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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연인 - [세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7. 8. 19. 21:01
 





3화. 사소한 오해




“하암.”


민정이 따스한 햇빛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드세요.”


“어?”


윤호가 하얀 드레스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너?”

“히.”


윤호가 씩 웃었다. 민정은 일단 윤호가 건네는 커피를 건네받았다.


“우, 우리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무슨 일요?”

윤호는 웃기만 했다.


“이윤호!”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윤호가 입을 내밀며 대답했다.


“진짜?”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그런 늑대로만 보이세요?”


“뭐,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니라니까 네가 더 예뻐보이네.”


“킥.”


윤호가 민정의 볼에 작게 입맞춤한다.


“선생님, 나 오늘 1교시부터 강의 있어서 가봐야 해요. 학교 안 데려다 줘도 되죠?”


“아주, 어린애 취급을 해라.”


민정이 머리를 묶으며 욕실로 향한다.


“그런데 너 아침 먹은 거야?”


윤호가 커다란 잔을 높이 든다.


“여기 라떼 한 가득 만들었어요. 이거 마시면 되요. 선생님도 에스프레소 말고 다른 거 드실래요?”


“아니. 나는 가다가 편의점에서 뭐 사먹을래.”


“와플도 있는데.”


“와플?”


민정이 욕실에서 고개만 내민다.


“맛있지?”


“네.”


윤호가 해맑게 웃는다.


“좋아, 그러면 나는 바나나 아이스 쿨러.”


“네.”


윤호가 대답을 하고 바로 바나나와 우유 등을 믹서에 넣는다.




“다녀올게요! 식탁에 있는 거 그냥 드시면 되니까, 맛있게 드세요!”


“그래, 잘 가.”


‘쾅’


민정이 문이 닫히고 식탁을 보았다. 정갈하고 깔끔해보이는 아침 식탁이었다. 바나나 아이스 쿨러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있었고, 와플에는 생크림이 달지도 않게 적당히 발라져 있었다.


“하여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민정이 와플을 한 입 깨문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그리고 바삭함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너무 맛있다.”


한 입 마신 바나나 아이스 쿨러 역시 너무 시원하고 달콤했다. 다른 커피 전문점에 빗대기에 너무 대단했다.


“진짜 이윤호, 손 하나는 내가 알아준다.”


민정이 빠르게 식탁을 비우고, 집을 나섰다.


“?”


그 때 민정의 눈 앞에 무언가가 빛났다.


“뭐지?”


가까이 다가갈수록 민정의 눈이 커다래졌다.


“서, 윤호야.”

예쁜 반지였다. 백금으로 도금이 되어서 넝쿨이 뻗어나가고 꽃봉오리가 곳곳에 달린 예쁜 반지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포스트잇도 붙어 있었다.


‘제가 선생님께 해드린 게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도 연인인데, 징표 하나 쯤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반지 하나 샀어요. 제가 남자라서 눈썰미가 없어서 그냥 제일 많이 달린 거 샀거든요. 그리고 아직 돈이 없어서 순금중에 제일 싼 걸로 샀어요. 나중에 돈 벌면, 꼭 다이아몬드로 사드릴게요. 선생님 정말 사랑하고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랄게요. 제가 이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선생님인 거 알고 계시죠? 저도 선생님이 저를 가장 사랑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사랑하는 선생님,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나만 생각하는 하루 되세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 2007년 가장 따사로운 어느 아침에.’


“서, 윤호야.”


민정의 눈에 눈물이 툭하고 맺혔다.


“고마워.”


민정이 조심스럽게 손에 반지를 껴봤다.


“어머, 꼭 맞아.”


언제 사이즈는 알았는지.


“흑.”


항상 자신은 윤호에게 받기만 하는 존재인가보다.




“친구, 어제 왜 집에 안 들어왔나?”


강의실에 들어가자 마자 민호 녀석이 윤호에게 다가온다.


“어?”


“어제 설마 선생님 댁에 있었던 건가?”


윤호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진짜인가?”


윤호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네, 친구! 드디어 만리장성을 쌓은 건가?”


“조, 조용히해!”


윤호가 민호의 입을 막는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냥 같이 있있어.”

“그냥?”

“응.”


윤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선생님이 울면서 들어오셨거든.”


“우셨다고?”


“응.”


윤호는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하다.


“그 분처럼 항상 웃고 다니시는 분이 왜?”

