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창고/블로그 창고

8월의 연인 - [여섯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8. 24. 22:21
 





6화. 이별 그리고.




“하아.”


윤호는 너무 아팠다. 아프고 또 아팠다.




“!”


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일이야?”


“헤어졌어.”


“!”


민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네가 헤어지자고 했니?”


윤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서, 선생님이 너에게 헤어지자고 했다고?”


“응.”


윤호는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왜?”


“몰라.”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멋지게 케이크를 꺼냈는데, 헤어지자네.”


“!”


“하하하.”


윤호가 어이없는 웃음만 흘린다.


“그런데 선생님이 하나도 밉지 않다.”


“뭐?”


“이해가 된다.”


“!”


“네가 말했잖아. 선생님 학교에서 힘드셨을 거라고.”


“그래서?”


“이해가 된다고.”


“병신.”


민호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너 같은 병신 새끼도 처음 본다. 처음에 선생이랑 연애질 한다고 할 때부터, 제정신 꼴아박힌 놈은 아닐 꺼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그 선생 하나에 목 맬 줄은 정말 몰랐다.”


“히히, 나도 몰랐다.”


윤호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


“왜 이렇게 여기가 허전하냐?”


윤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공하나가 빠져 나간 것 같아.”


“병신.”


민호가 냉장고를 열었다.


“마실래?”


“좋지.”


민호가 맥주를 윤호에게 던진다.


‘탁’


맥주캔이 시원하게 열렸다. 윤호는 숨도 쉬지 않고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켰다.


“천천히 마셔.”


민호가 다시 다음 캔을 건넸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민호도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너는 네가 무슨 성인군자냐?”

“응?”


“어떻게 널 차버린 여자를 이해하냐?”

“그런가?”


윤호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데 선생님도 참 힘들었을 거야.”


“그렇겠지.”


두 남자가 두런두런 넋두리를 나눈다.




“흐윽. 흐윽.”


“무슨 일 있어?”


민정은 언니의 물음에도 대구하지 않은 채, 침대에 엎드려서 울기만 했다.


“야, 말을 해.”


“언니. 나 어떡해?”


민정이 앉아서 언니를 바라본다.


“왜?”


“나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게 뭐?”


“내가 가르쳤던 애야.”


“!”


언니의 얼굴이 굳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서 오늘 헤어지자고 했어.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우리 둘이 서로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런데?”


“미쳐 버릴 것 같아. 자꾸만 그 아이가 떠올라. 눈을 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보여. 지금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서 자꾸 어른 거리는 것 같아. 그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막 느껴져.”


“혜, 민정아.”


민정이 언니의 품에 안겼다.


“언니, 나 어떡하니?”


“민정아.”


언니가 민정의 등을 쓸어준다.


“미안, 언니가 몰라서 미안.”

“언니.”


민정이 더 언니를 꼭 껴안는다.


“내가, 내가 잘한 거겠지?”


“그럼, 네가 잘 한 거야.”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잘 한 거야.”


민정은 언니의 품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런데, 조금 후련하기도 해.”


“?”


윤호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시원섭섭해. 그동안은 너무 힘들었거든.”


“그러냐?”


민호도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그립냐?”


“그립냐고?”


윤호가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안 그립겠냐?”


“내가 바보 같았나?”


“그래. 임마.”


윤호가 웃는다.


“그래도 너 웃는 거 보니까 다행이다.”


“그래?”


윤호의 미소가 조금은 슬프다.


“그런데 이 속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병신.”


민호가 윤호의 머리를 헝끌어 뜨렸다.


“너는 멋진 놈이다.”


“그럼.”


윤호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마나 멋있는 놈인데.”


“너라는 놈이 친구인게 자랑스럽다.”


“헤헤.”




“그리워.”


“그래. 그래.”


“내가 헤어지자고 해 놓고, 너무 그리워.”


민정의 목소리가 쉬어가고 있었다.


“힘들어.”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 거야.”


“나중에는 안 힘들 수 있을까?”


“그럼.”


“진짜?”


헤민이 언니를 바라본다.


“시간이 모든 것을 낫게 할 거야.”


“그런데 말이야.”


“?”


“모든 게 잊혀진다면 그게 사랑이었어?”

“어?”


“그게 사랑인거야?”


민정의 눈은 아니라고 말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진정 인연이라면.”


“?”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언니.”


언니가 민정을 눕혔다.


“그만 울어. 눈 붓겠다.”


“응.”


“그 사람과 네가 정말 인연이라면.”


“응.”


“분명 만날 꺼야.”


“그럴까?”

언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일부터 내가 소개팅 마구 쏴준다.”

민호가 호언장담을 한다.


“소개팅?”

“그래 임마.”

두 남자는 벌써 취했다.


“소개팅은 무슨.”


“야,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하는 거야. 임마.”


“잘 알아서 좋겠다.”


“좋지 뭐.”


민호가 맥주를 탈탈 털어 마신다.


“우리 노래방 갈래?”


“노래방?”

“내가 쏜다.”




“아저씨, 여기 아가씨들이요.”


