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작은 고개를 넘다.
“하아.”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민정은 조금씩 초조해짐을 느꼈다.
“아무 일 없을 꺼야. 아무 일도.”
민정은 조용히 눈을 감고, 윤호와 자신만을 생각했다.
“그래, 잘못한 거 없잖아. 힘 내자. 설민정.”
“자네들, 좀 견딜만 한가?”
“네.”
벽돌 나르기 한 시간만에 어느정도 요령이 생긴 윤호는 밝게 웃으며 답했다.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대단하구만.”
“네?”
“보통 다른 사람들은 벌써 못하겠다가 나자빠져버렸을 텐데, 자네들은 아직까지 이리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가?”
“저희 열흘 다 채울 겁니다.”
윤호가 씩 웃었다.
“그래, 자네들이라면 할 것이네.”
소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도 참 뿌듯하시겠어.”
“하아.”
시간이 1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야 할 때였다.
“아자.”
민정이 한 번 빙긋 웃고 회의실로 걸어갔다.
“어서 앉으세요.”
민정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먼저 학부모님들께 죄송합니다. 바쁘실 터인데.”
“아닙니다.”
날카롭고, 냉정해 보이는 여자가 안경을 고쳐쓰면서 말했다.
“아이들의 학습에 문제가 될 사안이 있으면, 저희가 나서서 해결해야죠.”
“무슨 말씀이세요?”
민정이 발끈한다.
“설민정 선생!”
“도대체 무슨 말씀인 겁니까?”
그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어디서 그 더러운 입으로 나불대는 겁니까?”
“!”
“학생을 탐하는, 더러운 선생이면서 어쩌면 그렇게 뻔뻔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건지? 다른 애들이 어떻게 보고, 무얼 배울 지, 전혀 그런 생각도 없는 무책임한 교사이면서, 기분이 나쁘신 건가요?”
“!”
민정의 몸이 떨렸다.
“말이 지나치시군요.”
“제가요?”
여자가 간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같은 교사에게는 존중해 줄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데요. 교사가 교사 다워야 대접을 해주는 거죠.”
“!”
“자, 그만 하시지요.”
그제야 교장이 그 여자를 말린다.
“흠흠."
“자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다 알고 계시겠지만, 여기 계신 설민정 선생님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과 연애를 하고 계십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여러분과 상의를 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그만 두셔야죠.”
아까 그 여자다.
“아이들이 무얼 보고 배우겠습니까?”
“왜 그래야 하지요?”
민정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남자가 말을 했다.
“뭐라고요?”
“두 사람이 좋다는 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요? 아이들이 무얼 보고 배우는…….”
“그 상관관계가 무엇입니까?”
“!”
여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지금 아이들에 정신에 그런 것들이 전혀 상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맞는대요?”
“!”
“아이들과 그 일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상관이 없다니요!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정신 건강이요?”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남자는 강인한 인상을 지녔지만 부드러웠다.
“하, 하지만.”
“만약 앞으로 이 일로 인해 설민정 선생님이 수업을 못 하게 된다거나, 아이들의 불만이 높아진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너무 만만하게 봐서, 더 이상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하면, 당연히 설민정 선생님은 지방으로 전근을 가시거나, 학교에 사표를 내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설민정 선생님이 그 학생을 만나는 것이 수업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교사들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우리가 회의를 하고 성급하게, 무언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자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말이죠.”
여자였다. 다행히 기운을 차린 듯 하다.
“아까 설민정 선생님의 교실에서 나왔던 그 환호성 소리는 뭐지요? 온 학교가 쩌렁쩌렁하게 울려서 수업을 하기 불편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나던대요? 이런 것이 학교 운영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 그건 말이죠.”
헤민이 말을 하려는 찰나에 학생 대표가 손을 들었다.
“말해 보세요.”
교장은 학생 대표를 가리켰다.
“저희 잘못입니다.”
“?”
모두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몰렸다.
“저희는 단순히 설민정 선생님께 축하를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연애를 시작하셨다는 그 사실 하나로 말이죠. 선생님의 연애 상대가 누구인지는 저희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그 일로 인해 선생님이 불이익을 얻게 되시길 원하시지 않고요. 그리고 여기 이 것을 봐주십시오.”
학생이 나머지 열 두명의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인쇄되어 있는 프린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인가요?”
“설민정 선생님에 대한 교사 평가서입니다.”
“흠.”
여자는 가방 속에서 안경을 꺼내 종이를 보기 시작했다. 종이를 읽는 눈이 내려갈 수록 여자의 표정은 구겨졌다.
“아이들은 설민정 선생님이 계속해서 세계사 수업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모의고사 성적을 봐도 저희 학교의 세계사 점수는 평균보다 무려 10점 가량 높습니다. 우리 학교에 세계사 선생님이 설민정 선생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면, 이 모든 일이 저 분 덕분이라고 말하는데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선생님을 함부로 자르거나, 그만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것은 아마도 학생들의 교육권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끝이군요.”
남자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열두 명 중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저와 학생들 셋이 거부를 한다면, 이 게임은 보나마나겠군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남은 사람들이 모두 만장일치를 결정하면, 설민정 선생님은 학교를 위해서 떠나주셔야만 합니다.”
“좋습니다.”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교장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하아.”
