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장. 이상한 남자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겁니까? 그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이 정도는 배워야 했던 거 아닙니까?”
“그게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죠.”
“왜 기억이 안 납니까? 기름을 먼저 쓰면 제대로 간이 되지 않는다는 거. 그걸 왜 잊는 겁니까?”
태식이 자꾸만 날이 선 채로 자신을 대하자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괜히 원망스러운 느낌이었다.
“화가 납니까?”
“저에게 왜 이러는 건데요?”
“뭐라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이 식당은 이제 주태식 씨가 운영하라고요. 그러데 왜 저에게 이러는 건데요?”
“그래서 남은 열흘은 장사를 안 할 겁니까?”
태식의 물음에 지우는 침을 삼켰다.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태식의 행동이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왜 그런 건지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날이 선 채로 그러는 건데요?”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뭐가 답답한 건데요?”
“장지우 씨가 제대로 못하니까요.”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하네요.”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주방을 나가버렸다. 태식은 그런 지우를 보고 이마를 짚고 입을 꾹 다물었다.
“지우개.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니?”
지우개는 꼬리를 흔들며 지우에게 가볍게 몸을 비볐다.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태식이 좋았다. 하지만 태식이 저렇게 한 번씩 화를 내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야?”
“아저씨 왜 그래요?”
“뭐가?”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언제 화를 내?”
준재의 지적에 태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쪽 입을 실룩였다.
“아니 아까 그게 화를 낸 거죠. 사장님이 실수를 하면 왜 그런 건지 하나하나 말을 해줘야 하는 거지. 그렇게 버럭 한다고 해서 요리를 못하던 사람이 갑자기 잘 하게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상식적으로 그렇게 일을 같이 했으면 뭔가 달라져야 할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 거야?”
“왜 달라져야 하는 건데요?”
“뭐?”
“이유가 없잖아요.”
준재의 말에 태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달라져야지. 달라져야 뭔가 새로운 삶의 무언가. 뭐 그런 걸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달라지면 아저씨가 아는 사장님이 아닐 걸요?”
“어?”
태식은 순간 멍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우가 아니다. 준재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 많이 달라졌어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에는 식당을 그냥 가게라고 부르고 지금처럼 그렇게 열성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뭔가 더 힘을 갖고. 제대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그게 문제인 거예요?”
“그런 말이 아니라.”
준재의 지적에 태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건 아니었다. 자신도 지우가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최선을 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으니까.
“그냥 장지우 씨가 뭔가 더 제대로 하기를 바라. 이 식당 일이 어려워서 그만 두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 할 수도 있는데. 언제든 돌아올 수도 있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럼 그렇게 말해요.”
준재는 혀를 살짝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저씨는 지금 사장님을 밀어내기만 하려는 거 같아.”
“내가 왜?”
“그러니까요.”
태식의 반응에 준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러고 있거든요.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미치겠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건지 알지 못했다.
“나 왜 이러냐?”
“사장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죠.”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준재는 킥킥거리며 벽에 기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눈빛으로 태식을 보며 씩 웃었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여자애 괴롭히는 것처럼. 왜 그러나 몰라. 좋아하면 잘 해줘야 하는 거지. 왜 그렇게 괴롭히고 못 되게 구는 건지. 아저씨 딱 그 초등학생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내가?”
“네.”
준재의 지적에 태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준재의 말도 말았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너는 왜 다 아냐?”
“제가 뭘 다 알아요?”
“꼬맹이 너를 보면 말이야. 인생 2회차인 거 같아. 뭐든 다 알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거 같아.”
“원래 불행한 애들은 먼저 어른이 되는 거예요.”
준재가 이렇게 말하고 주방을 나가자 태식은 침을 삼켰다.
“갑자기 훅 저러면 어쩌자는 거야.”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준재의 알 수 없는 말에 태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서 다 아는 것처럼 하는 꼬맹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 어른이 된 것처럼 저렇게 행동을 하면 진짜 어른이 자기를 도대체 어떻게 보호하라고 하는 거야?”
태식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입을 쭉 내밀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이건 한 번 드셔 보세요. 저희 새로 나온 메뉴인 하이라이스거든요. 한 번 드셔보세요.”
