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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연인 - [여는 이야기]

권정선재 2007. 8. 18. 21:12
 




[여는 이야기]




“하아, 하아.”


윤호는 시계를 본다. 시간이 꽤 늦어있다.


“아, 진짜.”




“얘는 왜 안 와?”


민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아이스라떼에 꽂혀 있는 빨대를 문다. 하여간, 얘는 책임감이라는 게 결여되어 있다. 휴.


‘딸랑’


민정의 고개가 절로 출입구로 돌려진다. 다행히 윤호다.


“서, 선생님 죄송해요.”


“하여간. 매일 늦는다니까.”


그래도 안심이 되는 민정이다. 그래도 윤호가 교통사고라도 났을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매일 늦는 녀석이 그래도 예뻐보인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


민정은 싱긋 웃는다. 사실 윤호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마신 커피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라떼, 비엔나, 모카, 그리고 지금 마시는 아이스 라떼까지. 윤호를 만나는 날은 밤에 잠을 잘 생각을 접어야 한다.


“선생님. 가요.”


“그래.”


민정이 빙긋 웃으며 윤호를 따라 나선다.




“날이 좋아요.”


“그러게.”


8월의 햇살은, 딱 기분 좋게 두 사람을 감쌌다.


“선생님, 우리 오늘 뭐할까요?”


“글쎄다. 그런 건 남자인 네가 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치, 선생님이 어른이잖아요.”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 커플이다. 뭐, 이제 윤호는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두 사람의 연애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래서 내가 꼬맹이랑 노는 게 싫다니까.”


“선생님!”


“영화나 보자.”


민정은 윤호를 두고 극장으로 향했다.


“기, 기다려요!”




“뭐 볼래?”


“음.”


윤호가 검지를 문다.


“저거 어때요?”


민정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공포물이다.


“나 싫은데.”


“선생님, 나 저거 정말 보고 싶은데.”


윤호가 귀여운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이 녀석의 미소를 보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사람을 묘하게 끌어들이는 녀석이다.


“알았어.”


민정이 미소를 띠우며 영화표를 구매한다.




“선생님, 이거 정말 재밌대요.”


윤호가 영화 팜플렛을 들고 혼자 싱글 벙글이다.


“재밌어 봤자지.”


팜플렛에 언뜻언뜻 비치는 스틸사진만 해도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일 듯 싶다. 하지만 윤호는 그런 영화가 뭐가 그리 재밌어 보이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너는 공포 영화가 그렇게 좋냐?”


“그럼요.”


윤호가 씩 웃는다.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나중에 커서 꼭 공포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될 거라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화도 찍고 말이죠.”


“그래, 너 잘 났다.”


민정은 고개를 젓는다.


“너 뭐 먹을래?”


“음, 라떼요.”


윤호도 민정을 닮아서 커피를 좋아한다.


“야, 커피 많이 마시면 머리 나빠지거든?”


“아, 그래서 선생님이 그렇구나.”


윤호가 씩 웃는다.


“뭐?”


“저 라떼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윤호가 다시 씩 웃는다. 민정의 가슴이 덜컹한다.


“아, 알았어.”


하여간, 저 녀석 미소를 보면 가슴이 미친듯이 요동을 친다니까.


민정은 머리를 저으며 매점으로 갔다.




2 시간 후, 극장에서 나오는 민정의 얼굴을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윤호야 영화 정말 재밌었지?”


“네.”


하지만 윤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다.


“왜?”


“무서워서요.”

하얗게 질려있다.


“왜? 네가 보자고 한 영화잖아.”


“지금 무지막지하게 후회중이거든요.”


윤호가 입을 내민다.


“으유, 그래쪄요?”


민정이 윤호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선생님!”


“하여간 귀엽다니까.”


윤호는 항상 이렇게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민정이 싫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자신과 민정은 무려 6살이나 차이가 난다. 단순히 사제지간이 아니라도,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게 볼 커플임에 분명하다.


“선생님 자꾸 그러면 나 화낼꺼예요!”


“그래라? 누가 무섭대.”


민정이 씩 웃는다.


“치,”


윤호가 볼을 부풀리며 혼자서 앞장서서 걷는다.


“야, 삐쳤냐? 삐쳤어?”


윤호는 뒤도 안 돌아보네.


“진짜 삐쳤나보네.”


민정이 빙긋 웃는다.


“거기 서! 야 꼬맹이! 선생님이 치킨 사줄게!”


윤호의 발이 멈춘다.


“진짜요?”


윤호의 입가에 미소가 큼지막하게 떠오른다.


“그래.”


민정도 흐뭇하다.


“히히.”


치킨 이야기만 나오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윤호. 민정은 윤호가 신기하다. 매일 치킨을 먹으면서 치킨 이야기만 나오면 헤벌레. 으유.


“치킨이 그렇게 좋아?”


“네.”


윤호가 민정의 팔에 팔장을 낀다.


“그런데 윤호야.”


“네?”


“너 치킨 사준다는 여자 있으면 그 여자 좋아하겠다?”


“...”


윤호가 대답이 없다.


뭐? 뭐야? 진짜 그렇다는 거야?


“왜 대답이 없어?”


“꼭, 그런 건 아닌데요. 치킨을 사주는 여자라면 호감이 갈 것 같아요.”


“뭐?”


민정이 기겁을 하며 팔을 빼낸다.


“진짜야?”


“네.”


하, 어이가 없다.


“야, 꼬맹이. 너 진짜.”


민정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가 너 얼마나 예뻐해줬는데.”


“그러니까, 제가 선생님 좋아하잖아요.”


윤호가 씩 웃는다.


덜컹, 이 놈이 심장이 또 덜컹한다.


“흠흠.”


윤호의 미소를 보자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도 망각한 민정이다.


“아, 암튼 다음부터 내가 그런 거 물으면, 거짓말이라도 해."


“뭐라고요?”


윤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되묻는다.


“흠흠.”


“뭐라고요?”


민정은 계속 딴청을 피운다.


“뭐라고 해야하지?”


윤호가 검지를 물며 고민하는 척 한다.


“넙죽 따라가아죠?”


윤호가 씩 웃는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민정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진다.


“당연히 그 사람을 사랑하겠죠?”


윤호는 민정의 얼굴을 즐거운 듯이 본다.


“뭐라고 말하지?”


“그냥 나 좋다고 해!”


민정이 지나가는 말처럼 조용히 말한다.


“네?”


윤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귀를 가져다댄다.


“못 들었어요.”


“흠.”


“선생님.”


“그, 그냥 나 좋다고 하라고.”


민정이 더듬거리며 다시 말한다.


“헤헤.”


윤호가 씩 웃는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니까.”


민정의 얼굴이 붉어진다.


“선생님, 내가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알죠?”


“흠흠.”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나는 치킨 사주는 여자가 좋더라.”


“!”


윤호가 혀를 내밀며 뛰어가고 있다.


“뭐? 너 거기 안 서?”

“선생님이라면 서겠어요?”


“야!”


윤호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저 앞에 뛰어가고 있다.


“너, 잡히면 죽어!”


“그런데 어떻게 서요?”


“너 안 서!”


민정도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간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너 죽었어!”


“서, 선생님!”


민정의 표정을 보니 단순한 장난은 아닌 듯 싶다.


“아, 진짜.”


윤호는 울상을 지으며 도망간다.


“선생님, 잘못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