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육 장. 사과 둘
“어찌 그런 사과를 하십니까?”
“응?”
“어울리지 않으시게.”
“아니.”
“놀랐습니다.”
춘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사과를 하실 줄 몰랐는데.”
“아니.”
몽룡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다.”
몽룡도 차를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끄러미 몽룡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사과를 하셨습니까?”
“응?”
“사과를 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해야지.”
“해야 한다.”
춘향은 가만가만 웃음을 참았다. 몽룡이 이리 말을 해준다는 것이 고마워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마운가?”
“그리 말씀을 해주셔서요.”
“그래서 그대의 대답은 무엇인가?”
“글쎄요?”
춘향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몽룡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모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도련님은 제가 좋으십니까?”
“좋다.”
“예?”
“좋아.”
몽룡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하자 춘향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이 이렇게 곧바로 대답할 줄 몰랐다.
“그게 무슨?”
“네가 좋다.”
“도련님.”
춘향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예?”
“왜 안 되느냐?”
“아니.”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은 원래 정혼자였다. 그리고 나는 네가 좋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
“안 됩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서로 좋아한다고 해도 그리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너무 멀어졌습니다.”
“네가 왼쪽 길을 가기로 한 것이고 내가 오른쪽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다시 닿았다.”
“도련님.”
“그래도 안 되느냐?”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춘향은 지금 몽룡이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아서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몽룡은 이런 춘향의 반응에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는 구나.”
“예?”
“내가 그리 싫으냐?”
“아니?”
“나는 네가 좋다.”
“왜 갑자기 이러십니까?”
“그러게.”
몽룡은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이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망설이고 아닌 척 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그 동안 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말하고자 한다.”
“웃깁니다.”
“하나도 안 웃기다.”
몽룡이 힘을 주어 말하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도련님의 그 모든 마음이요. 허나 고맙다고 해서 그 마음을 무조건 받을 수 없다는 것. 저보다 도련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왜 받지 못하는가?”
“제가 천해서요.”
“무슨?”
“저는 천합니다.”
춘향은 힘을 주어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리 말하는 것이 너무 아팠지만 사실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저와 도련님이 왜 진작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그 사실을 이미 도련님은 다 아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너를 피해서 그렇다.”
“아니요.”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모든 진실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도 몽룡을 피하고 겁을 내고 망설였다.
“저도 하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도 도련님을 모르는 척을 했고. 도련님을 거기에 없는 사람인 척 했습니다.”
“무슨?”
“사실입니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끄러미 몽룡의 눈을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춘향아.”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도련님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제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함부로 도련님에게 다가가서 무얼 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한다.”
몽룡이 다급히 말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원해.”
“도련님.”
“내가 너를 원하고 있어.”
“아니요.”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몽룡은 그저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러 것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도련님이 저를 아끼신다면.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모두 다 접어주세요.”
“어찌?”
“제가 그것이 편합니다.”
“춘향아.”
“정말 그것이 편합니다.”
춘향은 몽룡의 눈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에게 도련님은 너무나도 귀한 분입니다. 제가 처음 마음에 품은 분도 도련님이고 지금도 마음에 가장 품고 싶은 분이 바로 도련님입니다. 허나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다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허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춘향의 말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또 모를 것 같기도 하여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무얼 어떻게 하면 그대가 나를 봐주겠는가?”
“그런 건 없습니다.”
“춘향아.”
“그렇게 무언가를 억지로 한다고 해서 우리들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만히 춘향을 응시했다. 이제 자신들은 이전과 달랐다.
“내가 그대에게 고백은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데 이리 거절을 당하니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군.”
“죄송합니다.”
“아니야.”
춘향의 사과에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을.”
“도련님.”
“그럼 나는 가겠네.”
“예.”
몽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말이라도 더 할까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무어라 하십니까?”
“거절이지.”
“무슨.”
몽룡의 대답에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요?”
“이유가 있겠는가?”
“도련님.”
“이미 너무 지난 시간이야.”
몽룡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더 우스웠다.
“춘향 그 사람은 나를 다 잊었을 진데 내가 이제 와서 무슨 미련의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아가씨는 아직 도련님을 좋아하십니다.”
“그래도.”
몽룡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미련은 이제 더 이상 갖지 않으리라. 이미 모든 것이 끝이 난 후였다.
“너는 네 일에만 신경을 쓰거라.”
“도련님이 제 일입니다.”
“응?”
“아닙니까?”
“그렇구나.”
몽룡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오랜 시간 방자는 자신의 일을 봐주던 이였다.
“어찌 도련님이 제 일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도련님은 제 일이고 도련님이 잘 되는 것이 저에게 중합니다.”
“그래.”
방자의 대답에 몽룡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마음 자체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기에 더욱 미안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응?”
방자를 만나고 온 향단이 다짜고짜 따지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도련님이 그리 아가씨를 좋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왜 그리 매몰차게 도련님을 밀어내십니까?”
“아.”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이 말이 향단에게 온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방자가 너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예?”
“그리 바로 말을 하고.”
“아니.”
“미안해서 그런다.”
“아가씨.”
“내가 미안해서 그래.”
춘향의 말에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춘향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이 지금 아가씨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는지 아시오? 그리 도련님이 좋다고 하면 넙죽 안겨야지.”
“너는 방자에게 바로 그랬니?”
“그럼요?”
“그래?”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도련님이 좋아.”
“그런데요?”
“그래서 미안해.”
“아가씨.”
“뭐든 그렇게 흐르겠지.”
춘향의 알 수 없는 말에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허나 향단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춘향은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몽룡이 좋았지만 자신이 혼자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달라질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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