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이별을 하다.
“다녀왔다.”
“이제 오는가?”
민호 녀석이 이제 좀 나아졌는지 만화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고 있다.
“아파 죽겠다며?”
“괜찮아졌네. 허허허.”
윤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정말 괜찮아?”
“그럼.”
“진짜지?”
민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가?”
“아니, 뭐. 네가 괜찮아졌다는데, 굳이 너에게 끓여주려고 사왔던 전복을 너에게 먹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뭐? 전복!”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친구, 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보게.”
요즘 윤호 밥을 해놓아서 며칠 밥을 먹었다고,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민호의 볼을 보며 윤호가 비웃음을 날렸다.
“너 처음 몸살 난 날부터 벌써 사흘이거든. 사흘동안 내가 해 놓고 간 밥 잘 먹고, 그랬으면서 무슨.”
“흠.”
정말 민호가 몸살 난 날부터, 윤호는 매일 같이 밥을 해놓고 나갔다. 자취를 하면서 매일같이 잠만 자고, 라면을 끓여먹게 한 것이 조금 미안해서였다.
“나 혼자 먹어야 겠다.”
“친구!”
벌써 사흘이었다. 예전이면 먼저 문자도 할 녀석이 문자가 무지하게 늦었다. 그 것도 거의가 단답형으로 오는 문자들이었다. 이제 슬슬 질리기 시작한 걸까? 그래 민정도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윤호가 대학에 가면, 대학에 가서 젊고 예쁘고, 늘씬한 아이들을 보면 자신 같은 선생은 눈에 차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윤호처럼 말 주변이 좋고, 여자애들에게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데 당연히,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게 사랑을 해도 된 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상황에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니 왠지 서러웠다. 그래도,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함이 오래 가기를 바랐는데, 아쉬웠다.
“하아.”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목을 부드럽게 간질이며 와인이 넘어갔다.
“분명, 이 녀석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못 할 거야. 그래 윤호는 마음이 약하니까. 그런 아이니까.”
먼저 이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민정이다.
“내가 말하면 죄책감 없이 편하게 헤어지겠지?”
민정은 낮게 웃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겨우 이별인가?”
마지막 선물.
“하아.”
민정이 씩 웃는다.
“그래 멋지게 냉정하게 차갑게, 단 칼에 끊을 수 있게, 이별을 고해주는 거야. 윤호도 나에게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도록.”
가슴이 차갑게 얼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하지만 윤호를 위해서였다.
“우와.”
윤호의 눈앞에 반짝이는 보석들이 윤호를 향해서 손짓을 했다.
“어떤 물건 찾으세요?”
“100일 기념 선물로 줄 거거든요.”
“가격대는요?”
그동안 가지고 있던 푼 돈에, 새로 번 돈과, 소장이 기특하다면서 특별히 준 보너스까지 합하면 300만원 가까이 되었다.
“300만원이요.”
“여기, 상품들이.”
“아!”
그게 전재산이었다.
“250만원이요. 이벤트도 해야 하거든요.”
“그러세요?”
직원이 웃으면서 다른 쪽으로 안내했다.
“이 쪽은 진짜 쥬얼리 들인데, 크기가 작아서 다소 가격이 낮거든요. 어떠세요? 사이즈는 작아도, 괜찮거든요.”
“그래요?”
윤호의 눈에는 다 예뻐보였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어떠죠?”
“여자친구 분이 20대 초반이시죠?”
“아, 아닌데요?”
“그럼 몇 살 정도 되셨는대요?”
여직원이 윤호를 바라보았다.
“스물 일곱이요.”
“스물 일곱이요?”
여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문제 있어요?”
“아, 아니요. 손님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대요?”
“스물인대요.”
“아.”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나이면, 너무 화려한 것 보다는 어느 정도, 심플한 것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여기 좀 보세요.”
하지만 이미 윤호는 기분이 나빠진 후였다.
“언제 헤어지지?”