“그러니까 미치겠는 거지.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혼자서 우는 선생님 그냥 밤새 위로해드리고 왔다. 자식아.”


윤호가 씩 웃더니 수업 준비를 한다.


“혹시 말이다.”


“?”


민호의 표정이 웬일인지 심각해졌다.


“빨리 말해,”


“학교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닐까?”


“!”


윤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 설마.”


“아닐세, 그럴 가능성도 다분해.”


민호가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이 그리 울면서 들어올 까닭도 딱히 없지 않은가? 안 그런가? 분명히 무언가 학교와 관련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네.”


“이, 임마.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거 가지고 사람 가슴 철렁하게 하지마. 나 신경 쓰인단 말이야.”


윤호가 울상을 짓는다.


“분명해.”


“야!”


“내 직감이 틀린 것 봤나?”


윤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분명, 무언가 있어.”


민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정이 밝게 웃으며 교무실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 다들 무슨 일 있어요?”


신지 선생님은 황급히 결제서류를 품에 안고 부장 선생님께 갔다.


“왜, 왜들 이러시지?”


민정은 커피를 타려고 정수기 쪽으로 갔다. 커피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 여기 커피 하나도 없는 데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민정은 하는 수 없이 녹차 티백을 꺼내 한 잔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때 다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피 없어요.”


“네.”


바로 남자직원이 가서 위에 있던 커피를 내려주었다.


“!”

민정은 얼굴이 굳었다.


뭐, 뭐야? 지금 대놓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저기요!”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무실 사람들이 모두 민정을 바라보았다.


“지금 왜 이러시는 거죠?”


“앉아요!”


부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뭘 잘했다는 겁니까!”


“못한 건 또 뭔가요!”


민정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죄입니까?”


“네! 죄입니다.”


“!”


너무나도 단정적인 말투에 민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네? 뭐라고요?”


“죄라고요!”


“!”


민정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어째서 죄인가요?”


“어디 선생이 학생을 탐한다는 말입니까?”


“탐한다고요?”


민정은 어이가 없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희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지금 서민정 선생님은 온 학교를 벌집 쑤시듯이 들쑤셔 놓았어요! 오늘 교육 위원회도 소집된다고 합니다.”


“!”


민정은 얼굴이 굳었다.


“교육 위원회요?”


“그래요!”


이 말은 끝이라는 말이었다.


“그, 그게 무슨!”


학부모, 학생, 교육청, 학교, 모두가 알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민정을 두고 그들이 판결을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불공정합니다!”


“조용히 하십시오!”


‘딩동댕동’


“수업 종 쳤습니다. 수업이나 들어가시죠.”


부장은 냉랭한 표정으로 민정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파스타를 해드렸다고?”


“응.”


윤호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자네의 요리 솜씨는 어지간히 훌륭한 것이 아니지. 나도 종종 감탄하니 말일세. 친구의 요리 솜씨는 정말 일품일세.”


“고마워.”


윤호가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는다.


“뭐 마실래?”


“식혜.”

윤호가 동전을 더 넣고 비락식혜 한 캔을 뽑아 민호에게 건네준다.


“너 뭐 먹고 싶어?”


“어?”


“내가 밥해준다고 했잖아.”


윤호가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말했다.


“뭐, 먹고 싶냐고?”


민호의 표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스쳐지나갔다.


“그냥 말일세.”


“?”


“따끈한 흰 쌀밥에 스팸 한 조각, 그리고 김치찌개면 소원이 없을 것 같네만, 해줄 수 있나? 친구.”


“어이고, 나는 또 어려운 건 줄 알았네.”


윤호가 씩 웃는다.


“오늘 저녁은 스팸 파티다!”


“고맙네 친구!”


민호가 윤호를 덥석 껴안는다.


“켁, 켁, 숨막혀. 쿨럭.”


“사랑하네 친구! 움화화화!”


민호의 웃음소리가 휴게실에 울려퍼졌다.


“킥.”


하지만 숨이 막히다고 연신 기침을 해대는 윤호의 표정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아.”


민정이 한숨을 쉬며 세계사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교실에 들어가기가 조금은 두려웠다. 정말 교감의 말대로면 어떡하지?


‘드르륵’


‘팡!’


‘팡!’


“!”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뭐, 뭐야?


민정은 칠판을 바라보았다.


‘서민정 선생님의 연애를 축하드립니다!’


“!”

한 여자아이가 케이크를 들고 왔다.


“선생님 정말 행복하셔야 해요!”


