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물끄러미 남자를 응시했다. 너무나도 신기한 존재.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자신과 꼭 닮은 남자를 보며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정말로 자신은 누군가의 모습을 본 딴 존재였다. 그 동안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았던 일은 그저 요행이었다.
“뭘 보고 있어?”
“저기.”
커피를 들고 온 여자가 그의 옆에 앉아, 그가 보던 곳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곳에 오면 남자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꼭 닮은 남자를 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닮았네.”
“닮았지. 당연히.”
그의 말에 여자는 살짝 날이 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말처럼 닮은 것이 당연할 거였다.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 분명히 그도 이대로 나이가 든다면 저런 모습이 될 거였다. 만일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고 나이가 든다는 가정은 너무나도 어려운 거였지만, 여태까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였다.
“안 마셔?”
“아직.”
여자는 그에게 커피를 한 번 제안했지만 그가 바로 마시지 않자 입술을 쭉 내밀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문한 거였다. 밖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안에서는 절대로 마실 수 없는 거였다. 여자는 다리를 꼬고 여유로운 척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후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되게 맛없어.”
“그래?”
“마셔봐.”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커피를 내려놓는 것을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것. 다를 거였다. 그는 자신의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뭇잎을 태운 것이나 진배없는 맛. 이상한 향기가 입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런 걸 마시다니.
“인간들이란.”
그의 말에 여자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인간이야.”
“뭐.”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인간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도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봐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이들은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였다.
여자는 그런 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 그도 여자의 가슴을 쳐다봤다. 옷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흉터를 여자는 가만히 매만졌다.
“아파?”
“아니.”
그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통증 같은 것은 없었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다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있지 못할 거였다. 다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는 것. 이것을 볼 때마다 이것들이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편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는 모르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중요한 상황이고 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쁘게 봉합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결국 흉터가 남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거였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건성으로 대답은.”
그의 대답에 여자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담지 않은 채 말하는 사람이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는 여자를 보다가 그도 따라 웃었다.
“네가 부러워.”
“그래?”
“전혀 인간 같지 않잖아.”
여자의 말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여자에 비해서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자처럼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드러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한 번도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았다. 물론 배우지 않은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그것에 대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쪽은 그였다.
“그런데 네가 용기를 낼 줄은 몰랐어.”
“어?”
“다른 애일 줄 알았어.”
“아.”
여자의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다들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정말로 나갈 용기를 내는 존재는 없었다.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나서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해.”
“그래.”
여자는 그를 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만졌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자를 응시하면서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그런 것을 노력한다는 사실에 여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부럽다는 거야?”
“그냥.”
“뭐라는 거야.”
여자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따.
“나는 네가 부러워.”
“어?”
“나는 이제 용기를 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미 이런 수술들을 받은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거. 그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너는 그게 가능한 거니까.”
“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말처럼 여자의 몸에는 이미 너무 많은 흉터가 있었다. 그처럼 진짜를 만나서 그 자리에 가는 것. 그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거였다.
“나는 저 자리로 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여자는 한숨을 토하며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가 다소 답답한 모양이었다. 여자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 자신을 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런 표정이야?”
“미안해서.”
“그게 미안한 표정이야?”
“틀린 건가?”
“틀렸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었다.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언젠가 우리도 사회에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게 가르쳤는데 말이야.”
“그러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너무 멍청하게 굴어서.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너처럼 그렇게 공감하는 능력을 타고 나지 않은 거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간단하게 말을 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왜 미안한 표정을 짓는 거야. 미안할 일이 뭐가 있다고.”
여자는 부러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다가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마시고 나면 조금은 맛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마셔도 정말 별로야.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야.”
“그냥 갈까?”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여자는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 잔향도 사라지게 하려는 것처럼 빈 공기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결국 모두와 떠나는 거잖아.”
그의 말에 여자는 천천히 눈을 굴렸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건 ㅜ먼가 다른 말을 해줄 것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모두와 같이 하던 순간들이었어. 내가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동안 알던 것들. 그 익숙한 것들과 모두 헤어진다는 것은 원하지 않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을 제대로 했어야 했어.”
“그러네.”
여자는 혀로 이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 모든 것들과 떨어진다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겁을 내고 망설이게 될 거였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그게 현실일 거였다.
“두려워.”
“그래도 네 삶을 갖는 거야.”
“삶.”
그는 여자의 말을 따라했다. 삶을 갖는다는 것.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더 이상 갇힌 삶을 살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으면서 그대로 꿈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의 삶이라는 거. 그런 거 없는 거잖아. 그런데 너는 그걸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야. 물론 그게 진짜로 너인 채로 갖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거잖아. 그렇다면 남인 순간에 그걸 느껴야 하는 거야.”
“그렇겠지.”
더 이상 그런 희망을 갖는 존재는 없었다. 전에는 만일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줄 이유가 없다면 여유로운 어른이 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짜들이 더 많은 나이를 먹게 되고 결국 가짜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두 개 이상의 가짜를 갖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삶이라는 거. 그런 것을 가짜들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안 갈 거야?”
“아직.”
“왜?”
“잘 모르니까.”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여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을 살짝 뒤로 기댔다. 자신은 그저 그를 따라 온 것이었고, 여기에 대해서 자신은 다른 말을 더 하는 것도 이상한 거였다.
“잘 아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 안 그래? 그런데 지금 살피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직도 진짜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어.”
“그러네.”
그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따. 아까보다는 족므은 익숙한 느낌. 아직은 정이 가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 역하지도 않았다.
