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열두 번째 이야기
“선생님 죄송해요.”
“어?”
윤호의 갑작스런 사과에 민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윤호 네가 뭐가 미안해?”
“이 집도 겨우 구하신 거였잖아요. 당장 갈 곳도 없으실 거 같은데 이렇게 나가게 해서 말이에요.”
“아니야.”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처음에 들어와 살라고 했을 때 조금 부담스러웠어.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고 말이야.”
민정이 씩 웃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뭐가요?”
“너희 가족에게 폐 끼치지 않는 거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너무나도 죄송했거든.”
“선생님.”
윤호가 고개를 숙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착하기만 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그렇게 착하기만 해요?”
윤호가 물기 적은 목소리로 말을 하며 민정을 바라봤다.
“왜 항상 그렇게 혼자 바보처럼 착해서 모든 아픔을 다 끌어 안으려고 그래요? 정말 왜 그런 거예요?”
“윤호야.”
민정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 하나도 안 착하다는 거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나 신지를 사랑하는 이 선생님을 신지에게서 빼앗으려고 했어. 두 사람이 아직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고, 나 되게 나쁜 사람이야. 나 하나도 안 착한 사람이야. 윤호야.”
민정이 씩 웃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선생님이 무슨 잘못이에요?”
윤호가 살짝 아래 입술을 물었다.
“전부 다 저랑 삼촌 때문인 거잖아요. 도망치듯 풍파고등학교에서 떠난 이유도 저와 삼촌 때문이었고, 부천에 있는 여고에서 떠난 것도 저와 삼촌이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서였잖아요.”
“아니야. 윤호야.”
민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 쉴 여유를 주고 싶었어. 그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으니까 말이야.”
“거짓말 하지 마세요.”
윤호가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선생님, 선생님은 선생님께 쉼을 준 게 아니잖아요. 그냥 지금 당장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거였잖아요. 더 이상 모든 걸 외면하고 피하려고만 하지 말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그 상처의 한 가운데 서려고 하지 말아요.”
“유, 윤호야.”
“이제는 제가 있을게요.”
“!”
윤호가 따뜻하게 민정을 품에 안았다. 잠시 윤호를 밀어내려던 민정은 그 따뜻함에 그대로 윤호에게 안겼다.
“선생님을 많이 좋아해요.”
“…….”
민정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동서 괜찮아?”
“네.”
해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신지가 미소로 답했다.
“안 괜찮을 건 또 뭐예요. 사실 민정이 이 집에 들어오라고 말을 하면서부터 그럴 거 다 알고 있었어요. 어느 정도는 저도 예상했던 일이라서 그렇게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다만.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요.”
신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동서, 왜 그렇게 강한 척을 하려는 거야?”
“네?”
신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해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에 이혼한 거, 그거 미안해서 지금 그렇게 서방님께 꽉 잡혀서 사는 거야? 전에 이혼하자고 말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님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거고?”
“혀, 형님.”
해미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나는 동서가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사는 지 모르겠어. 동서 일하는 거 보니까, 되게 많은 사람들이 동서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그 일들 왜 안 하는 거야? 응? 되게 많던데 말이야.”
“준이가 있잖아요.”
신지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을 바라봤다. 방금 전에 준이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아직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준이 동생도 있으니까, 그런 일은 조금씩 줄여 나가야죠. 두 아이를 봐야 하니까요.”
“아니.”
해미는 고개를 저었다.
“날 봐.”
“네?”
“나도 아들이 둘이야.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 일을 포기한 적이 없어. 물론 어머님과 아버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지. 자기도 어머니와 아버님이 계시잖아. 준이를 맡겨도 좋다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 번 준이의 곁에 없었었잖아요. 더 이상 준이의 옆 자리에 엄마의 자리를 비워두고 싶지 않아요. 이제 준이가 조금씩 커가고 있는데 더 이상 준이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아요.”
“그게 어째서 혼자 두는 거야?”
