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장. 출발 3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한참의 침묵 끝에 총리가 겨우 꺼낸 말이었다. 대통령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와 원수인 총리죠.”
“아십니까?”
“알지요.”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총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총리에게 모든 것을 숨기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나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총리는 대통령의 대답을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신기하십니다.”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 그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니.”
총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어딘지 모르게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대통령의 모습에 총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금 대통령을 배신한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이걸 빌미로 움직이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쎼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군요.”
대통령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총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모르겠군.”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총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돕죠.”
“그럴 겁니까?”
“제가 돕지 않으면 답이 있습니까?”
“없지요.”
이전에는 이 자리에 있는 이가 뭔가 적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총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을 사람은 남아도 됩니다.”
“남아도 되다니.”
지웅의 말에 병태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왜요?”
“아니.”
지웅이 반문하자 병태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건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지금 최병태 씨는 우리랑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거죠?”
“여기 다 남아야죠.”
“아니요.”
병태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지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뭐라고요?”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갈 겁니다. 제가 아무리 사무장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것은 다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병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사무장이라고 그들을 이끌던 이의 태도가 너무 달라져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지금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래도 그쪽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거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당연한 거잖아요.”
“왜요?”
“뭐라고요?”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지웅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한숨을 토해낸 후 병태를 응시했다.
“최병태 씨는 최병태 씨의 선택을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하면 되는 거고요.”
“그게 내가 죽는 일이라도요?”
“죽는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네?”
“그렇군요.”
지웅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병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섬에 남는 거.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거. 그건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섬에 남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때 뒤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 도혁이었다.
“젠장.”
“문도혁 씨.”
“다들 미쳤어.”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는 거라고. 도대체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섬을 나가는 게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은 아니겠죠.”
“뭐? 당신?”
재율이 나서자 도혁은 미간을 모았다.
“어린 새끼가 건방지게.”
“그러는 그쪽은 사무장님보다 어리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군요.”
“뭐라고?”
도혁은 머리를 뒤로 넘긴 채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세게 한 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뭐 하자는 거야?”
“그쪽이야 말로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을 위협해서 뭘 얻자고 하는 겁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위협?”
도혁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재율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쪽 두 사람은 같이 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요. 도대체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도 제발 같이 가달라고 빌지 않을 겁니다. 이건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다른 상황?”
“그래요. 다르죠.”
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건 다른 일이에요.”
“그쪽은 빠져.”
“아니요.”
도혁의 말에도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빠져야 하는 이유가 뭐죠? 그럴 이유 하나 없는 거 같은데? 우리 모두 나설 이유가 있어요.”
“뭐라고?”
“우리는 갈 겁니다.”
지웅은 힘을 주어 말했다. 이런 태도에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거 아니야?”
“뭐가 미쳤다는 거죠?”
“그러니까.”
“당신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거요?”
지아가 정곡을 찌르자 도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쪽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무조건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갈 거니까요.”
“도대체 왜?”
도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입을 다물면 되는 거잖아.”
“뭐라고요?”
지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농담이라도 하는 거죠?”
“아니.”
“미쳤어.”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도혁은 노려본 후 침을 꿀꺽 삼켰다.
“제정신이라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왜 당신들의 뜻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요?”
“내가 그러자고 하니까.”
“뭐라고요?”
지아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혁이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지아에게 달려드는 순간 지아가 그대로 도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당황한 도혁을 그대로 힘을 받아 넘겨버렸다.
“미친 새끼.”
지아는 일어나려는 도혁의 손목을 세게 밟았다. 도혁이 신음을 흘렸지만 지아는 힘을 빼지 않았다.
“미친 거 아니야? 사람을 또 죽여.”
“이거 놔!”
“다들 뭐해요?”
지아는 남자들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이 사람 묶어요.”
“어떻게 하길 원합니까?”
“두고 가죠.”
지웅의 물음에 윤태가 먼저 나섰다.
“너무 위험한 사람입니다. 혹시 임길석 씨랑 같은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이거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고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같이 가야죠.”
지아는 윤태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가요.”
“강지아 씨.”
“그래도 가야 해요.”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사람이에요. 같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버리고 가자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라고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강지아 씨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같이 갈 수 있다고요?”
“당연하죠.”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그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너무 위험해요. 강지아 씨도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거 알잖아요.”
“알죠.”
지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무조건 놓고 가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럴 수 없었다.
“묶어서 가요.”
“그건 인도적입니까?”
“뭐.”
지아는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지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배에 오르기 전 윤태는 다시 지아에 물었다.
“저 녀석들은.”
“괜찮아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윤태의 눈을 바라보며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윤태 씨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지킬게요.”
“너무 제대로 지키지 말고. 그럼 나 서준 매니저에게 혼나.”
“알겠습니다.”
윤태는 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아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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