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당신의 7일

권정선재 2018. 1. 2. 20:27

일주일이요?”

. 일주일입니다.”

가영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일주일,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좋아요.”

무조건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 .”

상유의 다소 까칠한 반응에 가영은 혀를 살짝 내밀고 해사하게 웃었다.

내가 원래 좀 이래요. 성격이 급해.”

.”

상유는 볼펜 끝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 정도로 반응할 일은 아니었을 지도 몰랐다. 너무 사무적일까.

그럼 몇 가지 묻겠습니다.”

. 좋아요.”

가영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상유는 그 동안 만난 망자와 다르게 유난히 밝은 가영을 보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신 거 맞죠?”

. 맞아요.”

가영은 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그 순간이 생각이 난 듯 한 번 몸부림을 한 후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 순간 너무, 이상했거든요.”

가영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길지도 않은 머리를 가지고 뭘 하는 건지. 상유는 이내 미간을 모았다. 그 순간 가영이 망자치고는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직업이 뭐였습니까?”

영호감독이요. 아니. 지망생.”

영화감독 지망생.”

상유가 자신이 하는 말을 따라하자 가영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상유는 미간을 가늘게 모았다.

뭐 하자는 겁니까?”

아니.”

가영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눈꼬리의 눈물까지 훔쳐냈다.

실패한 인생 주제에.”

실패요?”

실패한 거죠.”

가영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러는 말을 하는 것이 스스로 쓸쓸하기도 하지만 현실이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실패니까.”

뭘 하고 싶었습니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거?”

가영의 담백한 말에 그녀의 말을 받아쓰던 상유의 손가락이 멈췄다. 좋은 영화. 상유는 물끄러미 가영을 응시했다.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영화를 찍고 싶어요.”

그 시간으로 가능하겠습니까?”

. 일주일이면 가능해요.”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이젠 망자를 관리하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걸까? 그 시간을 가지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다니. 인간 세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많은 일이 필요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거 알고 있습니다.”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가영이 다급하게 말을 토해냈다. 그런 적이 있는 건가? 상유는 아랫입술을 물고 잘근잘근 꺠물었다.

시작도 해보지 못했어요. 늘 돈이라는 게 중요했어. 남의 돈으로 하다가 보면 엎어지기도 많이 엎어지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거 무의미하잖아요. 어차피 죽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그냥 뭐라도 해보고 싶어.”

“7일은 길지 않습니다.”

없는 거 보다 낫죠.”

가영의 대답에 상유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가영의 말처럼 하지 않는 것 보다야 나은 시간일 거였다.

뭘 해야 하는 건지. 뭘 할 수 있을 건지. 너무 어려운 시간들이었어요. 그거 되돌리고 싶어.”

다시 돌아가면 최선을 다 한다는 겁니까?”

. 그럴 거예요.”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꽤나 귀찮은 서류를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기분이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그 정도로 매력적인 일은 아닙니다.”

? 그게 무슨?”

그냥 그렇다고요.”

상유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 여자의 말을 듣는 것은 귀찮은 일이 생기다는 의미였다. 뭔가 기회를 주어야 하는 건가 싶다가 이내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깨어나는 겁니다. 이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겁니다. 영화감독. 아니 영화감독 지망생이었으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그렇겠네요.”

가영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좋아요.”

? 좋다니.”

돌아갈래요.”

가영의 말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펜으로 서류를 가볍게 두드리며 상유는 끙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가영은 눈을 반짝였다.

그거 데스노트 아니죠?”

데스. 뭐라고요?”

아니.”

대단하네요. 이 순간에 농담이라니.”

인간들이 보는 만화. 그게 생각이 난 것은 평소에 인간 세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 거였다. 상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순간에 농담을 하는 것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거였다.

고맙습니다.”

칭찬이 아니었다. 상유는 가영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칭찬으로 이해를 한 건가? 아니면 그저 농담을 맞춰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유는 한숨을 토해냈다.

