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오 장. 사과 하나
“선생님은 시집 안 가십니까?”
“얘는.”
막돌의 물음에 삼월은 곧바로 미간을 모았다.
“그런 것을 여인에 묻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모르니?”
“실레?”
삼월의 말에 막돌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실례?”
“아니.”
“괜찮다.”
삼월이 제대로 설명을 못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막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막돌의 뺨이 붉어졌다.
“아마 하지 않을 게다.”
“왜요?”
“왜라니?”
“아니.”
막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 그래야 하는 건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런 거 같았다.
“그냥 그런 거 없다.”
“하지만 사또가 계시잖아요.”
“응?”
“두 분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
춘향은 웃음을 터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다 끝이 난 인연이다. 막돌이 네가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저기 어머니가 오시는 구나. 어서 가거라.”
“예. 내일 뵙겠습니다.”
막돌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삼월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막돌이 저건 왜 저러는지.”
“좋아하지?”
“예?”
춘향의 물음에 삼월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그게 무슨?”
“다 보인다.”
춘향은 대청에 앉아 다리를 까불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찌 그리 숨기지 못하누.”
“참말 다 보입니까?”
“그래.”
“어쩌나.”
삼월이 당황해서 얼굴을 만지자 춘향은 그 손을 잡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삼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나는 알아도 막돌이 저것은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리 걱정하지 마라. 무릇 사내란 것들은 눈치가 없는 법이다.”
“사또도 그러십니까?”
“농은.”
춘향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참말로 혼인은 안 하실 겁니까?”
“그래.”
“왜요?”
“그냥.”
춘향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삼월은 입을 쭉 내밀고 춘향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쉬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말도 안 되는 인연을 붙들면서 살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해서도 도련님을 위해서도.”
“만일 사또께서 다른 말씀을 하신다면 생각을 바꾸실 겁니까?”
“아니.”
춘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몽룡에게도 너무 심한 것이었다. 몽룡도 몽룡의 생각이 있을 텐데 자신이 뭐라 할 수 없었다.
“무어라 하건 그것은 나의 일이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삼월의 사과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춘향은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 잘 되고 있느냐?”
“오셨습니까?”
집을 꾸미고 있던 방자가 손을 닦고 몽룡을 맞았다.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집은 깔끔했다.
“좋구나.”
“모두 향단이 덕이죠.”
“벌써 팔불출이냐?”
몽룡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향단이는?”
“식사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예서 안 하고?”
“아직 그게.”
“그래?”
아직 아궁이 같은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몽룡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오늘 일이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아니어도 이방이 워낙 일을 잘 해주고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너보다 일은 낫더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
농으로 하는 것임을 알기에 방자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좀 앉으시지요.”
“그래도 되느냐?”
“그럼요.”
“그럼 실례 좀 하겠다.”
몽룡은 대청에 앉아 한숨을 토해냈다. 좋았다.
“부럽구나.”
“예?”
“아니다.”
“도련님.”
방자가 쓸쓸한 표정을 짓자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방자가 사과를 해야 하거나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너에게도 말을 한 것처럼 이건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거야.”
“그냥 춘향 아가씨에게 사과를 하십시오.”
“무슨 사과?”
“정말 모르십니까?”
“알지.”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춘향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고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과연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인지.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 아니냐.”
“허나.”
“되었다.”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 행동을 하시다가 결국 춘향 아가씨를 놓치거나 하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글쎄다.”
방자의 물음에 몽룡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것은 또 그런 것대로 괜찮지 않겠는가?”
“도련님.”
“그런 것까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없지.”
“하지만.”
“되었다.”
방자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고 몽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좋다.”
“여기에 계셨습니까?”
“아.”
그때 춘향이 문으로 들어서자 몽룡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춘향도 가만히 웃었다.
“두 사람이 잘 꾸몄지요?”
“그러게.”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다가 몽룡을 보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데려다 주시지요.”
“응?”
“다시 집에 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아니.”
“그러십시오.”
방자도 나서서 몽룡을 떠밀었다.
“어서요.”
“아, 아니.”
몽룡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몸은 대문에서 밀려나왔다. 춘향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참 약하십니다.”
“약하긴.”
몽룡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다 양해를 한 거지.”
“양해요?”
“그럼.”
춘향은 웃음을 참고 헛기침을 했다. 몽룡은 뒷짐을 지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으나 춘향에 토할 리가 없었다.
“가시지요.”
“가야지.”
나란히 걷는 길. 참 묘했다.
“오랜만이죠?”
“그러게.”
춘향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이 순간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것은 몽룡이었고, 몽룡은 연신 춘향의 낯을 살폈다. 그러다 이내 눈이 마주치고 몽룡은 시선을 피했지만 춘향은 아이처럼 웃었다.
“어찌 그리 보시오?”
“아니.”
“민망합니다.”
“미안하네.”
춘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몽룡에게 이런 사과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미안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저 같이 가는 이의 얼굴을 잠시 본 것인데. 그건 미안한 것이 아니지요.”
“아니.”
“예?”
“그것이 아니라.”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오랜 시간 혼자 두어서 미안해.”
“도련님?”
춘향의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몽룡은 한숨을 쉬고 춘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머리를 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오랜 시간 내가 그대를 혼자 두었네. 그리고 그대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어. 그 오랜 시간이 미안하네.”
“아닙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신도 잘한 것이 하나 없기에 사과를 들을 것도 없었다.
“도련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요?”
“허나.”
“아닙니다.”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았다. 몽룡에게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은 없었다.
“저도 이미 도련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도대체 무슨 사과를 하십니까?”
“그 모든 것의 연유가 나 아닌가?”
“예?”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할 수가 있는 걸까? 몽룡은 춘향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안해.”
“도련님.”
“정말 미안해.”
몽룡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네.”
“아닙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라도 다 이기적이었다. 그 시간을 그리 보내지 않은 이는 없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은 도련님 나름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탓을 할 수 없습니다.”
“허나.”
“아닙니다.”
춘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몽룡을 보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 소설 창고 > 벚꽃 필적에[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십칠 장. 어사 변학도 하나] (0) | 2017.10.26 |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십육 장. 사과 둘] (0) | 2017.10.26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십사 장. 몽룡의 마음 둘] (0) | 2017.09.27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십삼 장. 몽룡의 마음 하나] (0) | 2017.09.27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십이 장. 선생 성춘향 둘] (0) | 2017.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