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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스물한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2. 12. 00:42

 

 

 

추억에 살다.

 

 

스물한 번째 이야기

 

 

 

철컥

 

문이 열렸다.

 

알고 있었어?

 

.

 

신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오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살을 섞고 산 부부잖아. 그 정도는 쉬워.

 

그래.

 

민용이 까칠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한다고.

 

.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원하는 거잖아.

 

하아.

 

민용이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두 사람.

 

윤호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말 돼.

 

신지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윤호를 바라봤다.

 

윤호야.

 

윤호가 슬픈 눈으로 신지를 바라봤다.

 

네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하아.

 

윤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미안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알았어요.

 

윤호가 자켓을 들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윤호.

 

민용이 윤호를 부르자, 윤호가 민용을 바라봤다.

 

?

 

미안하다.

 

아니.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삼촌이 미안한 건 내가 아니라 작은 엄마겠지. 삼촌은 나에게 미안한 거 하나도 없는 사람이잖아.

 

후우.

 

민용은 한숨을 토해냈다.

 

선생님은 안 가세요?

 

?

 

민정도 코트를 집어 들었다.

 

, 가야지.

 

민정이 신지를 바라봤다.

 

내가 곁에 안 있어줘도 괜찮겠어?

 

그래. 내가 무슨 죽을 병 걸린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그저 조금 쉬면 괜찮은 거니까. 너도 가서 쉬어.

 

그래.

 

민정이 살짝 민용을 바라보다 시선을 거둔다.

 

선생님 모셔다 드릴게요. 일단 저희 집에 가실 거죠?

 

. 그래야지?

 

윤호가 문을 열었다.

 

그럼 신지야 가볼게.

 

그래.

 

 

문이 닫혔다.

 

좋아?

 

신지의 차가운 목소리.

 

이렇게 모든 걸 부수니까 좋아?

 

아니.

 

민용은 고개를 좋았다.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하아.

 

신지가 한숨을 토해냈다.

 

, 이혼이라는 걸 그렇게 해야만 했던 거야? ?

 

.

 

민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지를 바라봤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너랑 산다는 건, 내가 너를 모욕하는 일인 거잖아. 아직도 머리 속으로는 서선생 그리고 있으면서 손으로는 네 몸을 더듬고 있는 나, 네가 생각해도 너무 역겹잖아.

 

그래.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말대로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조금 끔찍하기는 하네.

 

미안해.

 

미안할 거 없어.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다 내가 오빠를 제대로 못 잡은 거잖아. 그러니까. 내 잘못이지.

 

아니야.

 

민용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너에게 제대로 된 마음 가질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으면서도 너에게 청혼한 내가 나쁜 놈이지.

 

하아.

 

신지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 청혼을 했던 거야? 정말로, 그런 거야?

 

.

 

민용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는 사람. 그냥 불쌍했어.

 

동정.

 

신지가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거구나.

 

미안하다.

 

그래야지.

 

신지가 민용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지금 당장은 이혼을 해주지는 못할 거 같아. 일단 조금은 회복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래.

 

걱정하지는 마.

 

신지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합의 이혼이니까.

 

“………”

 

민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빠가 잘못을 해서 이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어긋난 것을 제대로 돌리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거니까 나는 이해할 거야. 애초에 잘못된 것은 제대로 고쳐야 하는 거잖아. 그런 거야.

 

신지야. 정말 미안하다.

 

미안한 걸 아니?

 

신지의 입가가 가늘게 떨렸다.

 

어떻게, 어떻게 나에게 다시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그것도 다시 민정이 때문에.

 

신지야.

 

나 정말 오빠라는 사람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가. 평생 오빠를 저주하면서 살고 싶어. 정말 너무나도 미워서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빠의 목을 마구마구 졸라버리고 싶거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신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내 아이 아빠니까.

 

후우.

 

아빠는 맞는 거지?

 

그래.

 

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신지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까지 좋아하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었거든.

 

그런 게 어디 있어?

 

글쎄?

 

신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오빠에게는 있을 거 같아.

 

신지. .

 

좋아.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렇게 비꼬는 게 듣기 싫다는 거잖아. 하지만 오빠도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는 게 어때?

 

?

 

?

 

신지가 눈을 감았다 떴다.

 

우리 다시 이혼하는 거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 감정을 알아달라는 거야. 그렇게 오빠 입장만 이야기 하지 말라고.

 

신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내가 조금이라도 덜 오빠를 미워할 거 같으니까, 그렇게 해야지만 덜 미워할 거 같으니까.

 

미안하다.

 

그만 둬.

 

신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억지로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 마.

 

진심으로 미안해.

 

민용의 시선이 신지의 얼굴에 머물렀다.

 

진심이야.

 

후우.

 

신지가 한숨을 토해냈다.

 

왜 하필이면 지금이야?

 

신지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이혼을 하자는 이야기를 해도 되었던 거잖아. 왜 꼭, 하필이면 민정이가 돌아왔을 때야?

 

신지가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너무나도 미워질 것만 같단 말이야.

 

그 사람 미워하지 마.

 

민용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아무런 감정 없으니까.

 

알아.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

 

민정이 윤호 좋아해.

 

신지가 민용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걸 몰랐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

 

민용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자꾸 민정이에게 미련을 갖는 거야?

 

글쎼?

 

민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꼭 사랑할 가능성이 있어야지만 그렇게 되는 건 아니잖아.

 

후우.

 

신지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건가?

 

그런 거야.

 

그렇구나.

 

그렇네.

 

신지가 민용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빠.

 

?

 

우리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게.

 

신지가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민용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시선을 거두어갔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문신과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