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눈꽃송이-
“야. 정민아. 그만 좀 툴툴 거려라.”
“너야 말로. 박나나 너 진짜 나쁘다.”
“내가 뭐가 나쁜데?”
저의 절친한 친구인 박나나. 제가 아픈 것도 다 아는 녀석입니다. 그래서 저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오늘 술을 산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왜 저 젖비린내 나는 이민성을 데리고 왔는지 의문 입니다.
“쟤는 왜 데리고 왔니?”
“귀엽잖아.”
혹시 얘가 민성이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쟤가 여기서 재롱잔치하면 얼마나 좋니?”
“토나 안 쏠리면 다행이다.”
저는 계속 술만 홀짝 거렸습니다.
도대체 선배는 왜 그러는 걸까요? 아까부터 계속 나나누나에게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제가 같이 와서 그런 건가요? 이럴 거면 따라오지 말걸요.
“민성아.”
“네. 나나누나.”
“나나누나라고?”
민아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너네 누나동생 하기로 했니?”
“응. 그럼 안 돼?”
“오호호호”
저와 나나 누나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민아 선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제 나에 대해서 마음을 접었구나. 잘 생각했다.”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너희 둘이 잘 어울려.”
“이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와 나나 누나가요?
“우리 둘이요?”
“그래. 정말 천상배필 이다.”
어이구.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 나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왜 그렇게 흥분해. 박 기자. 음하하. 뭐가 있나봐?”
민아 선배는 혼자 신이 난 모양입니다.
“너 자꾸 그럴래?”
“그럴래. 그럴래.”
이쯤 되면 제가 말려야 겠죠?
“선배들 그만하세요.”
“흠흠.”
“음”
“제가 어떻게 사랑하는 민아를 버리겠어요.”
‘푸우’
“뭐. 뭐라고?”
민아 선배가 저에게 맥주를 뱉은 사실을 잊은 채 반문합니다.
“민아 라고?”
“네.”
어라, 민아 선배가 화가 난 모양입니다.
“내가 나 좋아한다고 장난칠 때 가만 뒀지?”
“장난 아닌 데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조금씩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게 장난이라고요?
“장난 아니면?”
“나 정말로 선배 좋아해요.”
저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너 나 얼마나 아니?”
“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죠?
“네가 나나만큼이라도 나를 아니?”
거기서 왜 나나 누나를 끌어 들이는 걸까요?
“저도 알만큼은 알아요.”
“뭘 아는데?”
“정민아. 정민아.”
자꾸만 민아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후훗.”
아마 민아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일 겁니다. 그 때 민아는 농구를 잘 하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야. 패스”
막아야 합니다.
“나이스 슛!”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데요. 정말 들어가면 안 돼는 데요!
“나이스”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훗. 과연?”
뭐죠? 무슨 여자애가 저렇게 빠르죠?
“나이스! 슛이다.”
“안 돼!”
“골인!”
저렇게 쉽게 골을 넣다니 말도 안 됩니다.
“아직 30초 남았다.”
“좋아. 내가 역전해주마.”
어! 설마 아니겠죠?
“슛!”
노골!
“에이.”
“좋다. 내가 슛”
‘휙’
벌써 휘슬이 불다니. 또 져버렸네요.
“42:40”
“내가 또 이겼네?”
“너는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운동을 잘하냐?”
“여자라고 운동을 잘 하면 안 되냐?”
맞는 말이네요.
“아이스크림 사라.”
“알았다. 뭐 먹을래?”
“설렘.”
“어? 그거 천원이잖아.”
“그래서?”
“500원짜리 먹어라.”
“싫다. 메롱. 교실로 사 와라.”
또 도망가네요.
“야!”
“민재야 고마워”
에효. 또 돈이 나가네요. 내일은 기필코! 그나저나 점심 또 굶어야겠네요.
“민아는 기억할까?”
물어보고 싶기도 하군요.
“피곤하네.”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 겠습니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설마. 제가 아픈 거 아는 건 아니겠지요?
“뭐냐 면요.”
저게 장난치는 건가요? 왜 이렇게 시간을 끌죠?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하고 마음씨가 고운 거요.”