농담입니다.”

. 농담이구나.”

상유는 허탈함에 그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망자를 관리하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자신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망자는 처음이었다.

그런 태도가 그다지 그족에게 유리하게 작용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식의 태도는 그만 하시죠. 죽음 이후의 순간을 너무 장난처럼. 그건 위에서 좋아하지 않아요.”

죽고 나서도 비위를 맞춰야 하나요?”

?”

그거 이상하지 않나?”

가영은 머리를 긁적이고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상유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망자가 걸리다니.

그거 불경한 소리입니다.”

이미 죽었어요.”

아니.”

그때 상유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밥 먹으러 갑시다.”

선재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상담을 하는 거야?”

.”

상유의 무뚝뚝한 대답에 선재는 어색하게 웃었다. 상유는 볼펜 촉을 넣으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

한 글자씩 끊어 말하는 상유를 보면서도 가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밝게 웃었다.

식사하고 오세요.”

오후에도 일이 많습니다.”

상유는 넥타이를 풀고 한숨을 토해냈다. 가영은 그런 상유를 보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7일이 장난이야?”

장난은 아니죠. 절대.”

선재는 부러 과장되게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잔뜩 성이 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일 정도는 간단했다.

그래도 서류가 나을 것 같기는 해.”

? ?”

상유는 이내 눈을 꼭 감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상유를 보며 선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 그런 거 안 하시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 누군가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거잖아. 억울한 일이 있는 사람들을. 아직 세상에 미련이 남은 사람들에게 아주 약간의 시간을 더 주는 거잖아.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렇죠.”

선재는 입을 내밀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도 이 귀찮은 일을 같이 하지 않을 거였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뭐가?”

아니.”

선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어깨를 으쓱했다.

선배님 누군가를 돌려보내신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되돌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간 영혼이 얼마나 혼란을 겪는지 아니까. 그런 선배를 아니까 지금 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한 번 다녀온 영혼은 다시 오는 것을 반기지도 않잖아요. 거기에서 사고를 칠 수도 있고.”

저주라도 하는 거야?”

아니요.”

젠장.”

상유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인간의 미신을 하자 선재는 피식 웃으며 그런 선재를 따라 침을 뱉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면.”

어쩔 수 없다니.”

선재의 말에도 상유는 이리저리 목을 풀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의 억울한 영혼도 없게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해야 하는 거야.”

그 정도로 억울해 보여요?”

.”

상유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선재도 입을 잔뜩 내민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했다.

이상한 사람이야.”

그러네요.”

?”

선재의 대답에 상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선재가 먼저 대답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선재는 미소를 지은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눈썹을 가볍게 올리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더 억울한 사람도 많았잖아요.”

건방져.”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의 말처럼 더 억울한 영혼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구도 선배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어요. 아시죠?”

알지.”

상유는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에게 가영이 특이하게 다가온다는 거. 그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돌려보내고 싶었다.

궁금해.”

뭐가 궁금해요?”

아니.”

상유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선재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였다. 선재는 그런 상유를 보더니 눈을 떼구루루 굴리며 밝게 웃었다.

 

안 돼.”

?”

안 된다고.”

아름이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하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지금 그거 근무 태만이야.”

위에 직접 말을 하던가.”

아름이 하늘을 가리키자 상유는 혀를 찼다. 저렇게 나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귀찮아.”

귀찮다고?”

그래.”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유는 아름에게로 가서 건의사항이라고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하라는 거?”

미쳤어.”

상유도 하늘을 가리키자 아름은 아랫입술을 하얗게 될 때까지 세게 물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진심이야?”

진심이야.”

아름은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건 이쪽에서 복잡한 일이 될 거였다.

갑자기 왜 이래?”

뭐가?”

일하는 거 싫어하잖아.”

.”

