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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연인 - [일곱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8. 24. 22:22
 





7화. 거짓말 놀이.




“으.”


윤호는 아픈 머리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꿀물 마실래?”


“어?”


민호가 윤호에게 꿀물을 건넸다.


“고맙다.”


“고맙긴.”


윤호가 꿀물을 들이켰다.


“어제 어떻게 됐냐?”


“뭐?”


민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제 일이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냐?”


“어제, 일?”


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었어?”


“쯧쯧쯧.”


민호가 고개를 젓는다.


“됐다.”




“하아.”


민정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윤호를 보내가 울고 또 울고, 다시 울었다. 밤새 울고 또 울고, 다시 울었다.


“나 다녀올게.”


“응.”


언니는 오늘도 학교 출근인지, 옷을 챙겨 입었다.


“너도 오늘부터 보충이지?”


“어.”


지금 같은 기분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선생의 본분은 지켜라.”


“어.”


민정이 멍하니 대답한다.


“휴, 나 간다.”




“진주.”


윤호는 어제 그 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냐?”


“아, 아니.”


민호의 시선이 느껴지자 윤호는 바로 입을 다문다.


“그나저나 우리 어제 어떻게 된 거냐?”


“모르겠다.”


민호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 맞다.”


민호가 윤호를 바라본다.


“왜?”


“나 취직했다.”


“진짜?”


대학도 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던 민호가 내심 걱정이 되던 윤호였다. 그런데 민호가 취직이 되다니.


“어디?”


“커피 앤 베리즈.”


“진짜?”


윤호는 자기가 다 흐뭇하다.


“내가 바리스타 자격증 따놓으랄 때 따 놓으니까 좋지.”


“그래 임마.”


민호도 미소를 짓는다.


“혹시 남는 원두 가지고 올 수 있으면 가져오마.”


“됐다.”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나 구해야 할 텐데.”


“너 어차피 전학기 장학생이잖아.”


“그래도 집에 있으면 심심하잖아.”


윤호가 혀를 내밀었다.


“잘난 척은.”


민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난 간다.”


“그래!”


민호가 집을 나갔다.


“하아.”


윤호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미치겠다.”




“윤호.”


민정의 손끝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번호를 지우시겠습니까?’


민정이 눈을 질끈 감고, 버튼을 눌렀다.


‘삭제 되었습니다.’


“하아.”


눈물이 주륵 흘러 내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제 그 목소리.


“저, 어제 그.”


“아!”


여자의 목소리가 금세 밝아진다.


“서, 윤호 씨?”


“네, 맞습니다.”


윤호는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아니 그, 그게.”


“음, 다른 건 됐고, 어제 우리 술 마셨으니까, 우리 오늘 해장 같이 할래요? 제가 쏠게요. 맛있는 선지해장국으로.”




“안녕하세요?”


여전히 교무실은 냉랭했다.


“하아.”


민정이 털썩 주저앉았다.


“윤호야.”


자꾸만 윤호가 생각이 났다.




“여기에요!”


달래가 손을 들었다.


“네.”


윤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달래에게 걸어갔다.


“어제 잘 들어갔어요?”


“네.”


달래가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윤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빨리요.”


달래가 윤호의 마음을 모른 채, 윤호의 팔을 이끌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교무실 사람들이 민정을 바라보았다.


“헤어졌어요.”


“!”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헤어졌어요!”


민정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헤어졌어요! 헤어졌어요! 헤어졌다고요!”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헤어졌다고요.”


민정이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윤호랑 헤어졌다고요.”

민정의 울부짖음에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모! 여기 선지 해장국 두 개요. 선지 왕창 넣는 거 아시죠?”


“그래.”


자주 오는 가게인가 보다.


“저, 지기요.”


“네?”


달래가 윤호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흐억!”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니에요.”


윤호는 그냥 멀뚱히 물잔만 내려다보았다.




“흐윽.”


민정은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물 마셔요.”


신지다.


“고, 고마워요.”


민정이 물을 천천히 마셨다. 조금 진정이 되는 듯 했다.




“그 쪽은 내가 마음에 들어요?”


“네?”


윤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맞구나?”


달래가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니.”


“에, 맞으면서.”


달래가 싱긋 웃었다.


“맛있게들 먹어요. 달래 처녀, 이 사람 남자친구야?”


“아직, 아니에요.”


달래가 싱긋 웃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요.”


“잘 되길 바라네.”


“네!”


달래는 씩씩하게 웃더니 양념장을 듬뿍 넣었다. 흰 쌀밥과 깍두기 까지 말고 나서, 씩씩하게 한 숟갈 퍼먹었다.


“왜 안 먹어요?”


“네?”


“아, 진짜, 남자가.”


달래가 윤호의 밥그릇을 빼앗더니, 자신이 했던 것처럼, 양념장을 듬뿍 넣고, 흰 쌀밥과 깍두기 까지 말았다. 그리고 다시 윤호에게 밀어주었다.


“맛있어요.”


“네?”


윤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게 보기에는 개밥 같아도 맛은 좋거든요.”


“아, 알았어요.”


윤호는 마지 못해서 한 입 입 안에 집어 넣었다.


“!”


맛있었다.


“맛있죠?”


“네.”


“거 봐, 맛있다니까.”


달래가 씩 웃었다.


“원래 해장용 음식들은 다 그렇게 먹는 거예요.”


“아,”


윤호도 조심스럽게 선지국을 먹었다.


“그런데, 선지는 왜 안 먹어요?”


“제가 선지를 못 먹어요.”


