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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열세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2. 3. 00:03

 

 

 

추억에 살다.

 

 

열세 번째 이야기

 

 

 

선생님, 왜 아무런 말씀도 하지 못하세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맞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거예요?

 

윤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윤호야.

 

민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 이러지 말자.

 

선생님.

 

더 힘들어지잖아.

 

민정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 더 이상 힘든 거 하고 싶지 않아. 너무나도 싫어.

 

왜 자꾸 도망 가요.

 

그래.

 

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네 말대로 지금 도망 다니는 거야. 지금 이 현실이라는 게 너무나도 고달파서 도망가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도망갈 자리를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나를 몰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는 선생님을 위한 거예요.

 

윤호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요.

 

알아,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도 윤호 네가 나 많이 걱정해주는 거 알아. 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 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잖아.

 

어째서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쳐.

 

민정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나 되니?

 

왜 말이 안 되는데요?

 

윤호가 따지듯이 물었다.

 

선생님이 삼촌하고 사귀셨던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면서, 어째서 저랑 사시는 건 문제가 되는 데요.

 

이 선생님과 내가 사귀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거야. 그러면 안 된다는 거야.

 

민정이 윤호를 바라봤다.

 

너는 이 선생님 조카잖아.

 

그런 거 따지지 좀 마세요.

 

윤호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를 도대체 왜 따져요?

 

이윤호, 그런 거 다 중요하잖아.

 

민정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요해.

 

아니요. 선생님.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윤호는 고개를 저으며 민정의 말을 모두 부정했다.

 

선생님과 저의 마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요.

 

아니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해.

 

민정의 말에 윤호는 너무나도 아리고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왜 자신의 마음에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신 거예요?

 

윤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민정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지금 선생님의 마음이 뭐라고 외치는 지 전혀 들리지 않으시나요?

 

윤호의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민정은 시선을 피했다.

 

윤호야 우리 이러지 말자, 나는 내 생각을 절대로 바꿀 마음이 없어. ?

 

저 역시도 제 마음을 절대로 바꿀 생각이 없어요. 선생님을 사랑했고, 사랑해요.

 

윤호야. 솔직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웃기고 그렇잖아.

 

민정이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우리 두 사람 나이가 도대체 얼마나 차이나는데?

 

.

 

윤호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또 나이에요?

 

?

 

그냥 말하세요.

 

윤호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제가 싫다고.

 

윤호야.

 

이런 저런 이유 대지 마시라고요.

 

윤호의 목소리가 탁했다.

 

저 그런 게 더 상처에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요?

 

윤호가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는 안 된다는 건데요? ?

 

너무 많은 이유가 있잖아. 윤호야.

 

민정 역시 너무나도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은 너를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만에 하나라도 내 마음이 너를 원해도 나는 그 마음을 너에게 이야기 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요?

 

우리 두 사람 다 아플 테니까.

 

민정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윤호 네가 힘든 거 싫어.

 

선생님이 이러시는 게 더 저를 힘들게 하는 거라는 거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아니.

 

민정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곁에 있는 게 더 너를 힘들게 하는 일일 거야. 다른 건 내가 알지 못해도 그거 하나는 확신해.

 

선생님.

 

윤호야.

 

민정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윤호를 바라봤다.

 

우리 두 사람 더 이상 과거의 그런 바보들 아니잖아. 우리 이제 조금은 둘 다 어른이 된 거잖아.

 

이게 어째서 어른이에요? 우리 두 사람 마음이 그대로인 거랑 어른인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윤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제가 지금 궁금한 게 뭔지 아세요?

 

민정은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지금 우리의 나이 차이가 얼마가 나건, 선생님이 과거에 누구를 사랑했건 그 따위 사실들은 저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요. 그저, 선생님의 지금 마음 그게 중요해요.

 

윤호야. 하지만.

 

제 얘기 안 끝났어요.

 

윤호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민정을 바라봤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제대로 한 군데 앉지 못하시면, 저도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지만, 결국 삼촌도 방황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삼촌이 방황하게 된다면, 선생님의 그 소중한 친구인 작은 엄마도 다치게 될 거예요.

 

!

 

그 점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민정이었다.

 

선생님.

 

내가 떠나면 돼.

 

민정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신지를 찾는 게 아니었어. 내 생각이 너무나도 짧았어. 그냥 밖에서 잠시 만나던가 했어야 했는데.

 

민정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다 내 탓이야.

 

왜 다 선생님 탓을 하시는 거예요?

 

윤호가 민정의 팔을 잡자 민정이 움찔했다.

 

선생님은 단 하나도 잘못한 거 없어요. 몇 번을 말씀을 드려야 알아듣겠어요. 선생님은 그저 선생님 마음이 가시는데로 행동하시면 돼요.

 

내 마음?

 

.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남 눈치 보지 마세요.

 

민정이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그런 바보가 되지 마시라고요.

 

윤호야.

 

저는 선생님을 지켜드리고 싶어요.

 

윤호가 진지한 눈으로 민정을 바라봤다.

 

더 이상 선생님이 여기 저기 휘둘리시면서 아프고 상처 받는 그런 모습 보고 싶지도 않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두려워서 혼자서 숨고 아파하고 도망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윤호가 살짝 침을 삼켰다.

 

그냥 선생님 행복만 생각하세요.

 

하아.

 

민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민정이 쓸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어째서요?

 

윤호가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을 위해서 사셔야죠.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선생님만 생각하시라고요.

 

윤호가 민정의 앞에 똑바로 섰다.

 

지금 선생님 얼마나 바보 같은 지 알아요?

 

내가?

 

.

 

윤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마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하나도 듣지도 못하면서 괜히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선생님 지금 정말로 바보 같아요. 왜 자꾸 자신의 마음을 속이려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내 마음 속인 적 없어.

 

거짓말.

 

윤호가 확정짓듯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야.

 

민정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적 없었어.

 

좋아요.

 

윤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정의 눈을 바라봤다.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윤호의 물음에 민정이 살짝 숨을 멈추었다.

 

어서 대답해요.

 

이윤호.

 

어서요!

 

윤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시다면서요?

 

하아.

 

어서요.

 

윤호가 다시금 민정을 재촉했다.

 

선생님의 대답이 너무나도 궁금해요.

 

윤호야 이건 아니야.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정말.

 

그냥 말씀하시면 되는 거예요.

 

윤호가 겨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상처 받을 거 그런 거 생각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오직 선생님만을 생각하며 말씀하세요.

 

윤호가 민정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저는 선생님 곁에 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인가요?

 

후우.

 

민정이 한숨을 토해냈다.

 

윤호 너는.

 

민정이 살짝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민정이 고개를 들어 윤호를 바라보는 그 순간.

 

!

 

애미야!

 

아래 층에서 소란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