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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두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1. 7. 00:10

 

 

 

추억에 살다.

 

 

두 번째 이야기

 

 

 

도대체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정적을 깨고 윤호가 무겁고 탁한 목소리로 민용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조카가 운영하는 케이크 샵에도 못 올 만큼 우리 사이가 그렇게 먼 사이였던 가?

 

민용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윤호를 바라봤다.

 

삼촌.

 

그렇게 열 내지 마.

 

민용이 테이블에 걸터 앉았다.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거야?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 아니잖아.

 

삼촌이야 말로 왜 그러는 거야?

 

윤호가 차가운 눈으로 민용을 바라봤다.

 

이제 작은 엄마에게만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다른 여자를 돌아볼 틈이 있어?

 

다른 여자?

 

민용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누가 다른 여자라는 거야?

 

삼촌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여.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삼촌의 그 표정에 속는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안 속는다고.

 

윤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삼촌 아직도 선생님 좋아하지?

 

무슨?

 

민용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네 작은 엄마 들으면 굉장히 슬퍼 하겠다.

 

그럼 여기에는 왜 왔어?

 

?

 

민용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오다니? 아까도 말 했잖아. 내 조카가 있는 가게에 내가 못 올 사람이야? 우리가 그 정도 사이야?

 

삼촌.

 

윤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민용을 바라봤다.

 

삼촌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삼촌이 지금 이런 마음 먹으면 정말로 안 되는 거잖아. 도대체 왜 이래?

 

너는 괜찮고?

 

민용 역시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너는 서 선생에게 그런 마음 가져도 되는 거야?

 

그래.

 

어째서?

 

어째서라니?

 

윤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당연한 거잖아.

 

우리 두 사람 중 그 어느 사람도 더 이상 서 선생에게 다가가면 안 돼. 그렇다면 서 선생이 힘들어질 거라는 거 너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다시 바보 같은 짓을 하려고 그래?

 

민용이 윤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 선생 힘들어질 거라는 거 알잖아.

 

나 혼자라면 안 힘들게 할 수 있어.

 

윤호야.

 

삼촌 제발 이러지 마.

 

윤호가 앞치마를 벗었다.

 

나 더 이상 어린 애 아니야. 삼촌만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으면 우리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어.

 

서 선생 절대로 아프지 않게 할 자신 있어?

 

당연하지.

 

윤호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만큼 윤호는 너무나도 간절하고 간절했다.

 

그런 마음도 없이 내가 지금 이런 마음 가진 거 같아?

 

.

 

민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서 선생에게 아무런 마음 없어.

 

무슨 뜻이야?

 

윤호의 눈이 민용을 바라봤다.

 

내가 왜 선생님에게 아무런 마음 없어?

 

그 동안 잘 잊고 살았잖아.

 

그런 척 했을 뿐이야.

 

아니.

 

민용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서 선생 마음에서 완전히 지웠었어. 너 버리고 간 사람이라고 완전히 잊었었다고, 그런데 괜히 다시 서 선생이 나타나니까 마음이 흔들리는 것 뿐이야. 그 시절의 어린 윤호가 된 거 뿐이야.

 

그런 거 아니야.

 

윤호는 단호히 부정했다.

 

단 한 번도 선생님 잊은 적 없었어.

 

거짓말 하지 마.

 

민용이 윤호를 바라봤다.

 

너 서 선생 떠올리지 않고 있었어. 서 선생이라는 사람 완전히 지우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아닌 척 하는 거야? 도대체 왜 너의 솔직한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삼촌이야 말로 인정해.

 

?

 

민용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뜻이야?

 

아직 좋아하잖아.

 

윤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직도 선생님 사랑해서 이러는 거잖아. 아직도 선생님 마음에 담아둬서 그러는 거잖아, 내가 선생님 곁에 있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지금 내게 이러는 거잖아. 그런 거면서, 그러면서 왜 아닌 척 해? 왜 아닌 것처럼 행동해?

 

아니니까.

 

거짓말.

 

윤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왜 삼촌 마음을 숨기려고 해? ?

 

내 마음 숨긴 적 없어.

 

숨긴 적이 없다고?

 

윤호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

 

윤호야.

 

이런 이야기 하지 말자.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나 거짓말 하는 삼촌하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나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민용이 억울한 듯 윤호를 바라봤다.

 

나 정말로 더 이상 서 선생에게 아무런 마음 없어. 네 작은 엄마랑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너 지금 오해하고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윤호야.

 

그런 게 아니라면, 삼촌 도대체 왜 여기에 온 거야?

 

?

 

서 선생님이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

 

!

 

민용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삼촌의 마음 단 한 구석도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어. 나에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어. 지금 이 곳에서 서 선생님을 만났다고 작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

 

윤호가 울부짖으며 물었다.

 

못 하잖아.

 

“…….

 

민용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 봐. 삼촌.

 

하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

 

민용이 윤호를 보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지금 서 선생에게 흔들려.

 

삼촌!

 

내 말 들어.

 

민용이 윤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행동할 거야.

 

?

 

민용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 선생을 힘들게 하겠다는 거야?

 

사랑하니까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네가 사랑하는게 그 사람 힘들게 하는 거야.

 

아니.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삼촌만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는다면 나와 선생님은 전혀 힘들지 않아. 그 사이에 삼촌이 끼어 드니까,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 사이가 너무나도 아프고 선생님이 힘들어 한 거야.

 

너와 함께하면 그 시간들이 기억나지 않을 거 같아? 서 선생에게 그런 기억 안 떠올리게 할 거 같아?

 

처음에는 힘들겠지.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될 거야. 더 이상 삼촌이 선생님께 아무런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선생님도 힘들어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잖아. 우리 둘이 서로를 원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단호히 생각해?

 

?

 

민용의 직접적인 물음에 윤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윤호 역시 그 점이 두려웠다. 너무나도.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뭘 확신해?

 

서 선생님이 너를 마음에서 지웠으면 어쩌려고?

 

“……..

 

윤호는 가만히 민용을 바라봤다.

 

그건 너도 모르는 거 아니야?

 

삼촌도 마찬가지잖아.

 

윤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삼촌도 확신 못 하는 거 아니야?

 

확신해.

 

뭐라고?

 

윤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째서?

 

나는 어른이니까 확신해.

 

삼촌. 그런 건 말도 안 돼.

 

말이 돼.

 

민용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너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삼촌,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윤호야.

 

민용의 눈이 애절하다.

 

나는 네가 힘든 게 싫어.

 

지금 삼촌이 나를 힘들게 해.

 

제발.

 

민용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어.

 

어째서?

 

이미 안 되었잖아.

 

하지만, 그러니까 이제는.

 

아니.

 

민용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헛된 미련 갖지 마. 두 사람 정말로 될 수 없는 사이야. 진짜로, 진짜로 될 수 없는 사이라고.

 

어째서, 그렇게 확정짓듯이 말을 하는 거야? 혹시 삼촌이 선생님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맞지?

 

윤호 너.

 

삼촌, 삼촌에게는 작은 엄마가 있잖아.

 

윤호가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러니까 나는 좀 내버려 둬.

 

못 그래.

 

어째서?

 

후우.

 

민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서 선생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