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눈꽃송이-
눈이 내리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른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딸깍’
“이야 눈이 오네.”
첫 눈이었습니다. 새하얀 첫 눈. 첫눈인데 제법 소복이 쌓여 있었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밟히는 소리.
“어? 이렇게 눈이 많이 올 리가 없는데?”
무심결에 내려다본 발아래에는 눈들이 작게 둔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헤헤”
“너?”
얼마 전부터 저랑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이민성입니다.
“좋아요?”
그가 밝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니. 하나도 안 좋아.”
저는 냉랭하게 그에게서 뒤돌아섰습니다. 전 그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되니까요. 저는 그 사람을 차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웃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밟아줘서 고마워요.”
저는 고개를 들어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선배가 안 밟을까 봐요. 얼마나 걱정 했었는데요. 선배가 내가 만든 눈 둔덕을 밟아줘서 너무나도 감사해요.”
저는 눈물이 벅차올랐습니다. 고맙다고 합니다. 저는 그냥 밟았는데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밟은 거였는데요 그 사람은 말이에요. 제가 좋아할 것 같아서 손이 꽁꽁 얼면서도 그걸 만들었답니다. 저는 이 사람 못 좋아하는데. 잊어야 하는데 못 잊겠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을 어떻게 잊어야 하나요?
“손 줘 봐.”
그 사람은 제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억지로 그 사람의 손을 잡아당겼습니다.
“손이 꽁꽁 얼었잖아.”
저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꼭꼭 주물렀습니다. 그 사람의 손은 제가 정말 미안할 만큼 빨갛게 얼어있었습니다.
“헤헤. 우리 손잡았네요.”
“응?”
이 사람의 정말 순수한 미소.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네?”
“너무 미안하잖아.”
이 사람 좋아하면 안 되는 건데 저는 이 사람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고마워. 나 먼저 갈게.”
“잘 가요~ 내일 봐요.”
내일? 아 인터뷰가 있었군요.
“그래 내일 봐.”
저는 그 사람에게 모질게만 구는데 그 사람은 너무나도 밝습니다. 너무 밝아서 두렵습니다. 저는 천천히 길을 건넜습니다.
“안돼요! 선배!”
뭐가 안 된다는 말이죠?
‘끼이익’
‘탁’
“뭐야?”
저기 길에 누워 있는 사람.
바닥을 적시는 붉은 피.
깨진 범퍼.
“안 돼!!”
죽으면 안돼. 어차피 나 죽을 사람인데.
죽으면 안돼!!!
“안 돼!! 제발!! 죽지 말고 살아!”
왜 안 움직여!!
‘삐뽀삐뽀’
“민성아!!”
민성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바보야! 나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저는 민성이를 막 흔들었습니다. 그순간때 민성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선배.”
“응?”
“고마웠어요.”
민성이가 저를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어?”
민성이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떨어뜨렸습니다.
“민성아.”
저의 외침만이 공허한 하늘로 울려 퍼졌습니다.
“괜찮아?”
“응.”
나나였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뛰어온 모양입니다.
“너 바쁘잖아.”
“너 밥은 먹었어?”
밥? 아, 그런 게 존재했군요. 그런 것도 있군요.
“너 한 끼도 안 먹었지? 가자.”
“배 안 고파.”
“그러다 너까지 병원 신세 질래?”
나나가 오열을 하며 저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저기 민성이가 있는데, 내가 어딜 가. 응?”
“민아야.”
“나나야. 나 때문에 아파. 민성이가. 민성이가!”
“아직 민성이 죽은 거 아니라며. 아직은 아니라며!”
“그래도, 그래도!”
“정민아!”
‘짝’
나나가 저의 뺨을 때렸습니다.
“나나야.”
“정신 좀 차려.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민성이도 일어나.”
“!”
“제발, 좀 상황을 똑똑히 보란 말이야!”
누워있는 민성이 보입니다.
“민성이다.”
“네가 건강해야지 민성이를 간호할 거 아냐. 그러니까 나랑 밥 먹으러 가자. 응? 제발, 부탁이야.”
“그래.”
나나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저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럼 어서 가자.”
“응.”
민성이를 잠시라도 두고 가는 게 불안하지만, 나나의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빨리 밥을 먹고 돌아오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차트를 들여다보니 답답합니다. 의사 생활 32년 만에 처음입니다.
“기증이 가능한가요?”
“다행히, 뇌와 척추만 다쳤습니다.”
하지만 심장 이식이라니, 모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수술할 수 있습니까?”
이민성의 보호자라는 그의 형의 눈빛은 맑았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요.”
“여보세요?”
이런 상황에 무슨 전화일까요?
“네?”
심장이라니, 이렇게 민성이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에 말이죠.
“그게.”
무슨 일이야? 나나가 입모양으로 물었습니다.
“심장이 들어왔대.”
“!”
나나는 재빨리 저의 전화기를 낚아챘습니다.
“네, 수술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네, 아, 지금 다행히 그 병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너 지금 무슨 짓이야?”
“너 수술 받아.”
“나나야?”
“어서, 그래야지 네가 건강해야지 민성이를 돌보지.”
오랜 기다림.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다. 그런데 민성이가 아픈 걸요?
“내가 민성이 곁에 있을 게.”
“어?”
나나는 저의 걱정을 미리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알았지?”
“알겠어.”
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일은 진행되었습니다.
“하아.”
얼마나 자고 일어난 걸까요? 심장의 두근거림이 조금 덜한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일어났어?”
“여기서 잔 거야?”
“응.”
나의 소중한 친구, 나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물이라도 마실래?”
“응.”
시원한 물을 마시니 정신이 듭니다. 한 이틀은 잔 모양입니다.
“민성이는 어쩌고, 여기 와 있어?”
“어?”
그 순간 나나의 눈이 떨립니다. 그 순간을 놓칠 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기자 출신인 걸요.
“무슨 일이야?”
“민아야.”
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립니다.
“고맙습니다.”
“네, 병원 정기적으로 다니셔야 합니다.”
“네.”
퇴원하고 나오는 길,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저의 심장이 되어준 그 사람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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