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다섯 번째 이야기
“도대체 진짜 행복이라는 게 뭔데?”
윤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사랑하면서 가짜로 사는 거, 그런 게 삼촌이 말하는 진짜 행복이라는 건가?”
“그만해.”
민용의 어깨 역시 가늘게 떨렸다.
“네가 뭘 안다고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모를 건 도대체 뭐냐고!”
윤호가 다시 고함쳤다.
“나 더 이상 18살의 풋내기 이윤호가 아니야. 그 시절 어린 꼬맹이가 아니라고, 나도 남자란 말이야.”
“그래봤자. 너는 서 선생하고 나이 차이가 11살이나 나는, 한참이나 어린 그런 어린 아이일 뿐이야.”
“예전에 단 한 번도 그런 걸 느낀 적 없었어.”
윤호가 이를 악 물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서 선생 덕이겠지.”
민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서 선생이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는지 너는 알기나 하는 거야?”
“그 정도로 선생님은 나를 좋아했던 거야. 선생님이 불편했던 것들을 많이 감수하면서도 말이야.”
“오, 이런.”
민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구나?”
“뭐?”
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삼촌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저.”
민용이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서 선생이 너로 인해서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봤어?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 말이야.”
“삼촌.”
“아무리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난 시간의 일이야. 그렇다고.”
민용이 답답하다는 듯 윤호를 바라봤다.
“예전의 그 감정 그대로 있을 리가 없어.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두 사람 이미 헤어진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어떻게 그 마음이 그대로 있을 수가 있다는 거야. 웃기는 일이야.”
“하나도 안 웃겨.”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하나도 안 웃기다고.”
“웃겨.”
민용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윤호를 바라봤다.
“너도 지금 속으로는 불안해하고 있잖아. 속으로 지금 서 선생이 너 안 바라봐주면 어쩔까 생각하잖아.”
“아니,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않아. 확실한 거 왜 생각해? 확실히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고.”
“너를 어떻게하면 다치지 않게 할까 생각하겠지.”
민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네가 아픈 게 싫어.”
“그러면 그냥 나를 믿어.”
“그게 너를 다치게 하는 길이면?”
“다치지 않아.”
윤호가 억울하다는 듯 민용을 바라봤다.
“어째서 내가 다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보이니까.”
“아니.”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삼촌은 그저 아직도 선생님에게 마음이 남아 있기에,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기에 그러는 거 뿐이야. 삼촌이 나를 걱정한다고?”
윤호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지. 그렇게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단 한 번도 가게로 찾아오지 않아?”
“그건.”
“됐어.”
윤호가 민용의 말을 끊었다.
“삼촌도 내가 밉잖아.”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윤호가 민용을 노려봤다.
“삼촌은 그 시절 이후 나를 그냥 조카로 보지 않고 있잖아. 나를 연적으로 보기 있잖아. 그렇잖아.”
“웃기지 마. 연적이라니.”
민용이 고개를 저었다.
“부정하지 마. 그 시절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서 삼촌은 절대로 나를 그냥 조카로 보지 않았어.”
“오해야.”
“오해?”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온 몸으로 느껴졌어.”
“!”
민용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이 아이는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구나. 조심해야 겠다. 이 아이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라고 생각하는 게, 다 느껴졌다고, 그랬단 말이야.”
윤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이후 점점 삼촌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어. 형에게는 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했지만 내가 다가가면 자꾸만 어색하게 굴었어. 내가 그걸 못 느꼈을 줄 알아? 모를 줄 알아?”
윤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집에서 내가 누구를 제일 좋아했었는지 알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형? 다 아니야. 나는 삼촌이 제일 좋았어.”
“윤호야.”
“그 사이를 부순 건.”
윤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바로 삼촌이야.”
“그건.”
민용이 다가가려다가 멈칫한다.
“다 오해야.”
“오해?”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그 말도 안 되는 오해 타령이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짓말 좀 작작해. 아직도 오해라니. 아직도 오해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윤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진짜로 오해니까 그러지. 나는 너에게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민용은 당황했다.
“나야 말로 네가 나를 피해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어. 내가 누구를 더 아낄 거 같아. 민호? 웃기지 마. 나는 민호 싫어해.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해. 하지만 네가 나를 피했잖아. 그랬잖아.”
“나는 삼촌을 피한 적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민용이 바로 받아쳤다.
“나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오 제발.”
윤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이러지 마. 삼촌.”
“윤호야.”
“나는 선생님이 좋아!”
윤호는 고함치듯 말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선생님을 잊고 산 적이 없어. 지금 나는 내 눈 앞에 선생님이 나타났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좋아, 그리고 다시 선생님의 곁에 서고 싶어. 지금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하아.”
민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육군 사관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고려대학교에 왔어. 남들 다 좋다고 하는 대학교라고.”
“그게 뭐 대단해?”
“뭐?”
윤호가 민용을 바라봤다.
“무슨 의미야.”
“서 선생이 정말 그런 네 모습이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해? 다 너를 위해서 그런 말 했다는 거 너는 아직도 모르는 거야?”
“무, 무슨.”
민용은 머리를 긁적였다.
“서 선생은 그저 네가 엇나가는 게 싫었을 뿐이야. 자신의 반에 있는 한 아이가 어긋나는 거, 그 모습을 보기 싫었을 뿐이라고. 게다가 그 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면 더더욱, 말이야.”
“선생님이 가진 마음을 삼촌이 어떻게 알아? 삼촌은 선생님도 아니잖아! 삼촌은 선생님이 아니잖아.”
윤호의 어깨가 떨렸다.
“억지로 내 마음 돌려 놓으려고 하지마, 아무리 그렇게 삼촌이 노력해도 쉽게 접어지지 않을 거야.”
“윤호야.”
“제발!”
윤호가 고함을 쳤다.
“그만해.”
윤호가 자켓을 집어들었다.
“나가, 문 닫을 거야.”
“
“나가라고!”
윤호가 민용을 노려봤다.
“그럼 어디에서 지내면 될까?”
“글쎼?”
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옥탑방 비는데.”
“어?”
민정이 신지를 바라봤다.
“옥탑방이 비다니?”
“아, 민호 녀석 하버드로 유학을 갔거든. 그래서 그 방에 나랑 오빠가 살기로 했고, 서재로 쓰던 방은 조금 개조를 해서, 윤호 녀석 침대만 겨우 집어 넣어. 거의 가게에 지내서 말이야.”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오빠가 쓰던 옥탑은 비어.”
“그렇지만.”
민정이 말 끝을 흐렸다.
“어색하지 않을까?”
“그럴까?”
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철컥’
“애미야. 다녀왔다.”
“다녀오셨어요? 어머니.”
문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지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와 계시냐?”
“안녕하세요.”
민정이 재빨리 인사를 했다.
“아이고, 우리 윤호 담임 선생님 아니세요.”
문희가 너무나도 반갑게 민정에게 다가왔다.
“여기는 다 어쩐 일이래?”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대요.”
“어머.”
문희가 민정의 손을 잡았다.
“잘 했어요.”
“고맙습니다.”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라도 안 드리고.”
“주려고 했어요.”
신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순간 신지의 머리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문희는 꽤나 민정을 에뻐라 했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민정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듯 했다. 신지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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