은비 씨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은비 씨와 하나도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오늘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커피 값이 싸서 커피를 부담 없이 마신 것이 아니라 은비 씨가 좋아서 그런 거였어요. 저 역시도 커피 부담이 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너무 거리감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거리감을 둘 필요가 있는 사이는 아니니까요.”
“류 팀장님.”
“됐어요.”
류하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면서 은비의 말을 막았다. 여기에서 은비의 대답을 듣는 것은 잘못일 것이 분명했다.
“시간을 줄게요.”
“시간이요?”
“네.”
“무슨 시간이요?”
“지금 아마 은비 씨가 제가 하는 고백만을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 사람에 또 저까지, 고민이 함께 섞여서 지금 너무나도 쉽게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해요.”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은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은비는 긴장이 되었지만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은비 씨에게 시간을 드릴게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은비 씨가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은비 씨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을게요.”
“류 팀장님 저는.”
“아니요.”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은비의 대답은 단 한 가지가 분명했고, 그것은 싫었다. 다만 은비가 조금 더 생각을 한다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가 원하는 대답일 지도 몰랐다. 확신이 없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름을 움직이고 싶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부담스러워요.”
은비는 고개를 흔들면서 슬픈 눈으로 류하를 바라봤다.
“솔직히 류 팀장님하고 저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에요. 류 팀장님은 그저 저희 가게의 단골손님이실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요.”
“모든 연인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시작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모르고 시작을 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류 팀장님.”
“너무 부담은 가지지 말아요.”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은비가 자신을 선택을 하기를 원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비가 자신으로 인해서 커다란 부담을 느끼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틀린 거였다.
“저는 은비 씨가 어떻게 해서라도 은비 씨에게 좋은 방법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되는 건가요?”
“네. 그걸로 충분한 거예요. 그러니까 은비 씨. 너무 그렇게 겁을 내지 말고, 아니라고만 말을 하지 말아요.”
“하지만 상상이 가지 않아요.”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런 고백을 들으면 저랑 류 팀장님 사이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야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아요. 이건 류 팀장님이 생각을 해도 사랑이 아닌 거 아니에요?”
“지금부터 사랑이라고 말을 하기는 조금 이르죠. 은비 씨의 말처럼 은비 씨는 나를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팀장님하고 사겨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 한 번 데이트를 하자고 말이에요. 그러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모르면요?”
“그럼 아닌 거죠.”
류하는 밝게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류하의 태도에 은비는 한숨을 토해냈다.
“솔직히 저 같은 사람에 류 팀장님 정도의 능력이면 되게 괜찮은 남자라는 것 잘 알아요.”
“절대로 그러지 말아요.”
“네?”
갑자기 류하가 목소리를 높이자 은비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은비 씨가 자신을 모자라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싫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은비 씨는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그건 정말 부정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은비 씨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틀린 거니까.”
“류 팀장님.”
“그냥 저라는 남자 자체를 봐주세요. 은비 씨가 좋은데 말을 걸 수가 없어서 1년이나 가만히 봤던. 이 남자 말이에요.”
“네.”
은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하의 말처럼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답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봐요.”
“아니요. 오지 마세요.”
은비가 고개를 젓자 류하는 눈을 크게 떴다.
“왜 오지 말라는 거예요?”
“류 팀장님 어차피 커피도 마시지 못하는데 그러시는 것 싫어요. 이제 저는 류 팀장님의 마음을 알았으니 말이에요.”
“이제는 케이크를 먹으러 갈 거예요.”
류하는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은희 씨가 케이크는 잘 만드니까요. 그 케이크는 정말 우리나라 최고라니까요?”
“알았어요.”
류하의 능청에 은비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요.”
“네.”
류하는 은비가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카페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보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마음이 여전히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을 했다는 것이 조금은 즐거운 부분이었다.
“내가 그 꼬맹이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꼬맹이에 밀리지 않고 마음을 고백을 한 것이니까.”
류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자신이 여기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잘못 하다가는 은비를 더욱 뒤로 물러나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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