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장. 미나리 전
“그게 그러니까.”
준재의 돌직구 물음에 지우는 쉽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게 첫사랑인 걸까? 첫사랑이었다. 그 전에 사귄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괜히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말이야.”
“그게 뭐가 어때서요?”
준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사장님의 말씀처럼 그건 나이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사장님은 지금 나이에 그런 거 하나 못 해봤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너는 내가 아니잖아.”
“네? 그건 당연하죠.”
지우의 지적에 준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우의 얼굴을 보더니 한쪽 볼을 부풀렸다.
“실망이야.”
“뭐가 또 실망이야?”
“사장님 되게 멋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 나 안 멋져.”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지우가 화를 내려고 하자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장님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아저씨도 사장님을 보면 그럴 걸요?”
“정말?”
“확신해요.”
준재의 말에 지우는 아주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
“사장님은 아무 것도 하실 필요가 없어요. 그냥 사장님의 마음만 솔직하게 아저씨에게 말하면 되는 거예요.”
“솔직하게.”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였다. 그 솔직한 거.
“알아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힘든 건 아는데. 솔직한 게 되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게 정말 힘든 건 아는데. 그 솔직한 것을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어요. 뭔가 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새로운 곳으로 나가야 하는 거죠.”
“너 뭐니?”
“네?”
지우가 자신을 보면서 미간을 모으자 준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존심 상해.”
“자존심이 상할 게 뭐가 있어요?”
준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조금 더 솔직해도 좋아요.”
“응.”
지우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가 왔습니다.”
“다 했어요.”
준재와 지우가 들어가기가 무섭게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전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지우는 손뼉을 치며 자리에 앉았다.
“맛있겠다.”
“더럽게.”
“내가 더러워요?”
“손이요.”
태식이 손을 가리키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전을 손으로 찢어서 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어. 미나리도 싱그럽고.”
“정말.”
태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재 너도 먹어봐.”
지우는 전을 찢어서 준재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모았다.
“뭐 하는 겁니까?”
“너무 맛있다.”
“그렇지.”
“이봐요.”
“주태식 씨도 먹어봐요.”
지우는 전을 찢어서 태식에게 내밀었다. 태식은 멍하니 있다가 그 전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 지금 먹으라고요?”
“먹기 싫어요?”
“그럼 나 줘요.”
“그래.”
지우가 준재에게 손을 내밀려고 하자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더니 머리를 긁적이고 입을 벌렸다. 지우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신의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 씻고 올게요.”
지우는 미소를 짓고 화장실로 향했다.
“너 뭐야?”
“뭐가요?”
“그걸 왜 먹어?”
“왜요?”
준재는 입을 쭉 내밀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이 주는데 안 먹어요?”
“아니.”
“아저씨 이거 자세가 안 되었네.”
“이거?”
준재의 말에 태식은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태식이 화를 내거나 말거나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도 손 씻고 와.”
“역시. 우리 최원종 먹을 복은 있어.”
“뭐래? 올 때 술 더 사오라고 한 게 누구인데?”
“나지.”
원종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비닐 봉투를 흔들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네 캔 만원 맥주가 여덟 캔 들어 있었다.
“벌써 꽤나 먹었네.”
“그래도 더 마실 수 있지.”
지우는 맥주를 받아들고 바로 마셨다.
“맛있다.”
“하여간 꾼이야.”
“그럼.”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숨에 맥주 큰 캔을 모두 비우고 크게 탄식을 내뱉었다.
“좋다.”
“너 작작 마셔.”
“뭐?”
원종의 말에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너는 왜 내 애인도 아니면서.”
“그러게.”
“그러게요. 사장님 그만 드세요.”
준재가 곧바로 끼어들자 태식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원종은 지우를 바라봤지만 지우는 입을 다물고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미나리를 이렇게도 먹는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 주태식 씨가 그래도 요리는 좀 하나봐.”
“그럼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 컨설턴트를 한다고 했죠. 내일부터 반찬이랑 전을 내도 될 거 같죠?”
“네. 괜찮을 거 같아요.”
지우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에게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제품으로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봄이 오면 아무래도 뭔가 더 산뜻하고 신선한 것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잖아요. 얘가 딱 맞는 거 같아요.”
“그러게.”
원종도 전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맛있어요.”
“너 뭐야?”
“뭐가?”
원종의 표정을 본 지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가렸다.
“주태식 씨 놀려주는 거야.”
“왜?”
“준재에게 아니라고 말을 했거든.”
지우는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무릎을 쳐다봤다.
“너무 나쁜 말이기는 한데. 너무 잔인한 말이기는 한데. 준재에게 그래도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잘 했어.”
원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뿌듯하다.”
“네가 왜 뿌듯해?”
“나 네 오빠 정도는 되지 않나?”
“헐. 오빠?”
“내 생일이 조금 더 빠르거든.”
“너랑 나랑 둘 다 10월이거든.”
“그래도 내가 빨라.”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원종이 말을 해주니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회사는 어때?”
“힘들지.”
“부럽다.”
“뭐가 부러워?”
“다른 사람들은 다 그 회사를 들어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뭐. 그렇지.”
원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들어가고 싶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른 곳일 줄 몰랐다. 이렇게 재미도 없고 뭔가 창의성이라는 것을 누를 줄이야.”
“다들 그렇게 살아.”
“그러니까.”
원종은 숨을 내뱉으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만 두고 싶어.”
“그러지 마라.”
“알아.”
지우는 손뼉을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방에 들어가더니 딸기 우유 한 병을 들고 와서 씩 웃었다.
“이거 가지고 가.”
“이게 뭐야?”
“준재가 만든 거.”
“준재가 이런 재주도 있어?”
“그러니까.”
지우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종은 지우를 보고 입을 내밀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무슨 준재를 아들 대하듯 한다.”
“야. 너는 나한테.”
“네가 지금 그래.”
“그래?”
“그럼.”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원종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우유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내가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너 지금 위로가 필요한 거 같아.”
“그냥 여기에 와서 편하게 술 마시는 게 위로야. 술집에 가면 막 시끌시끌하고. 그런 거 딱 질색이야. 이건 네가 마셔.”
“그래. 그럼.”
원종은 다시 지우에게 딸기우유를 내밀었다. 지우는 다시 병을 받아들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되게 잔인한가?”
“아니래도.”
원종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잔인한 게 아니야.”
“내가 앞으로 나아가자고 누군가를 힘들게 한 거니까.”
“그건 힘들게 한 게 아니라니까.”
원종은 지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원종의 행동이 지우는 괜히 힘이 되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너 없으면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그러니 오빠만 믿어야지.”
“하여간 한국 남자들 그 오빠 소리.”
지우가 몸을 부르르 떨자 원종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결심이 서야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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