“됐어. 임마. 그냥 술이나 마셔.”


민호는 윤호의 입을 막는다.


“꼭 아가씨여야 해요.”


“그래.”




“아가씨는 무슨.”


윤호는 맥주를 들이켰다. 역시나 노래방 맥주는 맥주가 아니다.


“젠장. 이거 또 장난이야.”


“그냥 마셔라.”


민호가 책을 뒤적거린다.


‘똑똑’


바로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왔나보다.”


“진짜?”


윤호는 고개를 젓는다.


“싫은데.”


“그래도 불렀으니까, 지금은 같이 놀자.”


“그래.”


윤호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들어오세요!”


두 여자가 들어왔다. 한 명은 정말 아가씨인 듯 하고, 한 명은 이런 일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만 둔 여자가 같았다.


“나는 진주, 28살.”


분명 35도 넘은 여자다.


“그 쪽은 이름이 뭐야?”


민호가 나머지 여자에게 물었다.


“저, 저는”


“아이, 오빠. 얘는 오늘 처음 들어온 애야. 내가 놀아줄게.”


진주라는 여자가 민호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수줍은 아가씨와 윤호는 커플이 되었다. 그 수줍은 아가씨는 조용히 윤호 옆에 앉아서,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무릎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에요?”


“네?”


“내 이름은 이윤호에요.”


“아, 제 이름은 진달래에요.”


“진달래?”


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본명이에요.”


달래가 미소를 지었다.


“성이 진씨고 이름이 진짜 달래에요.”


“이름 예쁘네요.”


윤호가 씩 웃었다.


“네?”


“이름 예쁘다고요.”


윤호가 빙긋 웃으며 음료수를 건넸다.


“나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죠?”

“물론이죠.”


여자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노래 잘 해요?”


“제가 불러드릴까요?”


달래는 잡을 새도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앵콜!”


달래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민호가 앵콜을 불렀다.


“아, 아니에요.”


달래가 수줍어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노래 잘하시네요.”


“어릴 때 꿈이 가수였어요.”


“아.”


윤호는 맥주를 들이켰다.


“윤호씨는요?”

“저요?”


윤호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글쎄요.”


“글쎄요?”

달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런 꿈이 없어요?”


“저는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가라는 대로 온 거거든요.”


“아.”


달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이 있으신 가봐요.”


윤호는 대답을 안 했다.


“저 자식 오늘 차였어요!”


그 때 민호가 소리 쳤다.


“야!”


“그래서 오늘 위로 하러 나온 거예요.”


민호는 한껏 흥이 오른 듯 보였다.


“조용히 안 해?”

“조용히는 무슨.”


민호는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은근히 물건 실하거든요. 잘 꼬셔보세요.”


“야!”


‘퍽’


윤호가 쿠션을 날렸다.


“닥쳐.”


“킥.”


그 때 달래가 웃었다.


“!”


윤호는 심장이 철렁했다.


“아, 죄, 죄송해요.”


윤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는지 달래가 황급히 웃음을 감춘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


“아, 아니에요.”


잠시 어지러웠다.


“저 화장실 좀.”




“하아.”


내가 이런 놈이야?


“제길.”


윤호의 입에서 욕이 터져나왔다. 너무 떨렸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었다. 민정을 처음 봤던 바로 그 느낌이다.


“젠장.”

자신이 너무나도 더럽게 느껴졌다.




“갈게!”


민호가 윤호에게 거의 매달려 있다.


“안녕히 계세요.”


“오빠들 또 와!”


윤호는 떨림을 간직한 채 노래방을 나왔다.




“개자식.”


윤호가 낮게 욕을 내뱉는다.


“나 어떡하냐?”


윤호는 술에 취한 민호를 바라보았다.


“나 다시 떨림을 느꼈어.”


윤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한숨만이 새어 나왔다.




“미안. 미안!”


민정은 온 몸이 식은 땀이었다.


“괜찮아?”


“어? 어.”


언니가 황급히 달려왔다.


“아유 땀 봐.”


언니의 표정이 굳었다.


“괜찮은 거야?”


“어.”


이별의 후유증일까.


“하아.”


윤호는 괜찮을까?




“야, 이 미친놈아.”


윤호는 자는 민호를 옆에 두고 혼자서 맥주를 땄다.


“나 어떡할 꺼냐?”


윤호도 자신을 감정을 잘 모르겠다.


“이게 사랑이냐?”

분명 한 구석에는 아직 민정이 남아있는데.


“첫 눈에 반한다는 게 가능할까?”


언젠가 민정이 물은 적이 있었다. 윤호는 말도 안 된다고 답했었다.


“다시 생각하니까.”


윤호가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가능하기도 할 것 같다.”


윤호가 털썩 누웠다.


“내가 미친 건가?”


자꾸만 두 여자의 얼굴이 겹쳤다.


“휴우.”


미칠 노릇이다.


“나 어떡하냐?”


윤호는 민호의 명치를 강하게 눌렀다.


“헉!”


“네가 책임져.”


윤호는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