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서, 이러다가 정말 나중에 후회해. 동서가 하고 싶은 거 하나도 하지 못해서 무지하게 후회한 다고.”
“후회해도 괜찮아요.”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제 아이들을 위해서 제가 내린 선택이니까요. 제가 직접 내린 선택이니까 후회 같은 거 할 일 없어요.”
“정말.”
해미가 작게 미소를 짓는다.
“동서는 나랑 다르게 정말로 엄마구나?”
“네?’
신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반쪽 짜리 엄마인데 동서는 온전한 엄마라고, 나는 내 일에 치어서 윤호랑 민호랑 잘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정말 동서 하는 거 보면 내가 다 부끄러워서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니까.”
“무슨, 그런 말을.”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동서 힘들면 말해.”
“네.”
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말씀 드릴게요.”
“이혼이라니.”
순재는 연신 꿍시렁 거렸다.
“민용이 그 자식이 제대로 미친 거야. 안 그러고서야 어디 감히 이혼이라는 이야기를 또 꺼내들 수가 있어. 게다가 지 마누라 배 속에는 지 씨를 받은 자식까지 있는데 말이야. 하여간,”
순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망구가 집에서 아들 단속 어떻게 하는 거야?”
“아니, 왜 또 나에게 그래요?”
문희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민용이가 애유? 이제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라서, 자기 앞 가림은 자기가 하겠다는데 왜 그렇게 성화에요?”
“그게 앞 가림을 잘 하는 거면 내가 말도 안 하지. 나이가 겨우 서른 넘었으면서 무슨 이혼을 또 하려고 그래.”
“보니까 준이 어멈은 이혼할 마음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민용이도 이혼 못 할 테니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괜히 그랬다가 나중에 머리만 아프고 복잡하잖아요. 그냥 민용이 들어오면 모른 척 해요.”
“어떻게 모른 척을 해?”
순재가 벌컥 화를 냈다.
“이 놈의 할망구가 미쳤나?”
“그만 좀 해요.”
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당신이 도련님이고 내가 당신 집 식모로 보여요! 나 당신 부인이에요.
문희가 고함을 쳤다.
“왜 고함을 치고 그래!”
순재는 당황했는지 시뻘건 얼굴로 지지 않고 고함을 쳤다.
“그러는 당신은 왜 고함을 쳐요?”
문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매일 밥이야!”
“이 할망구가!”
“그 놈의 할망구 소리!”
문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민용이가 이혼을 하면 이혼을 하는 거지, 왜 나한테 그래요? 내가 민용이 이혼 하라고 부추기기라도 했어요? 왜 나한테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 나 아무 것도 한 거 없는데 왜 나한테 그래요!”
“아, 알았어.”
순재가 식은 땀을 흘렸다.
“왜 그렇게 신경질을 내고 그래?”
“화 안 나게 생겼어요?”
문희가 어깨를 들썩였다.
“한 번만 더 내 성질 건드려 봐.”
문희가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나 참.”
순재는 점점 작아져 가는 자신의 자리가 너무나도 씁쓸했다.
“아까 못 한 대답해주세요.”
“어?”
민정이 고개를 갸웃하며 윤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거요.”
윤호의 눈이 진지하다.
“저는 여전히 선생님을 너무나도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그 시절 그 마음과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윤호가 민정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유, 윤호야.”
민정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요?”
윤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왜 제가 선생님께 제 마음을 표현만 하려고 하면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듯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 내가 언제?”
“삼촌 좋아하세요?”
윤호가 민정의 눈을 들여다 봤다.
“지금 삼촌 좋아하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나 이 선생님 안 좋아해.”
민정이 도리질 쳤다.
“신지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
“그 말은…”
윤호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작은 엄마만 없다면 삼촌이 더 좋다는 이야기. 맞나요?”
“
“하.”
윤호가 이마를 짚었다.
“그런 거구나.”
윤호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 거예요?”
윤호가 민정을 바라봤다.
“그런 거냐고요!”
윤호의 고함 앞에 민정은 가만히 윤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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