윤호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아, 참 그 맛있는 걸 왜 못 먹어요.”


달래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리 줘 봐요. 내가 다 먹을테니까.”


“아, 아니. 내가 먹던 건데.”


달래는 개의치 않고, 선지를 자신의 그릇으로 덜어갔다.


“괜찮아요. 먹는 거 남기는 거 보다야, 내가 먹는 게 훨씬 낫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오고, 헤헤.”


달래는 씩씩하게 선짓국을 퍼먹었다.


“빨리 들어요.”


“아, 네.”




“점심 같이 할래요?”


“네?”


김남수였다.


“아, 아니 괜찮은데.”


“내가 술 살게요.”


“술이요?”


한 낮부터 술을 먹는 게 조금 꺼림칙 했다.


“어차피 우울해서 수업도 안 되잖아요. 내가 술 쏠게요.”


“하아. 네.”


민정이 미소를 지었다.


“저 오늘 4교시 밖에 수업 없는데.”


“저는 3교시 수업 뿐이거든요. 교무실에서 기다릴게요.”


“네.”


남수가 웃더니 출석부를 챙기고 나갔다.


“하아.”


민정이 책상에 엎드렸다.


“어떡해.”


윤호가 자꾸만 자꾸만 더 어른거린다.




“나 오늘 시간 한가한데.”


“그런데요?”

“영화 보여줘요.”

“네?”


윤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왜요?”

“내가 아침 샀잖아요.”


달래가 싱긋 웃었다.


“빨리 가요.”




“휴.”


결국 극장에 끌려오고 말았다.


“영화만 보여줄 거예요. 팝콘이나 그런 거는 비싸서 못 사줍니다. 나 대학생이거든요. 그래서 돈 없어요.”


“알겠어요.”


달래가 밝게 웃었다.




“김남수 선생님.”


“네?”


“술은 됐고, 영화 좀 보여주세요.”


“영화요?”


“네.”


남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남수가 핸들을 돌렸다.




“우와, 저거 되게 재밌어 보여요.”


“네.”


민정과 자주 오던 극장인데, 이제 민정이 아닌 다른 사람과 앉아있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연인 같다. 맞죠?”


“연인은 무슨?”


윤호는 달래가 사준 콜라만 쭉쭉 빨고 있다.


“치, 좋으면서.”


달래가 웃으면서 윤호의 옆구리를 찌른다.


“왜, 왜 그래요?”


“아니요.”


달래가 싱긋 웃었다.




“뭐 보고 싶은 거 있어요?”


“그냥 제일 빠른 걸로요.”


민정이 싱긋 웃었다.


“제가 콜라랑 팝콘 사올게요. 티켓 끊어 오세요.”


“네.”


민정이 미소를 짓고 매점으로 갔다.


“하아.”


윤호가 자꾸만 떠올랐다.


“윤호야.”


익숙한 영화관이다. 너무나도.




“나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래요.”


윤호는 콜라를 다 먹고, 극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하아.”


여기저기 민정이 보였다.


“내가 미쳤나보네.”


매점에서 민정이 무언가를 주문하는 게 보였다.


“으유.”


윤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민정의 잔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뭐, 뭐야?”




“여기요.”


민정이 돈을 치루고, 돌아섰다.


“!”


윤호였다.


“서, 윤호야.”


민정이 손에 들고 있던 팝콘을 떨어뜨렸다.


“선생님.”


윤호가 한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민정 씨 왜 그래요?”


그 때 민정의 옆에 웬 남자가 나타났다.


“아, 김남수 선생님.”


민정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 윤호!”


“아, 안녕하세요.”


윤호가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꾸벅 했다.


“너 여기는 어쩐 일이냐?”


“그, 그게.”


“뭐해요?”


달래였다.


“누구?”


달래가 민정을 가리켰다.


“서, 선생님,”


“선생님?”


달래가 싱긋 웃더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 남자 꼬셔보려고 노력하는 진달래라고 합니다.”


“시, 시끄러!”


“다행이다.”


달래의 입을 막는 윤호에게 민정이 한마디 던졌다.


“네?”


“나도 남자친구 생겼거든.”


민정이 남수에게 팔짱을 꼈다.


“우리 잘 어울리니?”


“아.”


윤호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것 때문이었어요.”


“어?”


“헤어진 게 겨우 그런 것 때문이었어요?”


민정의 얼굴이 굳었다.


“다행이다.”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윤호가 눈에는 눈물이 고인 채 미소를 지었다.


“내가 싫어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냥 다른 사람이 더 좋아진 거여서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다.”


윤호가 싱긋 웃었다.


“선생님 재밌게 노세요.”


“어, 너도.”


민정과 윤호가 서로 돌아섰다.


“가 같이 가요!”


달래가 윤호를 쫓아갔다.




“괜찮아요?”


“미, 미안해요.”


“아니에요.”


남수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좋아하는 구나?”


“네?”


“정말 서민정 선생님 윤호 좋아하는 구나?”


“아.”


남수가 싱긋 웃었다.


“가요.”


“어디요?”


“학교로요.”


남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집으로 데려다 줄까요?”


“그래 주실래요?”


“네.”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저 사람 좋아하죠?”

“네?”


달래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맞으면서.”


“아, 아니에요.”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쟁이.”


“…….”


달래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은 데 왜 보내는 거예요?”


“다른 남자가 생겼잖아요.”


“킥.”


달래가 미소를 지었다.


“윤호 씨, 알게 될 거예요.”


“?”

달래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영화는요?”


“됐어요.”


달래가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