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안경, 채소만 끓여서 만든 국수
[맛있는 영화] 안경, 채소만 끓여서 만든 국수
Good - [카모메 식당]을 재밌게 본 사람
Bad – 느린 영화는 질색이야!
평점 - ★★★★ (8점)
[카모메 식당] 팀이 다시 모여 만든 [안경]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답답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런 류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선물이 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의 여유. 그 느릿함 같은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낯선 섬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고요하고 조용합니다.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냥 거기에서 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곳의 생활 방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울리지 못한 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일 겁니다. 휴식을 위해서 섬으로 간 ‘타에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바쁜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섬으로 떠났지만, 그곳 사람들의 어떤 친근함 탓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도시의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느릿함 섬에서 살 수 없을 겁니다. 저도 대마도 같은 곳을 가면 힘들더라고요. 제대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상황. 그리고 강제적인 휴식.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느린 여유에 서서히 젖어들고 그 삶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지만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서 겁을 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지금 내 손에 있는 것.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서는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 친구를 사귀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죠. 어른의 삶. 어른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그런 것들이거든요. 주인공은 서서히 그 삶의 방식에 젖어들게 됩니다. 알 수 없지만 다정한 아주머니, 그리고 느긋한 숙소의 주인. 또 툭툭 말을 던지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지닌 마을의 아가씨까지. 그들의 삶의 방식은 도시의 사람들하고 닮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슷하면서 다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서서히 그들의 삶에 젖어듭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그들의 삶에 동화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하나하나 자신이 삶에서 놓치던 것을 알아갑니다. 삶의 여유 같은 것을 잊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깨버리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기에 영화는 다소 지루한 편이지만 오히려 이 방식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억지로 주인공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부정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영화를 통해서 주인공이 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너무 극적일 경우에는 관객에게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던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 섬으로 떠난 이후 거기에서 적응하고, 마음을 열어간다는 것도 그리 흔한 설정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실은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사회가 그 휴식을 제대로 취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이런 생각은 금방 내려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를 채우기 위한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태워서 오늘을 보내는데 모든 것을 할애하려고 합니다. 그 안을 채우는 시간이 없는 채로 이 모든 시간을 보내게 되면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텐데 말이죠. 흔한 영화들처럼 섬에서 어떤 로맨스가 펼쳐지지도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제대로 된 휴식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을까요? 여유로운 삶, 그리고 채움에 대한 이야기 [안경]이었습니다.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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