“어?”


“제가 윤호 오빠에게 고백했다가, 좋아하는 여자 있다고 뻥 차였거든요. 그게 선생님이라니까 봐드리는 거예요.”


평상시 애교 많고 정많기로 유명한 헤진이였다.


“고, 고마워.”


반 아이들 모두가 민정을 보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저희 어머니께도 말씀 드렸어요.”


반장 요셉이었다.


“어?”


“요셉이 어머니 학부모 대표시잖아요. 오늘 편 들어드린대요.”


“!”


아이들이 너무나도 큰 사랑을 보내주고 있다.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 편이에요.”


“얘, 얘들아.”


“어제 소희가 들었대요. 선생님한테 다른 선생님들이 막 호통치시고 사표 내라고 하시는 거 말이에요.”


“아,”


민정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저희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세게사 수업이 가장 재밌어요. 다른 세계사 수업은 듣고 싶지 않아요.”


“고, 고마워.”


민정은 가슴이서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선생님 너무하세요.”


“어?”


“애인 없으시다면서요?”


“아,”


민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


갑자기 한 아이가 민정의 손을 가리켰다.


“왜?”


“그거 반지?”

그제야 민정은 자신이 손에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와!”


아이들의 함성이 더 커졌다.


“반지까지.”


“진짜 연인이구나!”


“헤헤.”


민정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너무 고마워.”




“그런데 큰일이다.”


“왜 또 그런가? 친구.”


“조만간 우리 100일 이거든.”


“100일?”


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생님하고 너에게도 100일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냐?”


“뭐?”


“솔직히 너희는 어느 날을 딱 잡아서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기도 뭣하지 않느냐? 그러면, 딱히 100일 따지기도 어려울터인데.”


“그, 그런가?”


그 점을 생각한 적이 없는 윤호다.


“그, 그냥 우리가 처음으로 핸드폰 커플 요금제 맞춘 날로 시작일을 잡으면 안 되나?”


“뭐?”


민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런 걸 했단 말인가? 왜 나에게는 말해주지 않은 건가?”


“내. 내가 왜 너에게 말해야 하는데?”


조금 당황한 윤호다.


“그래도, 우리 친구 아닌가!”


“친구여도, 그런 건 아니거든요."

“아무튼, 그 날을 시작일로 삼으면 되겠군. 그러면 언제가 100일인가?”


“오늘이 92일째야.”


“다행히 다음 주 일요일이군.”


“그런데 큰일이다.”


“왜?”

“돈이 없거든.”


윤호가 한숨을 쉰다.


“무언가 특별한 걸 해드려야 할텐데.”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그러나?”

“아르바이트?”




“오늘 2시입니다.”


“…….”


“교육 위원회에는 선생님들도 모두 참여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아 왜?”


“진짜 싫다.”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


민정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기대되는 군요.”


부장이 입술을 이상하게 비뜰었다.




“야!”


윤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나?”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일이었다.


“이게 힘들어도 하루 수입은 짭짤하다네. 하루 일당이 15만이나 된다네.”


“!”


일주일만 해도, 충분한 데이트 비용이 충당 되었다. 게다가 열흘 동안 일하면 괜찮은 선물도 하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하자.”




“네?‘


건설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 가는 허리로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저희 일 무지 잘합니다.”


갑자기 민호가 윤호를 번쩍번쩍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


윤호는 후다닥 거기서 내려왔다.


“흠.”


“저희가 아무리 일을 하는 요령이 없다고, 해도 20대입니다. 20대만의 신선하고 풋풋한 열정과 패기로 해내겠습니다. 이 젊음으로 10일도 못해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여자친구에게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제발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저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고용해주시면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흠.”


건설소장은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정말 열심히 할 건가?”


“두말 하면 잔소리십니다.”


“흠.”


건설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허락을 받았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나요?”


“지금 부터라도 하겠나?”




“헉헉헉. ”


윤호는 숨이 턱턱 막혀 죽을 지경이다.


“친구 겨우 이정도로 지쳐서 헉헉 대는 건가? 이래가지고 남은 아흐레는 어떻게 버틸 건가? 정말 답답하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거든.”


무슨 건물을 이리 높이 짓는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오르고 또 올라도, 계속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서두르게.”


민호는 아주 날라다녔다.


“하여간, 저걸.”


윤호도 힘겹게 벽돌을 짊어 날랐다.


“그래, 100일.”

특별한 이벤트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