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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첫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1. 6. 00:23

 

 

 

추억에 살다.

 

 

첫 번째 이야기

 

 

 

선생님 혼자 기다리시기 무료하시죠? 이거 케이크 좀 드시면서 좀 기다리세요. 생각보다 늦게 끝나네요.

 

난 괜찮은데.

 

드세요.

 

윤호가 미소를 지으며 산딸기 무스 케이크를 민정 앞에 내려 놓았다.

 

우와. 선생님 돈 없어.

 

서비스에요.

 

윤호가 씩 미소를 지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 이런 것도 못 해드릴까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면 무지하게 섭섭합니다.

 

그런 거 아니야.

 

윤호의 짖궃은 말에 민정이 눈 까지 꼭 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윤호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어쩜 그대로세요?

 

?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호를 바라봤다.

 

뭐가 그대로야?

 

모든게요.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 시절이에요.

 

, 윤호야.

 

윤호가 잠시 말 없이 민정을 지그시 바라보자 민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지 기다리겠다.

 

선생님.

 

윤호야. 우리 이러면 안 되잖아.

 

선생님. 우리가 이러면 왜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왜 이러면 안 되는 건데요? 우리가 뭐가 안 되는 건데요?

 

윤호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당신 이제 내 담임 선생님 아니야. 당신은 그저 나에게 여자일 뿐이고, 나는 그저 남자일 뿐이야.

 

, 윤호야.

 

더 이상 도망가지 말아요.

 

윤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1년 동안 당신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맸어요. 하지만 당신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나와 삼촌을 피해서 한국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런 당신을 기다렸어요. 언젠가 돌아올 게 분명하니까.

 

윤호야. 그러지 마. 윤호 네가 그러면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지잖아. 윤호 너 힘든 거 싫어.

 

선생님이 없으면 더 힘들다는 거 왜 모르세요? 선생님이 없으면 너무나도 힘든 거 왜 모르세요?

 

윤호야.

 

제발이요.

 

윤호가 간절한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더 이상 자꾸 그렇게 도망가지 말아요. 선생님만 쫓아다니는 저 불쌍하지 않으세요? 불쌍하지 않아요?

 

이러지 마. 윤호야. 윤호 네가 자꾸 이러면 선생님 더 힘들어져. 이러면 앞으로 윤호 네 얼굴 못 봐.

 

선생님.

 

윤호야.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 사이는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그 두 사이를 부정할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아니요.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시간을 부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물론 선생님은 한 때 제 선생님이셨죠. 저를 가르치셨어요. 하지만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 사이로 우리를 묶어 두지 말아요. 더 이상 그러지 말자고요. 이제 우리 변해도 되는 거잖아요. 영원히 그런 사이로 머무를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아니.

 

민정이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건 변할 수 없어.

 

어째서요?

 

제발 그만해. 윤호야.

 

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윤호를 바라봤다.

 

또 이러고 싶지 않아. 나 더 이상 과거에 힘들고 싶지 않아. 윤호 너도 이해하잖아. 선생님 너무 힘들었어. 너와.

 

민정이 잠시 말을 멈추자 윤호가 미간을 찌푸린다.

 

삼촌이요?

 

그래, 이 선생님.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더 이상 너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 두 사람 사이를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고 두 사람이랑 얽히고 싶지 않아.

 

좋아요.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윤호야.

 

괜찮아요.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저도 막 억지로 졸라서 선생님을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윤호야 미안.

 

민정이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선생님도 윤호가 너무나도 좋아. 하지만, 우리 더 이상 서로가 사랑하면 안 되는 사이인 거잖아. 우리 두 사람 그냥 평범하게 사랑할 수 없는 사이인 거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아파하지 마. ?

 

선생님은 도대체.

 

윤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도대체 우리가 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계신 거예요? 우리가 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냐고요!

 

윤호가 소리치자 민정이 눈을 꼭 감았다.

 

윤호야 이미 우리 한 번 아팠잖아. 이미 우리 한 번 너무 아팠는데 또 그런 일을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 선생님은 그러고 싶지 않아. 선생님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겨우 아프지 않게 된 거잖아. 겨우 이 선생님이랑 윤호 너 잊었어.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난 이유가 뭔데,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

 

윤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정말 제가 마음 속에 단 한 군데도 없으세요?

 

“…….

 

민정은 가만히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선생님!

 

그건.

 

민정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선생님, 대답해주세요.

 

윤호가 지그시 민정을 바라봤다.

 

제가 정말 선생님 마음에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나요?

 

!

 

딸랑

 

그 순간 가게에서 벨 소리가 났고 민정과 윤호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 선생 아니야?

 

, 이 선생님?

 

민용을 보는 윤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 선생, 신지가 지금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옛 제자를 만난 것이 반갑더라도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면, 친구를 먼저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

 

.

 

민정이 가방을 집어 든다.

 

신지 집에 있나요?

 

그래.

 

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윤호야.

 

민정이 머뭇거리는 눈으로 윤호를 바라보지만 윤호는 그런 민정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선생님은 이만 갈게.

 

기다려요.

 

?

 

민용의 눈이 가늘어진다.

 

지금 네 작은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 하는 거 못 알아 들었어? 네 작은 엄마 지금 둘째 가져서 몸도 안 좋은데 기다리게 할 샘이야?

 

삼촌은 시끄러워.

 

?

 

윤호의 눈이 민정에게 꽂혔다.

 

케이크 줄 테니까 가지고 가세요. 어차피 여기도 케이크 사려고 들리신 거 잖아요. 안 그래요?

 

, 맞아.

 

잠시만 기다려요.

 

윤호는 진열장으로 걸어가서 새 하얀 케이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카운터로 들고 가서 새빨간 케이크 상자에 담아서 포장했다. 마지막은 금색이 살짝 섞여 있는 리본으로 마무리.

 

여기요.

 

, 고마워.

 

민정이 쭈뼛거리며 카운터로 다가섰다.

 

윤호야. 그 케이크 얼마야?

 

그냥 드릴게요.

 

?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너 이것들 다 파는 거잖아. 나에게 공짜로 줘도 돼?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는 거 아니야?

 

아르바이트?

 

순간 민용이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윤호는 그런 민용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민용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 녀석이 자기 가게를 남의 가게인 것처럼 말을 했나 싶어서 조금 웃겨서 말이야. .

 

삼촌.

 

알았어.

 

민용은 두 손을 들었다.

 

어서 가세요.

 

, 그래.

 

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민용과 윤호를 바라봤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안 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윤호가 민용을 바라보자 민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네?

 

알았어요.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럼 윤호야 고마워.

 

.

 

윤호는 무뚝뚝한 말투로 대꾸를 했다.

 

이 선생님 그럼 먼저 갈게요.

 

, 가세요.

 

민용이 미소를 지었다.

 

신지가 많이 기다립니다.

 

, .

 

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두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

 

그럼 정말 갈게.

 

.

 

윤호는 더 이상 민정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럼.

 

민정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딸랑

 

정적.

 

삼촌.

 

?

 

정적.

 

 

 

하아.

 

민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왜 저러는 거야?

 

이런 거 싫었다. 이런 게 싫어서 도망갔다.

 

후우.

 

나타나면 안 되었던 것일까? 다시 신지 앞에서 보이면 안 되었던 걸까? 하지만 친구인데,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인데 그 친구를 다시 못 보는 것도 너무나도 웃긴 일 아닌가? 하지만 민정은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