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구 장. 벚꽃 필적에 하나
“답답도 하십니다.”
“무엇이?”
“도련님.”
방자가 열을 내자 몽룡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이 학도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막무가내로 먼저 나서기에도 다소 애매한 것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여길 줄 알고 내가 그리 함부로 굴 수가 있단 말이던가?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이렇게 기다리실 겁니까?”
“응?”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 도대체 왜.”
방자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몽룡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날이 좋다.”
“도련님!”
“네 결혼이나 신경을 써라. 오늘이면서 무슨.”
“그러니 더 답답한 것이지요.”
방자가 열을 내도 몽룡은 그저 느긋할 따름이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보챈다고 달라질 일은 없었다.
“날이 좋구나.”
“곱다.”
“죄송해요.”
“네가 왜?”
향단의 사과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사과할 것은 없어.”
“그래도 제가 먼저 이런다는 것이 너무 우스운 것이 아닙니까? 아가씨의 곁을 지키기로 해놓고서는.”
“너는 내 종이 아니라 내 벗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라니?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춘향의 말에 향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벗이라고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고마웠다.
“고와. 아주 고와.”
“아가씨도 고우세요.”
“그래?”
춘향은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녀가 고와서 무얼하니?”
“처녀가 고와야죠. 이제 막 시집을 가는 새 색시가 고와서 어디다가 쓴답니까? 아가씨가 다 고우세요.”
“그래.”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향단을 보고 머리카락을 만져주었다.
“우리 예쁜 향단이.”
“아가씨.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향단은 춘향을 꼭 안았다. 춘향은 그런 향단의 등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
“춘향아.”
서로 만나기 위해서 간 것이기는 하나 이렇게 중간에서 만나니 이보다 더 어색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로?”
“두 사람의 집 문제를 아직 말을 하지 않아서.”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춘향의 말에 몽룡은 헛기침을 하며 빙긋 웃었다.
“생각이 통하는구나.”
“누구나 이치에 맞게 따지는 것이지요.”
“그리 냉정하게.”
몽룡은 고개를 흔들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제 집은 작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편히 신접살림을 하기도 어렵고. 방자가 사내이니 도련님 댁에 가야지요.”
“그런 거 따지지 않는 것 아니었나?”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춘향의 대답에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집이 그런데 그리 넓지 않다.”
“무슨?”
춘향은 눈을 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을 고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셨다가는 큰일이 나실 겁니다. 그 집이 작다니요?”
“그럼 큰가?”
“크지요.”
“그래?”
몽룡은 헛기침을 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대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좋나?”
“예?”
“아니면 용기가 없는 사람이 좋나?”
“흐음.”
춘향은 입을 내밀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좋아하는 이라면 용기를 내기 바라고, 제가 마음이 없는 이라면 용기가 없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내가 어느 쪽이기를 원하는가?”
“글쎄요?”
춘향이 대답을 바로 하지 않자 몽룡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주인공이 우리면 아니 되겠지?”
“우리끼리만 알아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되었습니다.”
몽룡이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춘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지금 이 정도 관계도 좋았다.
“굳이 어떤 관계라는 것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은 저나 도련님이나 모두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있을 이유도 없지.”
“예?”
“좋아하네.”
몽룡의 고백에 춘향은 침을 삼켰다.
“도련님.”
“알고 있어. 내가 그대에게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지 알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자네를 무조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확신 같은 것도 없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그대를 놓치고 싶지도 않아.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야.”
“그럼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대와 다시 정혼하기 바라네.”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시 정혼이라니. 몽룡은 헛기침을 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싫은가?”
“그것이.”
싫은 것일까? 좋은 것일까?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대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내가 그대를 좋아하는 그 만큼. 그대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
“제게 시간을 주신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주시는 겁니까?”
“영원히?”
“좋습니다.”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이 도대체 얼마나 기다릴지 모르겠으나 나쁘지 않았다.
“그럼 벚꽃이 필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응?”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몽룡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럼 그리 하겠습니다.”
춘향은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몽룡은 돌아서는 춘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내 소년시절처럼 밝게 웃었다.
“잘 살아.”
“예. 잘 살게요.”
마땅히 친정도 없는 처지. 춘향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춘향은 작은 주머니 하나를 향단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에게 보태는 돈이다.”
“아닙니다.”
향단은 놀라며 다급히 춘향에게 다시 건네려 했지만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에게 그 동안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그래. 원래 친정에서 시집을 갈 적 혼수를 해주지 않니?”
“하지만.”
“이게 내 혼수다.”
“아가씨.”
향단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모든 순간 자신은 춘향을 잘 보필하지 못한 기분이었는데 춘향이 이리 자신에게 큰 선물을 주고 마음을 열어주니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네가 왜?”
“저만 이래서.”
“나도 도련님에게 정혼을 하자는 말을 들었다.”
“예?”
향단의 목소리가 커지자 춘향은 미간을 살짝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답은 드리지 않았어.”
“왜요?”
“벚꽃 필적에 드리기로 했다.”
“아가씨도 참.”
향단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릇 사내들은 그리 집중력이 좋지 않아서 그러다가 바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걸 모르십니까?”
“도련님을 욕하는 거니?”
“아니.”
향단이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춘향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나도 생각을 좀 해봐야지. 사람이 좋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춘향의 말에 향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아.”
“예. 잘 살게요.”
춘향은 향단의 손을 꼭 잡았다. 바로 몽룡의 집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춘향은 향단을 보며 부러 더 밝게 웃었다.
“정말 가도 됩니까?”
“그럼.”
삼월의 걱정스러운 말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린 아이도 아닌데 혼자 시간을 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우습지 않으냐?”
“허나 스승님은 혼자 있으신 적이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어차피 살림을 보는 것이라면 제가 있겠습니다.”
“아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향단이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니 데리고 있었지만 삼월은 달랐다.
“삼월아.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은 고마우나. 네가 그러면 부모님이 많이 걱정을 하실 거야. 그러니 어서 가. 날이 어두워진다.”
“내일 일찍 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돼.”
“일찍 올게요!”
외치고 멀어지는 삼월을 보며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곱고 착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찌 이리 인복을 타고 났을까?”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책을 펼쳤다.
“밤이 길겠구나.”
어차피 글을 읽던 시간이었으나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글을 읽는 것과 혼자 읽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매일 이렇구나.”
춘향은 한숨을 토해냈다. 쓸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은 흐르는 법이고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언제 이렇게 되었나.”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춘향은 책을 덮었다.
“자야지.”
괜히 스산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어찌 이럴꼬.”
귀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았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호롱도 끄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다.
“어찌 이리 유치할까?”
춘향은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할 상상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몽룡이 나오는 꿈을 꾸며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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