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장. 거울아 거울아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 중 누구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거였다.
“내가 백설 공주의 왕비였으면 좋겠어.”
“공주도 아니고 왕비요?”
“응. 거울이 필요해.”
“무슨 거울이요?”
“대답을 해주는 거울.”
준재는 미간을 모으며 입을 내밀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너랑 태식 씨 두 사람 다 좋거든. 그래서 두 사람 중 누구를 내가 더 좋아하는지 정확히 말을 해줄 수 있는 거울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안 해도 될 텐데.”
“어려워요?”
“어?”
“뭐가 어려워요?”
“그게.”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자신은 과연 뭐가 어려운 걸까? 뭘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뭘 고민하고 있는 건지. 뭘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사장님을 보면 지금 되게 이상한 거 알아요?”
“내가 이상해?”
“많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어요. 사장님은 지금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미안할 걱정을 하는 거잖아요.”
“미안할 걱정.”
지우는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의 말이 옳았다. 지금 자신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였다.
“맞네.”
“그러니까요. 왜 그런 걱정을 하시는 건데요? 사장님이 그걸 걱정할 건 없어요. 사장님 마음만 신경을 쓰면 되는 거라고요.”
“그래.”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준재는 양파를 모두 까서는 주방에 들어갔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내밀었다.
“맛있네요. 이게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그냥 파우더 넣고요.”
“이게 뭐야.”
지우가 웃음을 터뜨리자 태식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요?”
“저는 또 뭐 정성스럽게 하시나 했죠.”
“카레도 그냥 고형이랑 가루 쓴 거거든요.”
“그러네요.”
지우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하이라이스를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태식을 쳐다봤다.
“진짜 맛있어요.”
“그래요?”
“그러게요.”
준재도 한 입 먹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창 시절에 먹은 것은 이런 맛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맛있는데요?”
“당연하지.”
태식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태식의 자유로운 행동에 지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꼬맹이가 그렇게 물었다고?”
“응.”
“대담하네.”
“그렇지?”
늦은 시간에 퇴근하며 식당에 들린 원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가 그래도 너 많이 좋아하나 보다.”
“왜?”
“네 선택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걸로 들리는데?”
“그래?”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런 지우의 반응에 원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내밀었다.
“너 주태식 씨가 더 좋은 거구나.”
“어? 그게.”
“맞네.”
지우가 놀라자 원종은 한숨을 토하며 동의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나라도 그러겠다.”
“그래?”
“그럼. 그렇지. 뭔가 더 어른이고.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 네가 기댈 수도 있는 사람인 거고.”
“그래서만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준재는 그저 그녀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준재는 내가 그 아이를 지켜야 할 거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곁에 있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
“그럼 그렇게 말해.”
“힘들어 할 거야.”
“그래도.”
지우는 혀를 내밀었다.
“그래야 하는 걸까?”
“당연하지.”
“힘드네.”
“나한테 말하는 건 안 힘들었어?”
“힘들었어.”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휘휘 저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친구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너에게는 말을 할 수 있었어. 그게 너무나도 잔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 말을 해서 네가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더 나은 방향이니까. 그래야지만. 그래야지만 너와 내가 계속해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니까. 미안해.”
“아니야.”
지우의 사과에 원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우가 사과를 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을 해줘서 너무 고마운 거였다. 원종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야?”
“장지우가 행복할 수 있었어.”
“내가 행복한가?”
“그럼.”
“그래?”
“당연하지.”
원종의 대답에 지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도 제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원종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냥 네 마음이 가는 그대로. 그대로 결정하면 되는 거야. 그거 하나도 어려운 거 아니잖아. 그냥 너답게 해.”
“나 다운 거.”
지우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 말 되게 이상해.”
“뭐가?”
“청춘 영화 주인공 같아.”
“그렇긴 하네.”
원종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의 말처럼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말이었다.
“네가 내 거울이구나.”
“어?”
“아까 백설 공주의 마녀가 되고 싶다고 했거든.”
“거울이 필요해서?”
“어? 바로 아네.”
“당연하지.”
원종은 손가락을 튕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장돼지랑 몇 년 친구인 건데. 그거 하나 모르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거울인 거다.”
“응.”
“그럼 깨뜨리는 건가?”
“어?”
“여왕님이 원하는 답을 못 드리면 나는 깨지는 건가?”
“그런 거였어?”
“몰랐어?”
“응.”
지우가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원종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내밀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뭐야? 너 진짜 그럴래?”
“미안.”
원종은 두 손을 모으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장지우 너 스스로를 믿어.”
“고마워.”
“나를 믿어라.”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가볍게 닦아냈다.
“못 생겼어.”
억지로 예쁜 척 해봤지만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정말 누구 하나를 거절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아프게 할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 정말 미치겠다.”
“오늘 표정이 안 좋아?”
“아. 그래요?”
생선 가게 아주머니의 말에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왜 그러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요.”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민이 있을 게 뭐가 있어요? 식당이 얼마나 잘 되는데요. 너무 잘 되요. 그래서 저 고민이 없어요.”
“그런 게 아닌데?”
“사랑이네.”
지우는 놀란 눈으로 과일 가게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유정 언니가 좋아하겠네.”
“사실이야?”
“아니.”
“어머.”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입을 막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런 게 아니라.”
“뭔데?”
“네?”
지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우리 지우가 아주 재주가 있네.”
“그렇지.”
“아니에요.”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의 말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서요. 그러니까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상해요.”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좋겠네.”
“아니요.”
지우는 생선을 받아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재빨리 지우에게 딸기를 내밀었다.
“먹어.”
“아니.”
“과일을 먹어야 여자 피부도 좋고 싱그러워. 그러니까 더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가 있지.”
“네.”
“그리고 지우가 원하는 거 그대로 해.”
과일 가게 아주머니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되는 거야.”
“네. 고맙습니다.”
그래도 되는 거라는 말.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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