민정이 뒹굴거렸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학교에 갈 일은 없지만, 더 무료했다. 여전히 윤호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 헤어져야지.”
민정의 입가에 미소가 띠워졌다.
“친구, 뭘 하는 건가?”
“케이크 만들기.”
윤호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우고 있었다.
“케이크?”
“오늘 저녁이 대망의 100일이잖아.”
“그런가? 정말 대단한 정성이군.”
민호가 윤호가 애써 깎아 놓은, 키위를 냉큼 집어 먹는다.
“야!”
“독이 있나, 검사해 본 거네.”
민호는 체리까지 마저 먹고, 도망을 친다.
“야! 죽을래!”
“하아.”
아직 전화를 하지 못했다.
“휴우.”
전화기만 잡으면 너무 떨린다.
“윤호야.”
추억이 너무 많다.
“하아.”
지우기에는.
“하아.”
돈이 생기면 바로 휘핑기계부터 사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윤호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그래도 이 케이크를 받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울, 민정의 얼굴을 생각하니, 그나마 팔이 덜 아픈 것 같다.
“히.”
윤호는 예쁜 반지 하나를 그 케이크 속에다 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보석들을 다 넣고 싶었지만, 민정이 먹고 삼켜 버릴까봐, 반지 하나만 넣고, 나머지는 프로포즈와 함께 건네주기로 결심했다.
“선생님 이 안 부러지시려나?”
나이가 나이일텐데.
“모르겠다.”
윤호는 그 반죽을 그냥 오븐기에 집어 넣었다.
“짜잔.”
부드러운 향기가 온 집안에 풍겼다.
“친구, 나 정말 먹으면 안 되나?”
“응.”
윤호가 민호가 케이크의 한 귀퉁이를 떼어 먹기 전에, 재빠르게 케이크를 치워버린다.
“너 이거 먹으면 진짜 죽는다.”
“친구, 친구 사이에 이렇게 야박하게 굴 것인가?”
“됐거든!”
윤호는 아까 미리 휘핑 해놓았던 휘핑크림을 케이크에 잔뜩 발랐다. 달콤한 눈이 내린 듯 케이크가 새하얘졌다.
“친구 이건 뭔가?”
민호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에프킬라 처럼 생긴 것을 마구 흔든다.
“어? 그거 계속 흔들어.”
“계속?”
윤호가 다 펴바르고, 민호의 손에서 그 것을 빼앗는다.
“고마워.”
윤호가 그 것을 누르니, 분홍색의 예쁜 크림들의 흘러 나온다.
“이 거랑, 이 것도.”
민호가 양손에 똑같이 생긴 것들을 흔든다.
“줘.”
이번에는 노랑색과 파랑색 거품이 쏟아져나온다.
“우와.”
“멋있지?”
윤호가 브이를 하더니, 위에 과일로 마무리를 한다.
“맛있겠지?”
“그래.”
민호가 입맛을 다시는 게 보이자 윤호는 조금씩 불안해진다.
“치, 친구. 내가 이번 주말에 꼭 케이크를 만들어 줄테니, 절대로 이 케이크에는 손 대면 안 되네.”
“진짜?”
민호가 이성을 찾는 게 보인다.
“그래.”
윤호가 케이크를 상자에 집어 넣는다.
“내가 냉장고에 샴페인 넣었놨거든. 그거랑 샴페인 글라스 좀 챙겨주라. 나 좀 씻을게.”
“그런 것도 다 준비했냐?”
“그럼.”
민호가 고개를 젓는다.
“정말 지극정성이다.”
“히.”
윤호가 욕실로 들어간다.
“너, 마시지마!”
한 모금 미리 마시려던 민호가 황급히 잔을 내려놓는다.
“내, 내가 뭘.”
‘딩동’
민정이 슬라이더를 밀었다.
‘선생님, 저인데요. 오늘 시간 되세요?’
윤호였다. 다행히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다행이다.”
민정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윤호야 미안해.”
민정이 옷을 챙겨 입는다.
“나, 오늘 늦을 거다.”
