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달콤한 연인
“요리?”
“그래, 요리. 그래도 내가 잘 하는 게 요리인데, 왜 여태까지 요리 해드릴 생각을 못 해봤지?”
“선생님 댁에는 가본 적 있나?”
“응, 몇 번.”
“대단하군.”
민호가 혼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같이 장봐줄까?”
“아니.”
윤호가 씩 웃는다.
“잘 되면, 내가 맥주 한 턱 거하게 쏠게!”
“나도, 밥 먹고 싶다.”
민호가 가리킨 비닐봉투 속에는 라면 봉투가 한 가득 들어있었다.
“그래, 잘 되면, 내가 밥 해줄게.”
민호의 눈이 촉촉해졌다.
“윤호는 졸업했잖아요.”
“그래서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후후후.”
학년 부장이 낮게 웃었다.
“그렇다 하여도, 그 학생은 우리 학교를 졸업한 학생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생길 리가 없다니요!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요.”
“하지만!”
“시끄럽습니다.”
민정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헤어지던지, 사표를 내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
부장급 교사들이 모두 민정을 바라보았다.
“이건 제 사생활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사생활로 인해, 제가 직장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로 말이죠.”
“이번 일로 학생들이 교사들을 가볍게 보면 어떻게 합니까?”
갑자기 교감이 목소리를 바꾸었다.
“네?”
갑자기 민정은 할말이 없어졌다.
“이 경우 서민정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형수님 정도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주 가볍고 막역한 사이가 되지요. 특히나 이윤호 군의 경우 친한 후배가 많았다고 하니 이런 경우가 더욱 비일비재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된다면, 사석에서는 우리 학교의 동료 선생님들 역시, 형수님 친구분들 정도로 격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원하시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민정은 주먹을 쥐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후후후.”
교감이 낮게 웃었다.
“세상일 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 쉽사리 움직이지는 않더군요. 지금 서민정 선생님은 본인이 생각하는대로 모든 일이 쉽게 풀려나가실 것이라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리 쉽게 풀려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전교의 학생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본인의 권위도 그리 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텐데요? 굳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본인에게 득이 도리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
서민정은 대꾸없이 가만히 들었다.
“만일 지금 헤어지겠다고 말씀하신다면, 학생들은 모두 저희 학교 측에서 해결하도록 하죠. 더 이상 이 일이 퍼져나가는 것은 학교측에서도 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일이 교육청에 들어가게 된다면, 조금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서민정 선생님도 원치 않으실 테지만…….”
“누가요?”
“!”
민정의 입을 열었다.
“교감선생님이 어떻게 그 분들 마음을 아시죠? 그리고 교육청 역시 웃기군요. 한 사람의 사생활로 학교까지 탄압하려고 들다니!”
“그런 게 아니라. 교사의 위신이라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학생과 교사가 사귄다는 것은 교사의 위신이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교감 선생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그러던가요?”
“뭐요?”
민정이 눈을 똑바로 뜬다.
“어떤 학생인지 데려오시지요. 교사를 무시하는 그 학생 말이에요.”
“지금 그런 학생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럴 요소가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그럼 된 건가요?”
민정은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요?”
“지금 시간이 11시에요. 저는 여교사이고요.”
“그래서요?”
“저는 집에 가봐야 겠습니다.”
민정이 핸드백을 들었다.
“음.”
윤호는 토마토를 들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싱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탄력이 있고, 색이 붉고, 신선해보였다. 좋은 토마토였다.
“그리고.”
윤호가 천천히 카트를 밀었다. 이태리 산 파스타를 넣고, 잘게 다진 고기도 샀다. 보라색 양파와 신선한 버터도 샀다. 생크림과 체리 통조림까지 이제 커피만 사면 끝이다. 산뜻한 스파게티와 달콤한 매력의 핫모카 자바라면 분명히 선생님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선생님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시니까.
“헤헤.”
선생님이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나오는 윤호다.
“아! 초콜릿도 사야 하려나?”
다시 제과 코너로 카트를 신나게 밀고 가는 윤호다.
“서민정 선생님!”
“…….”
민정과 교감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시면 후일은 장담 못 해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민정이 목례를 하고, 교감실을 벗어났다.
“음, 로스팅이 아주 잘 되었는 걸.”