카레를 처음 메뉴로 적었던 것처럼 하이라이스도 소스만 따로 제공을 하니 손님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하면 되는 거였다. 손님들은 식당의 흠을 잡기 위해서 온 괴물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거였고 식당은 더 맛있는 것을 제공하면 되는 거였다.
“여기 되게 좋은 거 알아요?”
“그래요?”
계산을 하던 손님의 말에 지우는 싱긋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백반집이라고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에?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면 되게 캐주얼하고 좋아요. 안은 산뜻하고. 밖의 강아지도 귀엽고. 그리고 한 번씩 새 메뉴가 생기는 게 재미있어요.”
“고맙습니다.”
지우는 영수증을 건네며 더 밝게 웃었다.
“앞으로도 맛있는 밥 부탁드려요.”
“네. 다음에도 방문 부탁드려요.”
특이한 손님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묘하게 힘이 되는 기분이었다. 지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
“맛있는 밥.”
가장 기본이 되는 거였다.
“그러네.”
잊고 있었던 거였다. 가장 기본. 맛있는 밥이라는 것.
“뭔가 좀 심심하지 않아요? 달걀이라도 올릴까요?”
“달걀. 그거 좋네요.”
하이라이스를 먹던 지우의 제안에 준재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 아닌 거 같더라도 달걀부침 하나가 딱 밥 위에 올라가면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거든요.”
“그거 어렵습니다.”
“왜요?”
“달걀부침이 되게 어려운 거거든요.”
태식의 지적에 지우는 입을 내밀었다.
“그런 거였어요?”
“사람들이 보통 원하는 그 노른자가 익지 않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불 앞에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한 번에 다 만들어놓기도 그렇죠. 그러면 식고 위생적으로도 애매하기도 하고요.”
“냉장고도 있고.”
“그럼 맛이 다르지.”
준재가 끼어들자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게 달걀이 올라가면 좋기는 하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작은 식당에서는 무리입니다.”
“그런가요?”
“그리고 새로 일을 하겠다는 사람도 오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올렸는데 조회는 많은데 하겠다는 사람이 없네요.”
“근무 시간이 너무 길어요.”
준재는 젓가락을 들고 입을 쭉 내밀었다.
“그렇게 길면 아르바이트로 하기 힘들죠.”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관리하기가 힘들어. 우리 식당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지우는 미간을 모으고 손뼉을 쳤다.
“좋은 생각이 있어요.”
“정말 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당연하죠.”
문에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손으로 써서 붙인 지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해서 대단한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런 원론적인 것으로 한다고요?”
“때로는 새로운 것보다 이렇게 원론적인 것이 통할 때도 있어요. 오히려 이거 보고 오시는 분들도 계실 걸요?”
지우의 말에 태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모를 일이죠.”
“저기.”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이 끝이 났어요.”
“아니. 이거.”
여덟 시 경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식당에 들어온 중년 여성은 가게 앞의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종이를 가리켰다.
“이거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주방에서만 하는 거라고 하면 저도 잘 할 수가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지우는 태식을 쳐다봤다.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 앉으시죠.”
“장지우 씨가 옳았네요.”
“뭐가요?”
“전단지.”
태식인 공고문을 가리키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아까 그 여성분은 확실히 주방에서 일을 하시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다른 식당에서 일을 하신 경험도 있다고 하시니까 손도 빠르실 거 같고요. 확실히 식당 운영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지우는 손뼉을 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되죠.”
태식의 물음에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식당을 파는 것이라면 모를까. 누군가가 유정이 지어놓은 이름 그대로 영업을 한다고 하면 거기에 마음이 가지 않을 도리는 없는 거였다.
“하지만 주태식 씨가 잘 해줄 테니까.”
“믿나요?”
“믿죠.”
지우의 대답에 태식은 입을 내밀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준재는 그런 둘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가볼게요. 형진이가 보자고 해서.”
“나도 같이 가지.”
“아니요.”
태식이 일어나려고 하자 준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빼고 두 분이 할 이야기가 있죠?”
준재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그대로 식당을 나가버렸다. 지우와 태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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