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장. 만남 2
“미친 거 아니야?”
시안의 짜증에 시인은 미간을 모았다.
“뭐가?”
“아니 미치지 않고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래?”
“석구 그 정도로 괴물은 아닙니다.”
병태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돌렸다. 병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석구는 내가 책임질 수 있어요.”
병태는 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럴 녀석이 아니에요. 그 녀석을 그렇게 만든 건 우리니까. 원래 그렇게 무조건 괴물인 녀석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옆에 있으면. 그 녀석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녀석을 피하고 외면하고 귀찮다고 생각한 건 나랑. 도혁이 그 녀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잘못이에요. 그건 석구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랑 도혁이가 잘 하면 괜찮을 겁니다.”
“그게 어려운 거죠.”
기쁨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문도혁 씨는 지금 이 순간도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한국에 가서 아무런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아 하는 거니까.”
“그건.”
병태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이었다. 도혁은 그냥 지금 이 상황만 어떻게든 모면하려는 거 같았다.
“한국에 가도 숨을 곳은 없을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기쁨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낸 후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기는 하죠. 이걸 가지고 최병태 씨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없어요?”
시안이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한기쁨 씨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우리들 모두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배를 가지고 도망을 갔다고요.”
“두 척이잖아요.”
“네? 뭐라고요?”
“한 척만 가지고 갔다고요. 객관적으로 말을 하자면. 배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기쁨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여유로운 태도의 기쁨을 보며 시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는 거예요? 그 일로 인해서 우리가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할 뻔 한 건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요. 도대체 왜 그래요? 이상하잖아.”
“같은 생존자끼리 너무 박하게 굴지 말자고요.”
기쁨의 간단한 대답에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쁨은 다른 배를 보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차피 더 나쁜 사람은 저기에 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죠.”
“그만 둬.”
시안이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시인은 미간을 모았다.
“너는 꼭 사람들하고 말을 하면 싸우려고 들어. 왜 그렇게 싸워서 이기려고만 하는 거야? 이상해.”
“언니!”
시안은 입을 쭉 내밀었다. 시인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기쁨의 곁에 앉아 먼 바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돌아가는 거야.”
“모르지.”
“한국은 아니라도.”
시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우리가 처음에 도착한 그 섬. 그 섬으로만 가도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상황일 테니까.”
“그 섬만 가도 된다는 거야?”
“그럼.”
“우리 먹을 거 부족해서 옮긴 거야.”
시안의 지적에도 시인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의 그 낙관이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네 비관이 이해가 안 가.”
시인의 대답에 시안은 볼을 부풀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적어도 해변에는 있어야 할 건데요.”
“해변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거.”
지웅은 랜턴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이걸로 우리가 섬을 가리키면 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제 점점 더 밤이 깊어지고 있으니까요.”
“도대체 왜 이 시간에 움직이는 거야.”
도혁은 툴툴거리며 미간을 모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 시간에 움직이는 놈들이 어디에 있어?”
“우리가 처음 움직였을 때는 아침에 움직였거든요. 그랬다가 밤이 되니까 패닉이 오더라고요.”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고쳐보려고 한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섬에서 세 번째 섬으로 갈 때는 제대로 간 거고요. 우리는 그쪽보다 한 번이라도 더 섬을 떠나본 적이 있으니 나은 상황 아닌가요?”
“혼자 잘났어.”
“그쪽보다는 잘났죠.”
지아의 대답에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아는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들이 와야 해요.”
“그렇죠.”
지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올 수 있을까요?”
“왜요?”
“밤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차가워요.”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들이 생각을 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실수라도 있으면 저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못할 거예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그렇죠.”
지웅은 한숨을 토해냈다. 제대로 된 방법이 필요했다.
“일단 구명조끼와 튜브라도 준비하죠.”
“그래야죠.”
“그걸로 될 거 같아?”
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실수하는 거야. 도대체 왜 그렇게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우리는 당신과 다르게 사람이니 하는 겁니다.”
지웅의 차분한 대답에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그들의 의지가 중요하죠.”
“그렇죠.”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꼭 그들을 데리고 가려는 거죠?”
우리의 물음에 시인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위험한 거잖아요.”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들.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너무나도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거 모르시는 건가요?”
“알아요. 알 거예요.”
시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자신은 이에 대해서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섬에 있던 사람들이 결정한 거였다. 자세히는 몰라도 자신이 답해야 하는 거였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런데 우리만 돌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아니요.”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가면 되잖아요.”
“아니요.”
기쁨이 앞으로 나섰다.
“그럴 수 없어요.”
“왜요?”
“우리는 그들과 같을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봄과 진영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무슨 사고라도 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요? 그거 너무 위험한 확률 아니에요?”
“그렇죠.”
기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확률이잖아요.”
“뭐라고요?”
“그리고 우리 배에 타지 않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마찬가지잖아요. 그리고 그 배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우리랑 만나서 사고를 칠 수도 있는 거고.”
“우리가 그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건가요?”
“뭐라고요?”
기쁨의 대답에 봄은 미간을 모았다. 기쁨은 하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결국 그 말은 나는 다른 사람이 죽기를 바랍니다. 그거 아닌가요?”
“그게 무슨?”
“그들을 두고 가겠다는 건 그런 거에요.”
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기쁨은 우리를 보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남편을 잃었어요. 그래서 그런 인간들은 아예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임길석 씨의 시신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두는 거. 그거 복수가 아니니까요.”
“미쳤군요.”
“네. 미쳤어요.”
봄의 지적에 기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에요. 내가 미치지 않고 있을 이유가 있나요? 내가 미치지 않을 방법이 있나요? 없어요. 그런 게 있다면 나에게 좀 알려줘요. 나도 미치지 않고 있고 싶으니까요.”
기쁨의 대답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기쁨은 모두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는 거예요. 그래도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 그게 유일하게 이거고. 그들을 용서하는 거. 용서라는 말도 되게 이상한 말이지만 말이죠.”
기쁨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 밀양의 전도연 같아.”
“맞아요.”
시인도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게 내 생각이에요.”
기쁨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사람들을 쳐다봤다.
“다들 다른 생각을 하겠죠. 다들 다른 입장을 갖고 있겠죠.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생각이 타인에게 해가 되면 안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을 구하는 게 해라면요?”
“아니요.”
우리의 물음에 기쁨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절대로 잘못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구하는 거. 그런 선한 마음은 절대로 죄가 될 수 없어요. 그건 내가 확신할 수 있어요.”
“확신이라니.”
우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특이하시네요.”
“네. 그래요.”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특이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아닌 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무조건 구해야만 하는 거였다. 마음의 부채를 덜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하는 거였다.
“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간절한 부탁에 군관계자는 고개를 숙였다.
“부디 우리 국민들을 지켜주세요. 구해주세요.”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흔들리면 안 되는 거였다. 대통령은 흔들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았다.
“부탁입니다.”
대통령은 간절히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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