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장. 벚꽃 필적에 둘
“벚꽃은 언제나 피려나?”
“예?”
“아니다.”
막돌의 반문에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네 녀석은 이제 내가 네 스승도 아닌데 도대체 예서 뭘 하려고 하는 것이야? 관아가 네 놀이터냐?”
“한 번 스승이면 영원한 스승이라 하지 않으셨소?”
“그거야.”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이야 전혀 다른 것인데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 놈.”
몽룡이 짐짓 엄한 척 하자 막돌은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몽룡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사또가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걱정은?”
몽룡은 쿡 하고 웃음을 터드리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느냐?”
“총각 귀신 되실까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뭐라?”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막돌의 이마를 검지로 밀었다.
“네가 걱정을 할 일이 아니야.”
“제가 걱정을 할 일이 아니라도 그래도 제가 걱정을 해야지요. 아무리 그래도 스승님의 일인데 말입니다.”
“스승님의 일은 무슨.”
몽룡은 입을 죽 내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벚꽃이 언제 필까?”
“예?”
갑작스러운 몽룡의 물음에 막돌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몽룡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되었다. 뭘 이렇게까지 챙겨.”
“그래도요.”
향단은 연신 짐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는 것인지.
“내가 굶을 거 같니?”
“그래서 그렇습니다.”
“안 굶어.”
향단이 가지고 온 양이면 웬만한 군대도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이래?”
“아가씨가 걱정이 되어 그러죠.”
“걱정은.”
춘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 삼월이를 집에 들이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더 이상 아가씨 걱정을 안 하고 말입니다.”
“삼월이는 가족이 있는 아이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막 집에 들이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이니?”
“그래도 아가씨 걱정을 하셔야죠.”
“아니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방자와의 시간이 좋으면서도 춘향이 걱정이 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가시께서 계속 그러시면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아가씨를 좋아하는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그래?”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향단이 가지고 온 음식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누면 되겠구나.”
“예?”
“모두 너의 혼사를 축하했으니 말이다.”
“아가씨 챙겨 드시라고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아니.”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향단의 손을 곡 잡았다.
“네가 잘 지내서 다행이다.”
“그럼요.”
향단도 춘향의 손을 곡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벚꽃이 안 피려나?”
“벚꽃이요?”
“아니다.”
방자의 반문에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으냐?”
“좋습니다.”
방자의 대답에 몽룡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부채로 상을 한 번 쳤다.
“아무리 그래도 뭐 그리.”
“좋습니다.”
방자는 입을 벌리고 밝게 웃었다.
“그러니 도련님도 하루라도 빠르게 춘향 아가시와 혼사를 치르십시오. 이게 이리도 좋습니다.”
“좋기는.”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벚꽃이 피려나?”
“예?”
“벚꽃이 피어야지.”
몽룡은 마당의 나무를 보며 가만히 웃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무영에 책을 건네며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여인의 책을 한양에서 찾아주신다고 하니 그걸로 감사하지요. 그런데 지금 사또, 아니지. 어사 나리를 따라다니시는 것 아닙니까?”
“뭐 어사 나리도 따라 다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더 많은 책을 백성들과 나누는 일입니다. 이건 전하께서도 따로 부탁을 하신 것이고 실제 제 직책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까?”
무영의 대답에 춘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다니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요. 그나저나 향단이 혼례를 치렀다고?”
“아. 맞습니다.”
춘향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간단한 사실도 이들에게 제대로 전혀 주지 못하는 중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그래도 이런저런 신경을 써주셔서 저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이런 말을 들을 것은 없었다. 무영은 보따리에서 인형 두 개를 꺼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좀 전해주시지요.”
“직접 주시지.”
“이제 막 결혼한 이에게 직접 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무영의 지적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은 꽤 고운 것이 조선의 솜씨가 아니었다.
“이건?”
“율도국 것입니다.”
“율도국이요?”
춘향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떠오르는 중인 율도국의 물건이라니.
“확실히 우리 것과 다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사자인데. 입을 벌리고 있는 놈은 돈을 벌어오고, 입을 다물고 있는 놈은 돈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래요?”
향단이가 좋아할 선물이었다.
“꽃이 피었구나.”
“예?”
춘향이 방에 들어오지 않고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향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꽃이 피었다고.”
“벚꽃이 새삼스레. 무슨?”
“중요하다.”
“예?”
“이것. 무영이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춘향은 불쑥 보따리를 향단에 내밀었다. 향단은 보따리를 받아들면서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입니까?”
“율도국의 인형이라고 하더구나. 시샤라고 하던가? 입을 벌리는 아이는 남자 아이인데 돈을 벌어다 주고, 입을 다무는 아이는 여자 아이인데 돈을 지켜주는 애라고 하던가? 반대던가? 아무튼 귀한 애들이라고 하더구나. 너의 혼례 소식을 듣고 직접 가져다주었다. 너에게 직접 주려고 했으니 그건 방자가 보기에 안 좋을 것 같아 마다했다고 하고. 그러니 잘 살라는 의미로 알거라.”
“예? 예.”
향단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십시오.”
꽃이 피었다. 몽룡의 얼굴이 밝아졌다.
“막돌아. 저게 무엇이냐?”
“에이. 꽃 이름도 모르십니까?”
몽룡의 물음에 막돌은 입을 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벚꽃 아닙니까? 벚꽃.”
“그래. 벚꽃이지?”
몽룡의 얼굴이 붉어졌다. 벚꽃. 벚꽃이 피었다. 몽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대로 채비를 갖추었다.
“어디에 가시려고요?”
“갈 곳이 있다.”
갑자기 나서는 몽룡을 보며 막돌은 고개를 갸웃했다. 몽룡은 막돌을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광한루에 있을 줄 알았다.”
“기억하셨습니까?”
“그럼.”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춘향이 놀던 그곳을 잊을 리가 있겠는가?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합니다. 이곳에 다시 오다니.”
“벚꽃이 피었네.”
“그러게요.”
춘향은 뒷짐을 지고 가만히 벚나무를 쳐다봤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묘한 표정으로 입을 쭉 내밀었다.
“그런데 왜 이리 저를 찾으셨습니까?”
“모르는가?”
몽룡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게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볼을 살짝 부풀렸다.
“아니 그냥 답을 하라고요? 다시 묻거나 해야지.”
“나랑 정혼하자.”
몽룡의 박력이 넘치는 고백에 춘향은 눈을 크게 떴다. 몽룡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있다가 불쑥 손을 내밀고 춘향의 손을 꼭 잡은 후 어깨를 으쓱했다.
“서양에서는 이런다고 하더구나.”
춘향의 손에 가락지 하나가 놓였다.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몽룡은 어깨를 으쓱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도련님.”
“앞으로 잘 해주마.”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몽룡의 목을 꼭 안았다. 그 오랜 시간을 돌아서 겨우 마주한 것이었다.
“다시는 내가 너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
“저도 지금처럼 꾸준히 도련님을 믿겠습니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춘향은 몽룡을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고 몽룡의 뺨을 만졌다. 이리 오래 돌아서 겨우 두 사람이 마주한 거였다.
“연모합니다.”
춘향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몽룡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바람이 불고 벚꽃이 눈처럼 내렸다. 춘향과 몽룡은 입술을 떼고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다시 그 오랜 시간의 갈증을 풀기 위해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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