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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세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1. 8. 08:13

 

 

 

추억에 살다.

 

 

세 번째 이야기

 

 

 

신지야!

 

민정아!

 

신지와 민정이 서로를 꼭 안았다.

 

도대체 이게 얼마 만이야. 나쁜 계집애. 한 번 한국으로 놀러 오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안 올게 뭐냐?

 

미안.

 

민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돌아다닌다고 간 건데 그게 시간이 되게 오래 됐네.

 

.

 

신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앉아. 내가 음료수랑 간단히 먹을 것 좀 내올게.

 

음료수만 가져 오면 돼.

 

?

 

신지가 민정을 돌아봤다.

 

?

 

여기 케이크.

 

민정이 윤호가 준 케이크를 내밀며 미소를 짓자 신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거 윤호가 만든 거 아니야?

 

맞아.

 

거기, 다녀 온 거야?

 

신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자 민정 역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 그런데 그러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신지가 민정의 눈을 들여다 봤다.

 

윤호 아직도 너 못 잊고 있어.

 

그래, 그렇더라.

 

민정이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걔랑 한 판 하고 오는 길이야.

 

윤호가 뭐라고 그래?

 

아직도 자기 사랑하지 않냐고 묻더라.

 

민정이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너는 뭐라고 대답했어?

 

대답?

 

민정이 신지의 눈을 들여다 봤다.

 

이 선생님이 오셔서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어.

 

이 선생님?

 

신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민용 오빠가 거기를 갔단 말이야?

 

? .

 

민정은 살짝 당황했다.

 

? 왜 오면 안 되는 거야?

 

민용 오빠가 거기를 가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신지가 살짝 아래 입술을 물었다.

 

요즘 윤호랑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윤호가 그 가게 차린다고 했을 때 오픈 했을 때 말고는 간 적이 없거든. 내가 좀 들러서 물건 사주라고 해도 다 알아서 잘 될 거라던 사람인데.

 

,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나 있는 거 보고 들렸겠지.

 

그렇겠지?

 

그럼.

 

신지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민정 역시 민망하다.

 

, 그나 저나 준이 어디 있어?

 

?

 

신지가 생각에서 빠져 나와 민정을 바라봤다.

 

준이?

 

우리 예쁜 준이 얼굴 좀 봐야지.

 

, 그래.

 

민정이 싱긋 웃으며 준이를 찾자 신지 역시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좋아하다니?

 

윤호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삼촌 지금 삼촌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한 거야?

 

잘 알고 있어.

 

그 말은 작은 엄마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신지 무시한 적 없어!

 

윤호가 소리를 지르자 민용 역시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다만,

 

다만?

 

윤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민용을 바라봤다.

 

서 선생 쉽게 마음에서 지워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야.

 

그러면 삼촌은 선생님 마음에서 지워내지도 않고 작은 엄마에게 청혼을 했던 거였어? 그런 거야?

 

후우.

 

민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 해 보란 말이야!

 

그래.

 

윤호가 따지듯 묻자 민용이 내뱉듯이 동의했다.

 

나 신지를 사랑해서 결혼하자고 한 거 아니었어. 그저, 그저 신지가 불쌍했어. 그래서 청혼을 했던 거야.

 

, 말도 안 돼.

 

윤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니까 지금 삼촌의 말은 삼촌이 그저 동정으로, 그 알량한 동정심 하나로 작은 엄마를 받아 들였다는 거야? 그런 거야?

 

너 말이 심하잖아.

 

사실이잖아.

 

윤호가 매서운 눈으로 민용을 노려 봤다.

 

삼촌이 동정심 하나로 결혼을 했다고, 작은 엄마에게 청혼을 했다고 말을 해 버리면 작은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건데? 또 준이는 어떻게 되는 건데? 작은 엄마 뱃속에 있는 준이 동생은 뭐가 되는 건데? 삼촌이 마음도 없으면서 작은 엄마를 품에 안은 거야? 그렇다고 인정하는 거야?