윤호가 시티로스팅을 한, 콜롬비아 커피를 부드럽게 쓸어보았다. 단 내가 은은히 풍겨 올랐다.
“킥.”
윤호는 도마를 꺼내서, 양파를 잘게 다졌다.
“토마토를 넣고, 양파, 쇠고기를 넣고 볶고.”
향긋한 버터의 향기와 신선한 채소와 부드러운 쇠고기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윤호가 여기다가 월계수잎과 파슬리가루를 뿌렸다. 보기에도 완벽한 파스타 소스가 완성이 되었다.
“흐읍.”
길거리를 걸으면서 울고 있는 민정을 모두가 바라보았지만, 그 누구도 오랜 시선을 주지는 않았다. 민정은 홀로 울면서 씩씩하게 걸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흠.”
교감의 얼굴이 굳어있다.
“내일 교육 위원회 소집해주세요.”
“!”
“흐읍.”
눈물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난다.
“흐읍.”
윤호가, 윤호가 너무 보고 싶다.
‘딩동, 문자 왔어요.’
윤호가 슬라이더를 열더니 얼굴이 밝아진다. 민정이다.
‘윤호야, 지금 뭐해? 나 지금 너무 심심해.’
윤호는 재빨리 손을 놀린다.
‘딩동.’
민정이 슬라이더를 민다. 윤호다.
‘선배, 지금 어디신데요?’
민정이 빙긋 웃는다. 자신에게는 윤호뿐이다.
“헤헤.”
민정이 눈물을 닦고 재빨리 손을 놀린다.
‘딩동. 편지 왔어요.’
커피에 휘핑크림을 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집 앞?”
윤호가 서두르기 시작했다.
“?”
민정이 핸드폰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문자가 좀 늦다.
‘딩동,’
민정은 서둘러서 핸드폰을 열어본다.
‘어서 집으로 들어오세요.’
“?”
민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파트 앞 벤치에서 일어났다.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민정이 핸드백에서 열쇠를 찾는다.
‘찰칵’
자물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윤호는 식탁 아래로 숨었다.
‘탁’
민정은 어깨가 축 쳐진 채, 아파트의 스위치를 올렸다.
“휴.”
잠시나마 깜짝파티를 기대한 자신이 바보였다.집은 텅 비어 있었고, 너무나도 고요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탁’
민정은 지친 몸 그대로 스위치를 올렸다.
‘팡!’
그 순간 뒤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다.
“?”
민정의 눈이 커다래졌다.
“서, 윤호야.”
“선생님.”
윤호가 씩 웃으면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네, 네가 여기 어떻게?”
“선생님 우울할까봐, 멋지게 등장했죠. 헤헤.”
“!”
민정의 가슴이 덜컹 한다.
“서, 윤호야.”
“선생님 무지 감동하셨죠?”
“으, 응.”
민정은 절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왜, 왜 울려고 그래요?”
“너, 너무 감동해서.”
“킥.”
윤호가 씩 웃는다.
“제가 한 감동 하죠?”
“고마워, 너무 고마워.”
윤호가 민정을 꼭 안아준다.
“선생님, 너무너무 힘든 거 알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선생님한테 힘이 되어줄게요. 내 어깨에 언제든지 기댈 수 있게 해줄게요. 그러니까, 앞으로 울지 말아요. 절대로 다른 남자 앞에서요.”
“응, 응.”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 울어요. 예쁜 얼굴 다 붓겠다.”
윤호가 민정의 눈물을 엄지로 닦아준다.
“치, 울보.”
“헤헤.”
민정이 금세 웃으며 똑바로 앉는다.
“그, 그런데 뭐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많이요?”
기껏해야, 케이크 하나와 커피 두 잔, 스파게티가 전부였다.
“선생님 이정도로 감동 받으시면 안 되는데.”
“어?”
“그러면 앞으로 해주기가 싫잖아요.”
“뭐?”
윤호가 씩 웃으며 민정을 꼭 껴안았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 그래.”
헤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
두 사람의 눈이 부드럽게 마주쳤다.
“사랑해요.”
“나, 나도.”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아들어갔다.
“하아.”
민정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선생님이 좋아요.”
“나도, 네가 정말 좋아.”
두 사람은 행복에 젖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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