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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다. - [다섯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9. 1. 13. 00:06

 

 

 

추억에 살다.

 

 

다섯 번째 이야기

 

 

 

도대체 진짜 행복이라는 게 뭔데?

 

윤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사랑하면서 가짜로 사는 거, 그런 게 삼촌이 말하는 진짜 행복이라는 건가?

 

그만해.

 

민용의 어깨 역시 가늘게 떨렸다.

 

네가 뭘 안다고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모를 건 도대체 뭐냐고!

 

윤호가 다시 고함쳤다.

 

나 더 이상 18살의 풋내기 이윤호가 아니야. 그 시절 어린 꼬맹이가 아니라고, 나도 남자란 말이야.

 

그래봤자. 너는 서 선생하고 나이 차이가 11살이나 나는, 한참이나 어린 그런 어린 아이일 뿐이야.

 

예전에 단 한 번도 그런 걸 느낀 적 없었어.

 

윤호가 이를 악 물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서 선생 덕이겠지.

 

민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서 선생이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는지 너는 알기나 하는 거야?

 

그 정도로 선생님은 나를 좋아했던 거야. 선생님이 불편했던 것들을 많이 감수하면서도 말이야.

 

, 이런.

 

민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구나?

 

?

 

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삼촌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저.

 

민용이 윤호의 눈을 들여다 봤다.

 

서 선생이 너로 인해서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봤어?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 말이야.

 

삼촌.

 

아무리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난 시간의 일이야. 그렇다고.

 

민용이 답답하다는 듯 윤호를 바라봤다.

 

예전의 그 감정 그대로 있을 리가 없어.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두 사람 이미 헤어진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어떻게 그 마음이 그대로 있을 수가 있다는 거야. 웃기는 일이야.

 

하나도 안 웃겨.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하나도 안 웃기다고.

 

웃겨.

 

민용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윤호를 바라봤다.

 

너도 지금 속으로는 불안해하고 있잖아. 속으로 지금 서 선생이 너 안 바라봐주면 어쩔까 생각하잖아.

 

아니,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않아. 확실한 거 왜 생각해? 확실히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고.

 

너를 어떻게하면 다치지 않게 할까 생각하겠지.

 

민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네가 아픈 게 싫어.

 

그러면 그냥 나를 믿어.

 

그게 너를 다치게 하는 길이면?

 

다치지 않아.

 

윤호가 억울하다는 듯 민용을 바라봤다.

 

어째서 내가 다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보이니까.

 

아니.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삼촌은 그저 아직도 선생님에게 마음이 남아 있기에,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기에 그러는 거 뿐이야. 삼촌이 나를 걱정한다고?

 

윤호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지. 그렇게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단 한 번도 가게로 찾아오지 않아?

 

그건.

 

됐어.

 

윤호가 민용의 말을 끊었다.

 

삼촌도 내가 밉잖아.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윤호가 민용을 노려봤다.

 

삼촌은 그 시절 이후 나를 그냥 조카로 보지 않고 있잖아. 나를 연적으로 보기 있잖아. 그렇잖아.

 

웃기지 마. 연적이라니.

 

민용이 고개를 저었다.

 

부정하지 마. 그 시절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서 삼촌은 절대로 나를 그냥 조카로 보지 않았어.

 

오해야.

 

오해?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온 몸으로 느껴졌어.

 

!

 

민용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이 아이는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구나. 조심해야 겠다. 이 아이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라고 생각하는 게, 다 느껴졌다고, 그랬단 말이야.

 

윤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이후 점점 삼촌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어. 형에게는 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했지만 내가 다가가면 자꾸만 어색하게 굴었어. 내가 그걸 못 느꼈을 줄 알아? 모를 줄 알아?

 

윤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집에서 내가 누구를 제일 좋아했었는지 알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 다 아니야. 나는 삼촌이 제일 좋았어.

 

윤호야.

 

그 사이를 부순 건.

 

윤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바로 삼촌이야.

 

그건.

 

민용이 다가가려다가 멈칫한다.

 

다 오해야.

 

오해?

 

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그 말도 안 되는 오해 타령이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짓말 좀 작작해. 아직도 오해라니. 아직도 오해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윤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진짜로 오해니까 그러지. 나는 너에게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민용은 당황했다.

 

나야 말로 네가 나를 피해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어. 내가 누구를 더 아낄 거 같아. 민호? 웃기지 마. 나는 민호 싫어해.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해. 하지만 네가 나를 피했잖아. 그랬잖아.

 

나는 삼촌을 피한 적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민용이 바로 받아쳤다.

 

나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오 제발.

 

윤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이러지 마. 삼촌.

 

윤호야.

 

나는 선생님이 좋아!

 

윤호는 고함치듯 말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선생님을 잊고 산 적이 없어. 지금 나는 내 눈 앞에 선생님이 나타났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좋아, 그리고 다시 선생님의 곁에 서고 싶어. 지금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하아.

 

민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육군 사관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고려대학교에 왔어. 남들 다 좋다고 하는 대학교라고.

 

그게 뭐 대단해?

 

?

 

윤호가 민용을 바라봤다.

 

무슨 의미야.

 

서 선생이 정말 그런 네 모습이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해? 다 너를 위해서 그런 말 했다는 거 너는 아직도 모르는 거야?

 

, 무슨.

 

민용은 머리를 긁적였다.

 

서 선생은 그저 네가 엇나가는 게 싫었을 뿐이야. 자신의 반에 있는 한 아이가 어긋나는 거, 그 모습을 보기 싫었을 뿐이라고. 게다가 그 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면 더더욱, 말이야.

 

선생님이 가진 마음을 삼촌이 어떻게 알아? 삼촌은 선생님도 아니잖아! 삼촌은 선생님이 아니잖아.

 

윤호의 어깨가 떨렸다.

 

억지로 내 마음 돌려 놓으려고 하지마, 아무리 그렇게 삼촌이 노력해도 쉽게 접어지지 않을 거야.

 

윤호야.

 

제발!

 

윤호가 고함을 쳤다.

 

그만해.

 

윤호가 자켓을 집어들었다.

 

나가, 문 닫을 거야.

 

이윤호!

 

나가라고!

 

윤호가 민용을 노려봤다.

 

 

 

그럼 어디에서 지내면 될까?

 

글쎼?

 

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옥탑방 비는데.

 

?

 

민정이 신지를 바라봤다.

 

옥탑방이 비다니?

 

, 민호 녀석 하버드로 유학을 갔거든. 그래서 그 방에 나랑 오빠가 살기로 했고, 서재로 쓰던 방은 조금 개조를 해서, 윤호 녀석 침대만 겨우 집어 넣어. 거의 가게에 지내서 말이야.

 

신지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오빠가 쓰던 옥탑은 비어.

 

그렇지만.

 

민정이 말 끝을 흐렸다.

 

어색하지 않을까?

 

그럴까?

 

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철컥

 

애미야. 다녀왔다.

 

다녀오셨어요? 어머니.

 

문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지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와 계시냐?

 

안녕하세요.

 

민정이 재빨리 인사를 했다.

 

아이고, 우리 윤호 담임 선생님 아니세요.

 

문희가 너무나도 반갑게 민정에게 다가왔다.

 

여기는 다 어쩐 일이래?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대요.

 

어머.

 

문희가 민정의 손을 잡았다.

 

잘 했어요.

 

고맙습니다.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라도 안 드리고.

 

주려고 했어요.

 

신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순간 신지의 머리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문희는 꽤나 민정을 에뻐라 했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민정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듯 했다. 신지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