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사 장. 몽룡의 마음 둘
“싫습니다.”
“뭐?”
“싫다고요.”
향단의 맹랑한 대답에 몽룡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그가 말하면 뭔가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텐데 춘향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싫다 그 말입니다.”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실망입니다.”
“응?”
“하여간 방자 그 놈은 늘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자신이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늘 다른 이의 도움을 바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놈에게 도대체 내가 무얼 믿고 가야 한다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다.”
몽룡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직접 부탁을 했다.”
“도련님이 왜요?”
“방자 그 놈이 무슨 말을 해도 향단이 네가 들을 리가 없고.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테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
“나는 춘향이에게 혼인을 청하지 않을 거다.”
몽룡의 단호한 말에 향단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련님.”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한양 사람들도 다 알고 이곳 남원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 그런데 내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춘향 그 사람에게 뭘 하겠는가?”
“하지만 아가씨는 오랜 시간 도련님을 기다렸습니다. 아가씨의 그 마음을 모르시는 겁니까?”
“알지.”
몽룡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미안한 거였다. 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는가?”
“도련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달라지셨습니다. 저도 전처럼 무조건 도련님이 밉지 않습니다.”
“고마워.”
“그런데 어찌 그리 아가씨에게 냉정하게 대하실 수 있단 말씀입니까?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냉정하다.”
몽룡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너무나도 냉정한 거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리 냉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었고 그 모든 문제는 자신이 만든 거였다.
“춘향 그 사람은 나에게 귀한 사람일세. 그래서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바라네.”
“그러면 더 도련님이 아가씨의 손을 잡아주셔야지요. 아가씨가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리셨는데요.”
“아니.”
향단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토해낸 후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럴 수 없네.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해줬고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아프게 만들었어. 더 이상 그 사람을 지치게 할 수도 없고 아프게 해서도 안 되네.”
“그래서 이리 한심하게 구시는 겁니까?”
“그렇지.”
몽룡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몽룡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아가씨는 그 오랜 시간 도련님을 기다리셨습니다. 그 결과가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
“정말 그러실 겁니까?”
“응.”
몽룡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변학도 그 자를 만나야 한다.”
“그게 무슨.”
향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춘향이 무슨 마음으로 한양에서 다시 남원으로 온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전하가 잡았습니다. 전하께서 아가씨가 한양에 더 남기 바랐는데도 아가씨는 남원에 오셨습니다.”
“그래.”
“왜 그랬는지 모르십니까?”
“알지.”
몽룡은 입을 꾹 다물고 침을 삼켰다.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춘향에 다가설 수 없었다.
“아무튼 이것은 나와 춘향 두 사람의 일이고. 나의 마음에 관한 것이니 향단이 네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네가 방자와 좋은 관계를 맺어 혼례를 치루기 바란다.”
“싫습니다.”
향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가씨와 도련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어찌 그런답니까?”
“네가 아직도 종이냐?”
“예?”
“방자도 이제 노비가 아니다.”
“허나.”
“이제 두 사람은 자유로운 이들이야.”
몽룡의 말에 향단은 침을 삼켰다. 몽룡의 말이 옳았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몽룡과 춘향의 허락이 필요 없었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도 너무 우습기는 하나 두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그렇다.”
“그래서 정녕 그리 겁쟁이처럼 뒤로 물러서기만 하고 하나 제대로 하시지 않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실망입니다.”
향단은 몽룡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런 사람일 줄 몰랐다. 조금 더 용기가 있을 줄로만 알았다.
“아가씨의 그 오랜 시간에 대한 보답. 그거 하나 그리 해주시는 것이 어렵습니까? 해주실 수 있잖아요. 아가씨께서 바라시는 게 뭔지 도련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니 해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
몽룡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
그리고 밝은 미소를 지은 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이기적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십니다.”
“그렇지.”
몽룡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낸 후 향단의 눈을 바라봤다.
“방자가 행복하겠구나.”
“제가 어떤 선택을 할 줄 아시고요?”
“다 보인다.”
“다 보인다니.”
향단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방자가 좋았다. 허나 춘향을 두고 이대로 홀라당 시집을 갈 수도 없었다.
“제가 아가씨를 지켜야 합니다.”
“내가 지킬 것이다.”
“정혼도 하지 않고요?”
“그래.”
“그게 무슨?”
조선의 법도가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내 알아서 할 것이다.”
“도련님.”
“부디 방자를 행복하게 해주어라.”
“예?”
몽룡의 알 수 없는 말에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도련님은 왜 그러시니?”
“왜?”
“아니.”
방자에게 뭐라고 하려던 향단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방자에게 무슨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
“네가 너무 미련해서 그렇다.”
“미안하다.”
“미안하기는.”
방자가 곧바로 사과하자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너는 내가 이래도 화가 안 나니?”
“응?”
“화가 안 나느냐는 말이다.”
“안 난다.”
방자가 곧바로 웃음을 지어보이자 향단은 고개를 저었다. 멍청해도 이리 멍청할 수 없는 사내였다.
“그리 늘 웃기만 하는 사내에게 도대체 내 인생을 어떻게 맡길 수가 있다는 말이냐? 말도 안 되지.”
“왜 맡기냐?”
“응?”
“네 인생은 네 것이다.”
방자의 말에 향단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것은 자신의 것. 향단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래서 아가씨에게 가서 무어라 하려고?”
“모르지.”
향단의 말에 방자는 볼을 부풀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아느냐?”
“안다.”
“그런데 어찌 그러냐?”
“아니 이런다.”
“뭐가?”
“두 사람이 행복하시지도 않은데 나만 너무 행복한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런다.”
“아니. 뭐.”
향단의 대답에 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저 더 행복한 것인데 그게 미안하거나 그럴 것도 없는 거였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 네가 안 되는 거다.”
향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만 가보마.”
“나도 아가씨를 뵙고.”
“아니.”
방자의 말에 향단은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안 된다.”
“왜?”
“왜라니? 당연한 거지.”
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물끄러미 향단을 응시했다.
“내가 그리 믿음이 가지 않으냐?”
“갑자기 왜 그러냐?”
“아니.”
방자는 입맛을 다시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미련한 것 같아 그러지.”
“그건 아니?”
“그럼. 알지.”
방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에게 다가가기 겁이 나는 거고.”
“역시나 미련하구나.”
향단은 혀를 끌끌 차면서 방자의 배를 가볍게 때렸다.
“내가 똑똑하니? 아니니?”
“똑똑하지.”
“그럼 내가 하는 건 옳니? 그르니?”
“옳지.”
“내가 지금 누구를 골랐니?”
“어?”
“맹추.”
방자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자 향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방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
“그걸 꼭 말로 직접 해야 하니?”
“참말로 내가 좋아?”
“멍청한 놈.”
방자가 여전히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향단은 방자의 정강이를 찼다. 방자가 자리를 잡고 에구구구 죽는 소리를 냈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네가 예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멍청한 맹추냐?”
향단은 방자를 보더니 씩 웃고 볼에 입을 맞추고 달아났다. 방자는 볼을 만지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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