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누군가에게 심장이 뛴다는 것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야?”
“포기고 뭐고 있어?”
옷을 만지면서 준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이 스스로 정하셔야 되는 건데. 내가 거기에 왈가왈부를 할 수는 없는 거지.”
“그래도 서운하겠다.”
“뭐가 서운해?”
“어?”
형진은 준재의 반응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장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장님이 반드시 나를 좋아해야 하는 이유는 없어. 너 그거 폭력이다.”
“뭐래?”
형진은 이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준재의 어깨를 두드렸다.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는 옷을 만지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거.”
“정말 짚업 후드로 괜찮아?”
“그럼.”
“야. 내가 원금을 못 갚으니까 너 제대로 받아야 하는 거야. 이거 내가 이자 대신으로 주는 거라고.”
“알아.”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걸로 충분한 거야.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야 식당이 전부고. 뭐 다른 건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그 식당에 다니려고?”
“어. 당연하지.”
“미쳤어.”
형진은 입을 쩍 벌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이 그렇게 된 건데. 네가 진 거잖아. 너는 거기에서 일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지기는 뭘 져? 이게 무슨 시합이야? 시합도 아니고. 그냥 하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기분은 나쁘잖아. 거기에 그 아저씨도 있는 거고.”
“그럼 너는 집 나갈 거야?”
“어?”
준재의 물음에 형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야.”
“뭐가 그런 거야?”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뭘 하고 싶어도 나는 너무나도 어리고 아저씨가 필요해.”
“자존심이 상하네.”
“아니.”
준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지우에게 자신이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준재의 덤덤한 물음에 형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겠지.”
형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친구로 내가 속상하다는 것을 너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네가 사장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렇게 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이건 경기가 아니야.”
“하지만.”
“경기가 아닌데 승패가 있는 게 아니잖아.”
형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러니까 저녁도 네가 사는 거다.”
“좋아. 어?”
준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한 형진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형진의 카드를 낚아채서 옷을 계산했다.
“야! 밥은 다르지!”
준재는 밝게 웃었다. 형진이 있어 다행이었다.
“주태식 씨는 내 심장을 뛰게 해요.”
지우의 말에 태식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준재보다 당신이 좋다고요.”
“그렇구나.”
태식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뻔 했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태식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혀로 이를 훑었다.
“꼬맹이가 그래서 비켜준 거예요?”
“네. 아마 그럴 거예요.”
“꼬맹이는 알고 있었군요.”
“내가 이미 아니라고 했거든요.”
“아.”
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지우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 적이 없어서. 이런 종류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싫으면 관둬요.”
“그런 게 아니라.”
지우의 날카로운 말에 태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성격도 급해요.”
“내가 원래 급해요.”
“그렇죠.”
태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밝게 웃었다.
“나는 늘 뛰고 있었어요.”
“정말 뛰어요?”
“네.”
지우의 물음에 태식은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우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뭐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봐요.”
지우가 놀라서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태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가만히 그의 심장을 느꼈다.
“뛴다.”
“안 뛰면 죽죠.”
“하여간.”
지우는 손을 떼고 태식을 노려봤다.
“이 상황에서도.”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해요?”
“다 나를 싫어했거든요.”
“네? 주태식 씨를요?”
“네. 다 싫어했어요.”
태식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을 했잖아요. 저 전에는 되게 뚱뚱했다고. 옷도 이태원에 가서나 겨우 살 수가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아무도 나를 놀아주지 않았죠. 너무나도 커다랗고 뚱뚱하고. 게다가 성격도 별로 좋지 않았어요.”
“성격은 그대로네요.”
“그런가?”
태식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서 웃음을 지은 채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를 좋아해서 고백을 할 때도 늘 겁이 나고 망설여졌어요. 정말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나를 이상하게 보고 밀어내려고 하는 걸까? 그런 걸 알 수가 없었어요.”
“그건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요.”
태식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모르는 건데 왜 그렇게 겁을 내고 망설이기만 했던 건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멍청했는지.”
“그럼 나한테는 왜 고백했어요?”
“그러게요.”
“뭐야?”
“신기했어요.”
태식은 지우의 눈을 보며 가만히 웃어보였다.
“너무나도 신기해.”
“뭐가 신기한 건데요?”
“그냥 다 신기해요.”
“그게 뭐야?”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태식의 진지한 눈빛에 이내 미소를 지우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럼 내가 처음인 거네요?”
“네. 장지우 씨가 처음인 거죠.”
“신기하다.”
누군가에게 처음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은 사람이라는 거. 그거 되게 신기하고 낯선 느낌의 무언가였다.
“이거 기분이 좋네요.”
“기분이 좋아요?”
“네. 기분이 좋아요.”
지우는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태식이 해주는 이야기는 그녀가 그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을 할 사람은 없을 거였다.
“되게 나쁜 사람인데 이럴 때 보면 또 좋은 말도 너무 잘 해. 그래서 나 자존심이 상해. 마음에 안 들어.”
“에이. 그러지 마요.”
“그럼요?”
“내가 좋아하니까.”
“뭐야?”
갑작스러운 태식의 고백에 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그러면 안 이상해요?”
“하나도 안 이상한데요?”
“뭐가 안 이상해요? 그 동안 나한테 좋아한다는 티도 안 내고 갑자기 이러는 거 되게 이상한 거 같은데.”
“음. 그런가요?”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장지우 씨에게 되게 많이 티를 내고 옆에서 챙기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헐. 하나도 안 그랬거든요.”
지우의 뜨악한 표정에 태식은 어색하게 웃었다.
“나 그 동안 되게 불안했어요.”
“왜 불안해요?”
“장지우 씨가 꼬맹이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준재도 좋죠.”
지우는 아랫입술을 꼭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준재가 좋은 건 다른 이유에요. 그냥 준재는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지킬 사람이야.”
“지킬 사람.”
“그건 주태식 씨도 이해를 해야 해요.”
“이해합니다.”
태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의 말이 무슨 말인지 다른 그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저에게도 그런 존재이니까요.”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태식의 말에 지우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웠다. 준재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내가 우습죠.”
“왜 우스워요?”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누군가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거. 되게 우스운 거잖아요.”
“아니요.”
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장지우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좋은 사람이에요?”
“네. 좋은 사람입니다.”
지우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구나.”
“왜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서요.”
“그럼 내가 늘 들게 해줄게요.”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맙습니다.”
태식은 지우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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