상유는 입술을 살짝 내밀고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일을 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까지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은 귀찮아서 안 한 게 아니라 굳이 그 정도 가치를 가진 영혼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거였어.”

그게 다른 건가?”

다른 거지.”

아름은 헛기침을 하고 서류를 내밀었다.

작성해.”

진심이지?”

그래.”

아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후 짜증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네가 하겠다는데 도와야지.”

뭐야?”

뭐가?”

아니.”

상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름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우호적으로 나오니까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하는 거 나처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한다고 해서 해줘도 난리야.”

그건 그렇지만.”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이상하잖아.”

그거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야.”

?”

아름이 갑자기 장난스럽게 웃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이야?”

지금 사인을 한 거잖아.”

무슨?”

아름이 손가락을 튀기고 방금 상유가 이제 일을 하겠다고 사인을 한 서류가 아름에게 날아들었다. 아름은 서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내가 일을 하라고 해도 하나도 하지 않던 이가 일을 한다고 하니까 그게 반가워서 그러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일 하라는 거야.”

아름은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상유는 선재가 들고 오는 자료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하며 웃었다. 산더미 같다는 말. 그 말은 저런 것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건 또 뭐야?”

참고 자료요.”

참고?”

상유는 인상을 찌푸리고 볼펜 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이가 없네.”

어쩔 수 없죠.”

도와줄 거지?”

아니요.”

상유의 제안에 선재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한숨을 토해냈다.

뭐하는 거야?”

저도 일이 있어요.”

후배가!”

죄송해요.”

상유는 달아는 선재를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 다 하라고?”

안 그래도 평소에 아름이 자신을 골릴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한 거였다. 자신이 멍청한 거였다. 자신이 바라는 일을 아름이 그렇게 간단히 해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벌써 오세요?”

.”

가영의 말에 상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시간이라는 게 영혼들의 시간하고는 다소 다른 개념이었다.

.”

신기하네요.”

신기할 일도 많군.”

그럼요.”

가영이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을 보자 상유는 물끄러미 그 눈을 마주했다. 그러다 이내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돌렸다.

후회를 할 지도 모릅니다.”

무슨 후회요?”

세상이란 그런 곳이니까.”

상유의 말에 잠시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가영이 아. 하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당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인간인지. 그리고 당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인지 그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거 알 거라는 겁니다.”

알아요.”

가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할 거라면 진작 했을 거였다. 하지만 진작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못할 거라는 거였다. 그래도 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뭐라도 할 거였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구라도 그렇죠.”

그러게요.”

상유의 말에 가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지금 잘 하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후회하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그렇구나.”

아니.”

가영의 간단한 대답들에 상유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왜 짜증을 내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영은 침을 꿀꺽 삼킨 채로 헛기침을 한 채 밝게 웃었다.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요.”

?”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진짜로요?”

.”

가영의 대답에 상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상유는 이제 자신과 관련이 없는 그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은 죽습니다. 아무리 좋은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삶을 살 수 없을 겁니다. 애초에 7일이라는 시간으로 그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좋아요. 그 시간이라도 있다면.”

좋습니다. 여기 서명을 하죠.”

여기요?”

가영은 상유가 가리키는 곳에 이름을 넣었다. 상유는 그 이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 자리를 문질렀다. 가영의 이름이 반짝이고 그대로 흰빛이 가영을 감쌌다.

 

안 일어나?”

엄마의 목소리. 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가 빨리 편의점에 가야 아빠가 그것을 대신 해주지. 네가 그렇게 자고 있으면 아빠가 집에 못 오잖아.”

미안해.”

?”

평소와 다른 가영의 사과에 엄마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영은 재빨리 씻고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후 그대로 운동화를 신었다.

뭐 그렇게 급하게 나가?”

아빠 피곤해.”

그걸 아는 년이 그래.”

그러게.”

가영이 그대로 나가버리자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다른 딸의 모습에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 철이 드는 모양이네.”

 

얼른 가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어.”

