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첫 번째 이야기
“선생님 혼자 기다리시기 무료하시죠? 이거 케이크 좀 드시면서 좀 기다리세요. 생각보다 늦게 끝나네요.”
“난 괜찮은데.”
“드세요.”
윤호가 미소를 지으며 산딸기 무스 케이크를 민정 앞에 내려 놓았다.
“우와. 선생님 돈 없어.”
“서비스에요.”
윤호가 씩 미소를 지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 이런 것도 못 해드릴까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면 무지하게 섭섭합니다.”
“그런 거 아니야.”
윤호의 짖궃은 말에 민정이 눈 까지 꼭 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윤호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어쩜 그대로세요?”
“어?”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호를 바라봤다.
“뭐가 그대로야?”
“모든게요.”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 시절이에요.”
“유, 윤호야.”
윤호가 잠시 말 없이 민정을 지그시 바라보자 민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지 기다리겠다.”
“선생님.”
“윤호야. 우리 이러면 안 되잖아.”
“선생님. 우리가 이러면 왜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왜 이러면 안 되는 건데요? 우리가 뭐가 안 되는 건데요?”
윤호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당신 이제 내 담임 선생님 아니야. 당신은 그저 나에게 여자일 뿐이고, 나는 그저 남자일 뿐이야.”
“유, 윤호야.”
“더 이상 도망가지 말아요.”
윤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1년 동안 당신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맸어요. 하지만 당신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나와 삼촌을 피해서 한국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런 당신을 기다렸어요. 언젠가 돌아올 게 분명하니까.”
“윤호야. 그러지 마. 윤호 네가 그러면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지잖아. 윤호 너 힘든 거 싫어.”
“선생님이 없으면 더 힘들다는 거 왜 모르세요? 선생님이 없으면 너무나도 힘든 거 왜 모르세요?”
“윤호야.”
“제발이요.”
윤호가 간절한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더 이상 자꾸 그렇게 도망가지 말아요. 선생님만 쫓아다니는 저 불쌍하지 않으세요? 불쌍하지 않아요?”
“이러지 마. 윤호야. 윤호 네가 자꾸 이러면 선생님 더 힘들어져. 이러면 앞으로 윤호 네 얼굴 못 봐.”
“선생님.”
“윤호야.”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 사이는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그 두 사이를 부정할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아니요.”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시간을 부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물론 선생님은 한 때 제 선생님이셨죠. 저를 가르치셨어요. 하지만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 사이로 우리를 묶어 두지 말아요. 더 이상 그러지 말자고요. 이제 우리 변해도 되는 거잖아요. 영원히 그런 사이로 머무를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아니.”
민정이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건 변할 수 없어.”
“어째서요?”
“제발 그만해. 윤호야.”
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윤호를 바라봤다.
“또 이러고 싶지 않아. 나 더 이상 과거에 힘들고 싶지 않아. 윤호 너도 이해하잖아. 선생님 너무 힘들었어. 너와.”
민정이 잠시 말을 멈추자 윤호가 미간을 찌푸린다.
“삼촌이요?”
“그래, 이 선생님.”
민정이 윤호의 눈을 바라봤다.
“더 이상 너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 두 사람 사이를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고 두 사람이랑 얽히고 싶지 않아.”
“좋아요.”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윤호야.”
“괜찮아요.”
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저도 막 억지로 졸라서 선생님을 힘들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윤호야 미안.”
민정이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선생님도 윤호가 너무나도 좋아. 하지만, 우리 더 이상 서로가 사랑하면 안 되는 사이인 거잖아. 우리 두 사람 그냥 평범하게 사랑할 수 없는 사이인 거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아파하지 마. 응?”
“선생님은 도대체.”
윤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도대체 우리가 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계신 거예요? 우리가 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냐고요!”
윤호가 소리치자 민정이 눈을 꼭 감았다.
“윤호야 이미 우리 한 번 아팠잖아. 이미 우리 한 번 너무 아팠는데 또 그런 일을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 선생님은 그러고 싶지 않아. 선생님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겨우 아프지 않게 된 거잖아. 겨우 이 선생님이랑 윤호 너 잊었어.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난 이유가 뭔데,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
윤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정말 제가 마음 속에 단 한 군데도 없으세요?”
“…….”
민정은 가만히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선생님!”
“그건.”
민정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선생님, 대답해주세요.”
윤호가 지그시 민정을 바라봤다.
“제가 정말 선생님 마음에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나요?”
“!”
‘딸랑’
그 순간 가게에서 벨 소리가 났고 민정과 윤호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 선생 아니야?”
“이, 이 선생님?”
민용을 보는 윤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 선생, 신지가 지금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옛 제자를 만난 것이 반갑더라도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면, 친구를 먼저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민정이 가방을 집어 든다.
“신지 집에 있나요?”
“그래.”
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윤호야.”
민정이 머뭇거리는 눈으로 윤호를 바라보지만 윤호는 그런 민정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선생님은 이만 갈게.”
“기다려요.”
“어?”
민용의 눈이 가늘어진다.
“지금 네 작은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 하는 거 못 알아 들었어? 네 작은 엄마 지금 둘째 가져서 몸도 안 좋은데 기다리게 할 샘이야?”
“삼촌은 시끄러워.”
“뭐?”
윤호의 눈이 민정에게 꽂혔다.
“케이크 줄 테니까 가지고 가세요. 어차피 여기도 케이크 사려고 들리신 거 잖아요. 안 그래요?”
“마, 맞아.”
“잠시만 기다려요.”
윤호는 진열장으로 걸어가서 새 하얀 케이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카운터로 들고 가서 새빨간 케이크 상자에 담아서 포장했다. 마지막은 금색이 살짝 섞여 있는 리본으로 마무리.
“여기요.”
“고, 고마워.”
민정이 쭈뼛거리며 카운터로 다가섰다.
“윤호야. 그 케이크 얼마야?”
“그냥 드릴게요.”
“어?”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너 이것들 다 파는 거잖아. 나에게 공짜로 줘도 돼?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는 거 아니야?”
“아르바이트?”
순간 민용이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윤호는 그런 민용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민용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 녀석이 자기 가게를 남의 가게인 것처럼 말을 했나 싶어서 조금 웃겨서 말이야. 킥.”
“삼촌.”
“알았어.”
민용은 두 손을 들었다.
“어서 가세요.”
“그, 그래.”
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민용과 윤호를 바라봤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안 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윤호가 민용을 바라보자 민용이 어깨를 으쓱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네?”
“알았어요.”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럼 윤호야 고마워.”
“네.”
윤호는 무뚝뚝한 말투로 대꾸를 했다.
“이 선생님 그럼 먼저 갈게요.”
“아, 가세요.”
민용이 미소를 지었다.
“신지가 많이 기다립니다.”
“아, 네.”
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두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
“그럼 정말 갈게.”
“네.”
윤호는 더 이상 민정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럼.”
민정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딸랑’
정적.
“삼촌.”
“왜?”
정적.
“하아.”
민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왜 저러는 거야?”
이런 거 싫었다. 이런 게 싫어서 도망갔다.
“후우.”
나타나면 안 되었던 것일까? 다시 신지 앞에서 보이면 안 되었던 걸까? 하지만 친구인데,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인데 그 친구를 다시 못 보는 것도 너무나도 웃긴 일 아닌가? 하지만 민정은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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