 

누가 그렇대?

 

그렇다며.

 

윤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 삼촌에게 정말 실망이야.

 

윤호.

 

선생님 못 잊었으면, 아직도 선생님 못 잊었던 거라면 작은 엄마에게 청혼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면 안 되었던 거잖아. 어떻게, 어떻게 작은 엄마에게 그리도 쉽사리 청혼을 할 수가 있어?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고?

 

민용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신지는 내가 없으면 안 되었던 상태였어.

 

삼촌의 오만이야.

 

뭐라고?

 

민용이 당황한 듯 윤호를 바라봤다.

 

지금 너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그건 삼촌의 오만이라고 말을 했어.

 

너 지금 삼촌에게 할 말이라고 생각하고 그딴 말 하는 거야?

 

그래.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정말로 삼촌에게 실망했어. 작은 엄마는 삼촌이 없어도 너무나도 잘 살 사람이었어. 괜히 오빠가 작은 엄마의 인생에 끼어든 거라고. 지금 작은 엄마가 그 잘 나가는 작곡가 일 때려치고 뭘 하고 있는데?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있잖아. 지금도 여기저기서 일은 들어오고 있지만, 준이랑, 태교 때문에 그 모든 일들 다 못하고 있잖아. 전에는 자기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을 덜 누리려고 하고 있잖아. 그런데 불쌍하다고? 불쌍해? 그래?"

 

넌 몰라. 어른들의 일이라는 게 있는 거야.

 

어른들의 일?

 

윤호가 코웃음 쳤다.

 

삼촌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어? 삼촌 혼자만 어른이 아니라는 거 말이야. 나도 어른이야.

 

넌 아직 나에 비하면 풋내기야. 이제 겨우 스무 살이잖아.

 

아직도 그 나이에 모든 것을 가둬두려고 하는 거야?

 

?

 

그래, 그 나이라면 나랑 선생님은 될 수 없어.

 

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열 한 살이나 차이가 나니까.

 

그래 너희 두 사람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

 

하지만 그런 나이 따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윤호가 민용의 눈을 들여다 봤다.

 

나는 선생님을 사랑해.

 

그저 어린 날의 동경일 뿐이야.

 

삼촌이야 말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하는 게 사랑이야. 삼촌이 하는 건 그저.

 

그저?

 

민용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흘러 나왔다.

 

다른 사람에 대한 대리 만족을 선생님에게 원했을 뿐이잖아.

 

대리 만족?

 

그래.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지니까, 그저 작은 엄마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아니었어?

 

그런 거 아니야.

 

정말이야?

 

그래.

 

민용은 날카로운 눈으로 윤호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거 어쩌지?

 

?

 

윤호가 살짝 빈정 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삼촌이 그저 선생님을 누군가의 대타로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진심으로 선생님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대신으로 선생님이 필요했기에 그랬다는 생각이 말이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쉽게 사랑을 하고 쉽게 보낼 수가 있나?

 

사랑했으니까 보낸 거야.

 

.

 

윤호가 코웃음을 쳤다.

 

사랑하면 정말로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윤호.

 

어쨌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마.

 

윤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은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람이잖아. 삼촌에게는 이미 작은 엄마가 있어. 그 사실 마저 부정하지는 않겠지?

 

“…….

 

민용이 가만히 윤호를 응시했다.

 

더 이상 삼촌이 여기에 끼어들 자리는 없어. 그러니까 여기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 만일 그랬다가는.

 

윤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삼촌이라고 해도 가만히 두지 않아.

 

.

 

민용이 코웃음을 쳤다.

 

너 지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그래.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고하는 거야.

 

경고?

 

민용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네가 나에게 경고를 하는 거라고?

 

그래.

 

조카가 삼촌에게 경고를 하는 거야?

 

아니.

 

윤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남자가 남자에게 하는 경고야.

 

!

 

민용의 얼굴이 단단히 굳었다.

 

이윤호.

 

삼촌이라고 해도 봐주지 않아.

 

윤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