아빠를 쫓아내다시피 내보내고 가영은 카운터에 앉았다. 그 동안은 그냥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시나리오.”

뭘 써야 하는 걸까? 뭐라도 써야 하는 거였다. 당장 뭐라도 찍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영화.”

애초에 이것을 꿈꾸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한 거였다.

 

갑자기?”

. 갑자기.”

가영이 두 손을 모으며 부탁하자 용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오빠. 배우님. ?”

. 아무리 그래도 그 대본을. 그리고 일주일에 편집까지 다 한다는 게 말이 돼? 너 갑자기 왜 그래? 죽어?”

. 죽어.”

가영이 이렇게 말하고 웃어버리자 용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모자를 다시 쓰고 미간을 모았다.

이런 거 돈 많이 들어.”

?”

판타지잖아.”

그런가?”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천국에서의 인터뷰. 돈이 그다지 들지 않을 거였다.

그냥 엄청 하얀 방에 오빠랑 나만 있으면 돼.”

시나리오는?”

쓰는 거지.”

미쳤어.”

제발.”

가영은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용준은 혀로 이를 훑으며 턱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

그 동안 한 번도 네가 이렇게 열성적인 적이 없으니까 한다는 거야.”

고마워.”

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안아주자 용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밀어냈다.

내가 그 동안 그렇게 영화 좀 하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러게. 진작 이럴 걸.”

가영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용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가영을 봤지만 뭐라도 알아낼 리가 만무했다. 용준은 혀를 끌끌 차며 소주를 들이켰다. 가영은 밝게 웃으며 그런 용준의 잔에 술을 채웠다.

 

영화? 미쳤니?”

?”

돈은?”

있지.”

가영은 그 동안 모았던 통장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딸이 갑자기 헛바람이 든 거 같아서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빠 도와서 편의점이나 하면 되는 거지. 갑자기 왜 그런 걸 한다고 그러는 거야?”

엄마는 딸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가 한 대?”

. 배우도 구했어.”

?”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 동안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던 딸이 갑자기 왜 이렇게 속도를 내다니.

네가 한다면 내가 말릴 수가 있니? 네가 내가 말리다고 내 말을 듣는 애도 아니고. 지금도 그냥 통보잖아.”

고마워.”

고맙긴.”

가영의 말에 엄마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

그래야지.”

 

정말로 이렇게 한다고?”

그럼요.”

아니.”

용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셋. 게다가 한 명의 배우는 촬영을 하면서 나오는 거라니. 작아도 너무 작은 영화였다.

이게 영화가 되겠어?”

안 될 건 뭐야?”

정말.”

가영의 간단한 대답에 용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대책이 없다.”

그게 내 매력 아니겠어?”

용준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박수를 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기로 한 거였다.

그래.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하는 거지. 하자.”

나중에 이거 수익 나오면 우리 셋이 1:1:1로 하는 거다.”

오케바리.”

가영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편집을 하는 거야?”

. .”

가영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와 교대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 갈게.”

내가 갈게.”

아니야.”

엄마의 말에 가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일주일이었다.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 목적이었다. 엄마를 고생을 시킬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엄마가 대신 하게 될 거였다.

내가 해야 하는 건데.”

너 축나.”

청춘이잖아.”

청춘은. 너도 이제 곧 서른이야.”

. 상처.”

가영이 가슴께를 쥐며 울상을 짓자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가영은 엄마를 한 번 꼭 안고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쟤가 요즘 왜 저래?”

달라도 너무 달라진 딸이었다.

 

음향이 살짝 튀는 것만 빼고는 괜찮은 거 같은데. 이게 다시 만지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돈이 되게 많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영화제에 낼 건데 이 정도로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더 실험적으로 보이고. 안 그래요?”

.”

가영의 말에 용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영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로 더 실험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는 했다. 애초에 일반 영화와 다른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다르게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였다.

오케이.”

