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팔 장. 어사 변학도 둘
“정말 안 가보시려고요?”
“그래.”
“어찌.”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입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에게 중요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래도 가서 뵙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간다고 무어 하나 달라지겠는가?”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끊어진 인연을 다시 붙드는 것처럼 미련한 일도 없었다.
“그 분도 이제 자신의 일을 하러 오신 분인데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다시 가서 잡겠는가?”
“아가씨.”
“되었다.”
춘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학도도 만나는 것이 그리 마음이 편한 일이 아니었다.
“혹여 그분이 직접 나를 만나러 예까지 오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되었어.”
춘향이 다시 한 번 말하자 향단은 입을 쭉 내밀었다. 춘향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가서 보시지요.”
“싫다.”
학도 역시 무영의 채근에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서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미 끊어진 인연. 다시 잡아서 맨다고 해서 그게 매이겠는가?”
“허나.”
“싫어.”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춘향에게서 마음을 비운 상황이었다. 더 이상 춘향을 힘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대도 이미 아는 것 아닌가?”
“어사 나리.”
“그대는 내가 계속 힘들기 원하는가?”
“아니 그것이 아니라.”
무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학도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을 갖기 원하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나를 가만히 두시게.”
“그래도 한 번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지금 서로 보시지 않는 것이 더 큰 미련을 만들 것입니다.”
“미련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허나 그 미련이 걱정이 되어서 미리 만난다면 그것을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또한 문제였다. 학도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응?”
“이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유라.”
자신이 가야 하는 이유. 이런 것이 있다면 반드시 춘향을 봐야 할지도 몰랐다. 어색하지만 괜찮을 것이었다.
“전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더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보신다는 핑계를 대시면.”
“유치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도리라.”
학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말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섞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그리 하지.”
학도가 미소를 짓자 무영도 학도를 따라 웃었다. 학도는 그런 무영의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체계가 완벽합니다.”
“전에 해놓으신 것이 워낙 훌륭한데다가, 여기에 새로 부임하신 우리 사또가 또 일을 얼마나 잘 하시는지. 아주 일사천리입니다.”
이방까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일을 잘 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여간 깐깐한 사내가 아니었기에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무 문제도 없군.”
“문제가 있길 바라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몽룡의 물음에 학도는 미소로 답했다.
“그대는 어떻소?”
“에?”
“내가 일을 잘 하기 바라오. 못 하기 바라오?”
“우문이었습니다.”
학도의 반문에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는 입을 살짝 내밀고 주위를 둘렀다.
“학교에 가고 싶은데.”
“예?”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몽룡은 잠시 당황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시죠.”
“아이들이 늘었습니다.”
“다 사또. 아니 어사 나리 덕입니다.”
“내가 무슨.”
춘향과 학도는 차분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두 사람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광주에서도 이곳을 본 따서 여인들이나 아이들에게도 글을 가르치는 일이 생겨났다고 하오.”
“그렇습니까?”
“한양에서도 그렇고.”
“다행입니다.”
춘향의 얼굴에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이 떠오르자 학도는 입을 내밀었다.
“아무렇지도 않소?”
“예?”
“모두 다 그대가 한 것입니다. 허나 사람들은 이제 그대가 한 것이라는 것을 잊겠지요? 괜찮소?”
“괜찮습니다.”
춘향은 차분한 낯빛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선 거였다.
“저는 그저 다른 이들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 여인도 그래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예. 전부입니다.”
자신이 생각을 한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이곳 남원이 작지 않은가?”
“아니요.”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보다 원래 자신이 애정을 품은 곳을 지키는 것이 나았다.
“한양에서의 실패로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을 자유롭게 쓰네. 그리고 여인들도 자유로이 글을 배우지. 아직 모자라지만 말이야.”
“그렇습니까?”
새로운 세상의 도래였다. 그 한 시작에 자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춘향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그 말씀을 전해주셔서요.”
춘향이 더 이상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에 학도는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에?”
갑작스러운 학도의 인사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이 미련한 놈의 미련을 끊어줘서.”
“아.”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되는 미련을 가진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 하나 그것을 타박할 수가 있겠소?”
“그렇지요.”
“꿈이었습니다.”
춘향은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꿈꿀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것이 다 어사 나리 덕이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한 것이 있는가?”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저 춘향이 할 수 있는,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 전부였다.
“이 모든 것은 다 그대가 해낸 것이다. 이 학당도. 모두 다 그대가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 덕이지.”
“열정이라.”
열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나는 내일 다른 곳으로 가네.”
“내일이요?”
너무 빨랐다.
“어찌?”
“이곳에 더 있어 무얼 하겠는가?”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새 사또는 일을 너무나도 잘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하단 말이지.”
“그렇지요?”
춘향의 낯이 곧바로 밝아지자 학도는 확실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뭐라 할 일이 진정 아니었다.
“잘 살게.”
“나리.”
“그대가 잘 살길 바라.”
학도의 말에 진심이 가득 묻어나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야. 그저 나를 그대의 친정 오라비로 생각을 해주시게.”
“친정 오라비요?”
“나도 여동생이 없고, 그대도 오라버니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에, 그럼요.”
춘향은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다시 가족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어찌 우는가?”
“기뻐서 웁니다.”
춘향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이 더 많이 흘렀다.
“왜 자꾸만 울음을 참으려고 하는가?”
“예?”
“그냥 흘려도 되네.”
춘향은 학도의 말에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너무나도 서럽게 그 모든 울음이 한 순간 터져 나왔다.
“힘들었지?”
“예. 힘들었습니다.”
“이제 행복하시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학도는 춘향을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것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정말 가시는군요?”
“그러네.”
학도는 말에 올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춘향과 저 멀리 있는 몽룡을 보며 씩 웃었다.
“혼례에는 꼭 나를 부르시게.”
“무슨.”
“내가 그대의 오라비 아닌가?”
춘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밝은 표정의 춘향을 보고 학도도 행복하게 웃었다.
“그럼 나는 가네. 곧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꼭 국수를 대접하겠습니다.”
“그래.”
학도는 한 번 더 마을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다시 떠나니 새롭군.”
“건강하세요.”
춘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학도는 그런 춘향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시게.”
학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춘향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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