“친구, 또 외박을 할 셈인가?”
“외박은 안 할테니, 걱정을 말아라.”
민호가 빌려준 하얀색 면바지에, 검은색 셔츠, 빨간색 타이, 그리고 하얀색 조끼, 다시 갈색 벨트와 갤색 구두, 마지막으로 하얀색의 모자까지,
“브라보.”
민호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내 감각은 여전하군.”
“친구, 고맙다.”
“고마우면, 또 한 턱 쏴라.”
“오케이.”
윤호가 빙긋 웃는다.
“다녀올게.”
“잘 하게 친구!”
“응.”
“하아.”
발걸음이 유달리 무겁다.
“이별.”
오랜만이다.
“히.”
쇼 윈도우에 자신을 비춰본 윤호는 흐뭇하다. 간만에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다. 깔끔해 보인다. 민호가 발라준 왁스로 세운 머리도 너무 예쁘다. 그리고 그동안 쓰지 않았던 검은 뿔테 안경까지 쓰니, 정말 자신이 봐도 놀랍다.
“날씨 좋다.”
따사로운 햇살이 윤호를 감쌌다.
“기분이 좋은 걸.”
“선생님!”
윤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민정도 손을 들었다.
“헤헤.”
윤호는 뭐가 좋은 지 얼굴에 한 가득 미소를 띠우며 민정에게 달려온다.
“그,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하지만 민정은 마음을 다잡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 아니.”
민정은 윤호의 너무나도 해맑음에 살짝 당황했다.
“선생님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윤호가 뒤에서 케이크를 꺼낸다.
“오늘?”
민정은 곰곰이 생각해본다.
‘무슨 날이지?’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부드럽고 달콤하게 생긴, 케이크가 나왔다.
“마, 맛있겠다.”
“그렇죠?”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 또 철렁했다.
설민정, 정신 차려. 오늘 이별을 고하러 오는 거라고.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돼. 차갑게 최대한, 윤호가 나에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끊어주여아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 거다. 그래 설민정. 흔들리지 말자.
“드세요.”
윤호가 씩 웃는다.
“나 할 말 있어.”
“네?”
윤호가 민정을 바라본다.
“무슨 말인데요?”
윤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저, 저기.”
말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 웃음 가득한 착한 얼굴을 보면서,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힘들다. 힘겹다.
“우리.”
“?”
“헤어져.”
민정은 내뱉었다.
“네?”
윤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뭐라고요?”
“헤어지자고.”
민정이 눈을 감았다. 가슴에 무언가가 왈칵 솟아 올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헤어지는 것도 아니지.”
민정이 최대한 차갑게 말한다.
“우리는 시작한 적도 없으니까.”
“!”
윤호의 얼굴이 굳었다.
“선생님.”
“아무 말도 하지마.”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갈게.”
“가지 마요.”
헤민이 돌아서자, 윤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퍼진다.
“가지 마요!”
민정은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 가면 다시는 나 못 만나요.”
민정은 눈에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가지 마요!”
윤호의 목소리에 울음이 잔뜩 섞여 있다.
“가지 말아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가지 말아요. 내가 더 잘할게요!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윤호가 악을 쓴다.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진다.
“가지 말라고요! 오늘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민정은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선생님!”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가지 말아요!”
모퉁이만 돌면 된다. 거기서는 마음놓고 울어도 된다.
“가지 말라고요!”
모퉁이를 돌았다.
“흐윽.”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정말 봇물처럼 눈물이 터져나왔다.
“미안. 미안.”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아버렸다.
“하아. 하아.”
눈물이 계속 솟아 나왔다.
“미안. 미안.”
민정은 눈물을 애써 참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선생님. 선생님.”
윤호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그냥 민정을 부르고 있다.
“가지 말아요.”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눈물이 윤호의 얼굴에서 반짝인다.
“하아. 가지 말아요. 제발.”
따사로운 햇살이 잔인하게 비췄다.
“하아.”
너무나도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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