그럼 편집 끝!”

닷새 만에.”

용준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말이 돼?”

그러게요.”

가영도 혀를 내밀고 밝게 웃었다. 귀한 사람들만 있으면 가능한 거였다. 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 하지 않았던 거였다. 이 간단한 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걸 안 한 거였다.

밥이나 먹자.”

나 오늘 약속 있어서.”

?”

미안해요.”

하여간. 알았어요. 정 감독.”

가영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이라는 말이 기분이 좋았다. 용준은 그런 가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어서오세요.”

미안해.”

가영의 사과에 카운터에 서있던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 너는?”

정말 미안해.”

가영은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을 건네며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그대로 가영의 뺨을 있는 힘을 다해서 때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미안해.”

미친.”

정말 미안해.”

가영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여기는 왜 온 거야?”

미안해.”

여자의 물음에 가영은 다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여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멀리 연기를 내뿜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가해자니까. 내가 너를 괴롭힌 거였으니까. 그런데 너를 도둑으로 몰고 밀어낸 거니까.”

갑자기 왜 그래?”

그러게.”

가영의 싱거운 대답에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를 받을 생각은 하지 마. 나 너 계속 미워할 거야.”

. 그래줘.”

?”

부디 그래줘.”

가영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내가 너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 적이 없어서.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서 그랬어.”

여자는 바닥에 담배를 버리고 가볍게 발로 비볐다.

정말 싫다.”

?”

너는 그런 식의 가벼운 태도.”

가벼운 게 아니라.”

미워할 거야.”

.”

가영의 대답에 여자는 무슨 말을 더 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멀어졌다. 가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하늘을 응시했다.

이제 곧 가야 하는 거네.”

가영은 아랫입술을 물고 씩 웃었다.

 

이게 다 무슨 돈이야?”

아니. 생각을 해보니 이자도 안 붙는 통장에 넣어놓는 게 이상한 거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주려고.”

뭐래?”

엄마가 놀라서 가영이 내민 돈을 쳐다봤다. 하나하나 꽃으로 접은 신사임당을 피면서 엄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사고는. 그런 거 아니야.”

가영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가영의 대답에도 엄마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거 다시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영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가영은 엄마를 꼭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지 못할 사람.

사랑해.”

나도 사랑해. 우리 딸.”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야?”

그냥.”

자야지.”

그러게.”

아빠는 가영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못난 자신 탓에 딸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영은 아빠에게 다가가서 카운터 너머로 꼭 안았다.

사랑해.”

갑자기 왜 이래?”

그냥 그럴 때는 딸 나도 사랑해. 하는 거야.”

그래.”

곧 그 시간이었다. 다시 자신이 가야 하는 시간. 지난주 이 시간에 자신이 죽는 거였다. 가영은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져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빠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왜 그래?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빠에게 다 말을 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울음이 나네. 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늙은 아비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네가 무슨 나이가 든다고 그래?”

그래도. 이제 아빠 딸 스물아홉이야. 곧 서른이라고요. 나이가 들었지.”

그런가?”

가영은 부러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모습은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영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씩 웃었다.

그럼 갈게요.”

그래.”

가영은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야 하는 곳으로 향했다. 초록불이 깜빡일 때 건너고 커다란 트럭이 나타나는 거. 저 멀리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가영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이면 충분했다. 7일이라는 시간.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달았다.

고마웠어요.”

가영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향해 한 발을 내딛었다. 눈을 감았다. 이제 커다란 충격이 느껴질 거였다.

 

혼날 거야.”

알아.”

기적이라는 거. 천사들은 할 수 있는 거였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7일을 받은 영혼에게 기적이라니. 상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내일을 꿈꾸는 사람에게 내일을 빼앗는 것은 천사의 일이 아니었다. 상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영의 내일. 자신도 궁금한 시간이었다. 선재는 그런 상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것은 자신이 내린 또 하나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