휴, 다행입니다.
“너 장난해?”
“진짜에요.”
“후훗”
“아무도 민아 누나가 착한 줄 모르는 걸요.”
“내가 착한 걸 모른다고?”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얼마나 천사표인데요.
“네가 착하다고?”
“그럼 내가 나빠?”
“이, 박나나 인생 28개를 걸고 말하는 데 너 나빠.”
“민성이 저게 거짓말 하는 거지.”
“거짓말이라뇨?”
“맞아. 내가 어디가 어때서?”
“후훗. 알았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 상황을 잠시 벗어나야 겠습니다.
휴. 괜히 큰 일 날 뻔했네요.
“너 다 알고 있었니?”
나나 누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네?”
일단 발뺌을 하고 봐야 겠습니다.
“민아가 아픈 거 말이야.”
아. 나나 누나는 역시 눈치가 빠르군요.
“네.”
“얼마나 알고 있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까지요.”
“아.”
“그런데요.”
이렇게 된 것 저는 궁금한 걸 다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디가 아픈 거예요?”
“심장.”
“네?”
심장이 아프다고요?
“심장이 아프다고”
“아.”
“그래서 이식도 받지 못하는 거야.”
그렇군요 여기까지는 몰랐는데. 아! 아직 물어볼 게 남아있군요.
“그러면요.”
나나 누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봅니다.
“또 뭐?”
“한민재 씨는 누구에요?”
“네가 민재를 어떻게 알아?”
놀라는 눈치군요.
“아까 옥상에서 민아 누나랑 이야기 하는 걸 봤어요.”
“민아랑?”
왜 저러죠?
“명함을 주고받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그 한민재라는 사람은 전화 받고 내려오던데요.”
나나 누나의 표정이 조금 심상치 않습니다.
“둘이 무슨 사이에요?”
“그냥 친구.”
“흠.”
저는 파운데이션을 꺼내 얼굴에 발랐습니다. 조금 창백해 보이는 듯 합니다.
“얼마 안 남았구나.”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10월에 선고를 받았으니까 말이죠.
“휴 시간도 빨리 가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시간은 더 빨리 흐르고 있는 듯 합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고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했지만 저는 지금 기자 정민아 만의로도 너무나 힘이 들고 아픕니다.
“휴.”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 할 텐데요.
“진짜 창백한데.”
저는 핏기가 없는 피부에 화장을 두껍게 칠합니다.
‘따르릉’
“네. 정민아입니다.”
“만나자.”
민재네요.
“네가 어쩐 일이야?”
“우리 만나자.”
“지금?”
시간이 조금 늦은데 무슨 일이죠?
“그래.”
“알았어. 크리스탈로 와라.”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갸웃하지만, 민재가 만날 일이 없는 데요.
“나 먼저 가볼게.”
“왜?”
갑자기 온 민아 선배는 집에 갈 준비를 합니다.
“무슨 일이야?”
“민재가 나 만나재.”
“민재가?”
나나 선배의 표정이 어둡네요.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물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 먼저 가볼게.”
민아 선배가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빠져 나갑니다.
“빨리 나가.”
“?”
나나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지금 안 가면 놓칠 거야.”
아. 설마!
“빨리 가.”
저는 나나 선배를 뒤로 하고 밖으로 뛰었습니다.
“선배!”
누가 절 부르는 것 같습니다.
“선배!”
뒤를 돌아보니 민성이 서 있습니다.
“민성아?”
“가지 마요.”
“?”
무슨 말이죠?
“나 선배 좋아해요.”
“!”
뭐라고요? 얘가 지금 뭐라는 거죠? 저런 진지한 얼굴을 하고요.
“뭐라고?”
“나 선배 좋아한다고요.”
“장난 하지 마.”
“진심이에요.”
민성이가 제 눈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진실함이 그 눈을 통해 보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선배를 좋아해요. 세상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다시 무너진다고 해도 나는 선배. 아니 정 민아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바라볼 거예요. 그게 내 일이고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테니 까요.”
말도 안 됩니다!
“왜 나를.”
“편안해요.”
“내가?”
“너무나도 좋아요.”
저는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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