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계약서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요.”
“말도 안 돼.”
태식은 엄지를 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계약서 같은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세상에 자기 딸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자기 딸이잖아. 남도 아니고.”
“그러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매정해.”
“어떻게 할까요?”
태식은 자판기 커피를 모두 마신 후 종이컵을 구겼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 역시 어던 답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장지우 씨에게 사실대로 말해야지.”
“그거 너무 잔인하잖아요.”
“그럼 말을 안 해?”
“그것도 이상하죠.”
“그러니까.”
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한숨을 토해냈다. 말을 할 수도.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거였다.
“그래도 사장님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는 하셨으니까. 그래서 뭐라고 하실지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지는 않은 걸 텐데 말이야.”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더니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해.”
“네?”
“이번에도 너만 할 수 있어.”
“이게 뭐야.”
준재는 허무함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그도 다 알고 있었다. 오직 그만이 이것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너는 장지우 씨에게 진실을 말할 힘이 있잖아.”
“아저씨는 아니에요?”
“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태식을 보며 준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을 말해야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래야겠죠.”
“그래야지.”
태식은 준재를 향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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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뭐 병아리를 키워서 달걀 만들었어요.”
“아니.”
장사를 하기 전이었다. 미리 이런 말을 하면 하루 장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
“그쪽. 지우개 화장실 좀 갑시다.”
“네?”
“얼른.”
태식은 멍하니 있던 원종을 이끌고 식당을 나섰다. 지우는 뭔가 애매하다는 것을 알고 미간을 모았다.
“뭐야?”
“사장님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
낯선 이름. 지우는 그 세 글자가 주는 이질감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은화가 동정녀도 아니건만 한 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던 존재였다.
“아버지라.”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제가 괜히 이런 걸 받아와서.”
“이런 거?”
지우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준재는 아차 하다가 지우에게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것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계약서요.”
“계약서?”
“그러니까.”
준재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지우가 먼저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계약서를 읽던 눈이 흔들렸다.
“이게 뭐야?”
“죄송해요.”
“아니야.”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준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고작 정자 하나 줬다고 아주 대단한 유세였다.
“엄청난 사람인 모양이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화가 났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야 했다.
“만날게.”
“하지만.”
“만날래.”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준재의 머리를 헝클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너는 그저 내 부탁을 들었을 따름이야. 그런데 네가 이런 것을 가지고 미안해 할 이유는 없어.”
“제가 처음부터 사장님 아버지의 부탁을 듣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
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랬더라면 자신은 준재를 만날 일이 없었을 거였다. 지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계약서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네.”
“애들 들어오라고 해.”
“네.”
준재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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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레가 좀 많이 남았네.”
“그러게.”
여덟 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장사는 끝이 났지만 카레만 남은 상태였다. 다들 카레를 앞에 두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왜 이래?”
“그러니까.”
지우는 그제야 자신 때문에 이런다는 것을 깨닫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이 없었다.
“다들 왜 이렇게 내 눈치를 보고 그래. 이거 때문에 그래?”
지우는 계약서를 들어보였다.
“나 쓸 거야.”
“장돼지.”
“괜찮아.”
원종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아.”
“하지만.”
“괜찮대도.”
지우는 원종의 어깨를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맛있게 먹읍시다. 잘 먹겠습니다.”
지우는 열심히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들썩였지만 아무도 쉬이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셋 중 누구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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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죠.”
원종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딸이 부담스럽다고 해도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차라리 보지를 말지.”
“사장님이 어떻게 컸는지.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죠. 그 이상은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그거 되게 이기적인 거잖아.”
“그렇죠.”
원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해가 안 간다니까.”
“우리가 할 말은 아니죠.”
태식이 이렇게 말하자 원종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건 지우가 결정할 일이었다.
“지우가 그래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니까.”
“당연한 거죠.”
“오케이.”
원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쪽은 도대체 왜 나에게 그렇게 까칠한 겁니까? 되게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는 거 같아.”
“장지우 씨 옆에서 그쪽이 있는 것도 되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뭔가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좋은 친구니까요.”
“좋은 친구?”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준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내일 저녁에 오시면 뭐든 결정이 낫겠죠.”
“아. 또 출근을 하는구나.”
원종은 울상을 지으며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는 집으로 향했다. 준재는 태식을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왜 그래요?”
“내가 뭐?”
“왜 모든 사람하고 다 싸우려고 그래요?”
“꼬맹이. 이건 당연한 거야.”
“뭐가 당연한 건데요?”
“저쪽이 이상하게 행동을 하니까.”
“아저씨가 더 이상해요.”
준재는 입을 내밀고 검지를 흔들었다.
“아저씨야 말로 사장님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왜 자꾸 무슨 사이라도 된 것처럼 그러는 건데요.”
“내가 무슨 사이가 되면 네가 되게 실망을 할 거 같은데? 그래서 내가 장지우 씨에게 안 다가가는 건데.”
“다가가요. 마음대로.”
준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장님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니까. 사장님이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거라고요.”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태식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준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저었다.
“너 내가 진심으로 나서면 장지우 씨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을 거절할 사람이 있겠니?”
“마음대로요.”
준재는 볼을 한 번 부풀리고는 집으로 향헀다. 태식은 씩 웃어 보이고는 그런 준재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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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무슨 계약서를 쓰라는 거야.
“장지우는 아버지에게 그 어떤 금전적인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우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 정말 아버지 맞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볼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남의 삶에 들어오더니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보고 싶은 것이 우스웠다.
“나도 참 멍청해.”
이런 사람도 아버지라니.
“지우개.”
지우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무래도 지우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두 발로 서서 개인기도 선보였다.
“그런 거 안 해도 돼.”
지우개는 지우의 무릎에 올라서 그녀의 품을 파고 들었다.
“만나야겠지?”
지우개가 작게 짖었다.
“그래.”
이런 거지같은 것을 써서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뭔가 득을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냥 만나는 거였다.
“도대체 누구야.”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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