설민정은 투표가 시작되면서부터, 회의실에서 쫓겨났다. 너무 긴장되고 초조했다. 마음이 너무 두근 거렸다.
“이제 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교장이 손으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폈다.
“흠, 떠나지 말아야 한다. 4표.”
여자의 얼굴이 득의로 가득 찼다.
“그리고!”
교장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
모두의 시선이 교장에게로 모아졌다.
“기권 3 표.”
“!”
여자의 얼굴이 종이가 구겨지듯 구겨져 버렸다.
“설민정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이번 안건은, 폐기가 되었다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교장의 얼굴도 구겨졌다.
‘딸깍’
회의실 문이 열렸다.
“어, 어떻게 되었어요?”
여자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고 민정은 안도했다.
“축하하네.”
부장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헤민을 지나쳤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학생들이 민정을 껴안았다.
“아무 문제가 없대요.”
“진짜?”
“기권도 3표나 나왔어요.”
“!”
누가 기권을 했지?
“축하해요.”
그 때 지나가던 김미화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아!”
민정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으아.”
하루 일이 끝났다. 윤호는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친구 힘들지 않은가?”
“안 힘들 리가 있냐? 그래도 재미있잖아. 우리가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냐? 이런 때나 한 번 씩 좋은 경험 쌓는다고 해보는 거지. 항상 생각해왔던 거기는 한데, 진짜로 이 일을 해 보니까, 저 분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도 안 멋있어 보여. 그런 사람들도 결곡 저 아저씨들이 없으면 맨 바닥에서 자야하는 팔자이잖아. 정말 위대해.”
“친구, 철 들었네.”
민호가 윤호의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으.”
윤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왜 그러는가?”
“우리한테 쉰 냄새가 풀풀 나.”
“당연하겠지. 그래도 우리 장부터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와!”
민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많이 먹어라.”
윤호가 흐뭇하게 웃는다.
“고맙네 친구!”
민호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마구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밥이 그립디?”
“그렇네.”
윤호는 문득 민정이 생각났다.
“밥은 먹고 다니시려나?”
“응?”
“아, 아니.”
윤호도 수저를 들었다.
“하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민정은 더 차가워진 교무실의 분위기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외로웠다.
“저기, 이건 어떻게 하는 거죠?”
묻고 있는데도, 그냥 상대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너무나도 냉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분명 다른 누군가가 시켰을 것이다.
“부장님.”
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다고 저 사표내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이지?”
“이렇게 저를 왕따시키신다고, 제가 학교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신대요. 절대로 그럴 일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십시오.”
“마음대로 하시게.”
부장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하아.”
하루 종일 학교에서 외로웠고 또 외로웠다. 지금은 윤호 생각이 너무나도 절실했지만, 윤호를 부른다고 해도, 우는 일 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집에 혼자 맥주를 사들고 가서, 처량하게 한 캔 한 캔 따서 마시는 것이 최고였다. 오징어도 함께 말이다.
“휴.”
“으아.”
아침에 기지개를 펴는 데, 온 몸이 삐그덕 거린다.
“으.”
윤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계를 보았다. 7시였다.
“야, 민호야 일어나.”
“으.”
민호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야, 임마 왜 그래?”
“치, 친구 몸살이 단단히 난 것 같네.”
“뭐?”
민호의 상태가 윤호보다도 더 안 좋아 보였다.
“그, 그럼 오늘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해?”
“치, 친구. 나는 걱정말고 혼자 가서 하게.”
“혼자?”
“그래.”
윤호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100일이 있었다.
“그래, 그럼 다녀올게.”
“그러게 친구.”
“하아.”
거울을 보는데 조금 창백하다.
“오늘도 어제 같으려나?”
하지만, 조금은 더 잘 견딜 것 같다.
“다른 친구는?”
“헤헤, 몸살이 났대요.”
“저런, 쯧쯧.”
소장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자네들처럼 안 해 본 일 갑자기 하면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 그나저나 자네는 괜찮은 건가?”
윤호가 씩식하게 자신의 팔을 툭툭 쳐내보인다.
“저는 건강합니다.”
“좋아, 좋아. 오늘도 열심히 해주게.”
“네!”
윤호가 벽돌을 짊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역시나 조용했다.
“하아.”
민정은 다시 힘든 하루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요령도 피우지 않고, 참 예쁘네 그려. 다른 젊은 사람들은 그 거시기, 그래 휴대전화도 막 만지작거리고, 앉아서 쉬고 그라는데, 참 자네는 바르고 성실한 청년이구만.”
“그만 비행기 태우세요.”
윤호는 씩 웃었다.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휴대전화를 놓고 오기는 했지만, 이런 칭찬을 들으니 너무 쑥쓰러웠다.
“하아.”
답문이 없다. 바쁜 가보다.
“휴.”
책상에 엎드렸다. 너무 서러웠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이토록 서러울 줄은 몰랐다.
“저, 갈게요.”
4시 30분. 남은 일이 있었지만 민정은 교무실을 벗어났다. 아직까지도 윤호에게는 답변이 없다. 왜 이러지?
“오늘도 수고했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려.”
윤호가 인사를 90도로 하고, 공사장을 빠져나온다. 힘이 들기보다는 무언가 뿌듯한 게 가슴에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선물을 할 수 있겠지?”
민정이 기뻐할 모습이 벌써부터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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