“인간들은 왜 이런 걸 마시는 걸까?”
“우리도 인간이라는 거니까.”
“그래.”
여자의 지적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넓은 범위에서. 정말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도 인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볼까?”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그들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과 다르게 보통의 인간들이 같은 생각을 해줄지.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게다가 그들이 그들을 그렇게 생각을 해줄 리도 만무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그러니까. 진짜들이 보기에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이 된다면 뭘 하고 싶어?”
그의 물음에 여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한 번 웃어보였다.
“그게 왜 궁금한 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서.”
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놓았다. 하얗게 변했다가 피가 도는 그의 입술을 보며 여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여기에 오기는 했지만 잘 모르겠어.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인간이란 게 정확히 뭔지.”
“왜 그래?”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여자는 혀를 차며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자신의 진짜를 찾지 못해서 오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자신의 진짜를 찾고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 거야?”
“참고?”
“참고라고?”
“응.”
그의 뻔뻔한 대답에 여자는 그만 웃어버렸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긴 후 다리를 반대로 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참고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뭐가 되고 싶었어?”
“엄마.”
여자의 말에 그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라니. 뭔가 다른. 더 위대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거였다.
“그저?”
“응.”
여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따. 그런 여자의 얼굴에 슬픔이 살짝 어렸다.
“나는 자궁이 없어.”
“알아.”
여자의 진짜는 자궁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가짜에게서 가져가는 거였다.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자 역시 그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었다.
“후회해?”
“아니.”
그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후회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거였다. 진짜가 원하지 않았더라면 가짜인 자신은 그런 것을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였다. 그나마 진짜가 자신을 원하기에. 자신의 몸에서 필요한 부품들이 있기에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아.”
“왜?”
그의 물음은 다소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짜증을 내거나 불쾌하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자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몸인 거잖아. 이 몸이 누군가에게 쓰인다면 차라리 다행이야. 내가 쓸 수 없는 거라면. 특히나 다른 신체는 지금 내가 가짜인 상태로 지내면서도 필요한 거지만. 자궁은 그렇지 않잖아. 누군가가 필요로 한다면 좋은 거야.”
“그런 건가?”
“그런 거야.”
여자의 말에 그는 이제야 겨우 납득이 간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동안 가짜의 삶을 살면서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과목들은 지금 이 순간에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책도 하루에 한 권씩 읽었건만 그런 것들이 바로 떠오르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마.”
그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지자 여자는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손을 꼭 잡고는 더 밝게 웃어보였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여자는 가볍게 자신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가자.”
“어?”
“아니면 저쪽에서 알아차릴 수도 있어.”
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진짜를 봤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 일어나다가 그대로 다시 앉았다. 다리가 풀렸다. 그런 그를 본 채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뭐 하자는 거야?”
“그러게.”
“그렇게 용기가 없으면서 애초에 여기에 온 게 대단해.”
“보고 싶었어.”
그는 그저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나 생각을 하듯.그저 진짜. 자신의 진ᄍᆞ. 그 진짜가 어떤 모습일지. 그게 궁금했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 이유는 하나 없었다.
“그냥 궁금했거든.”
“왜?”
“그냥.”
“하긴.”
남자의 다소 재미가 없는 대답에도 여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그럴 거였다. 자신도 그저 진짜가 궁금한 순간이 있었다. 누구라도 가짜라면 다 그런 생각을 할 거였고 진짜를 생각할 거였다.
“지금이라도 찾아보지 않을래?”
“나?”
“응.”
“이 몸으로?”
“왜?”
“미안해할 거야.”
여자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모두 믿을 수 없지만 진짜들이 그들에게 미안해한다는 말도 있었다.
“아닐 수도 있겟다.”
“어?”
갑작스러운 여자의 반응이 변하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곡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것을 미안하게 생각을 하는 이들이라면 가짜를 애초에 만들지 않았을 거였다.
“아닐 거야.”
“미안해 할 거야.”
그의 말을 듣던 여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을 해보니 너무나도 우스운 거였다. 진짜들이 가짜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을 거였다. 그럴 거였다. 자신이 오해를 한 거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도대체 그들이 왜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겠어. 그런 마음이라면 애초에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거야. 나도 멍청하네. 그들이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낄 거라니. 그런 말도 안 될 생각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들은 우리를 신경을 쓰지 않아.”
‘그러네.“
여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자신의 말에 그는 왜 계속 옳다고만 하는 건지. 약간 식은 커피를 마신 여자는 더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맛없는 커피는 식어버린 이후 더욱 역겨운 맛을 내는 중이었다.
“역겹네.”
“그런 걸 매일 마셔야 하는 거야?”
“그러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서 가만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여자가 그의 손을 잡았다.
“생각이 없니?”
“어?”
“그런 식으로 다가가면 누군가 눈치를 챌 거 아니야.”
“아. 그렇구나.”
여자의 말처럼 멈칫할 이유가 충분했다. 저 멀리 개를 산책하는 노부부가 보였다. 아까 그는 보지 못하던 거였다. 자칫 하다가는 그의 모든 계획이 무위로 돌아갈 뻔 했었다. 여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고마워.”
“하여간 멍청해. 다들 왜 너를 따라서 나가는 거냐고 물었지만.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문제가 생겼을 거야. 게다가 너는 너 혼자가 아니잖아. 너를 통해서 다들 학교를 생각하게 될 거야.”
“그러게.”
“그게 다야?”
그의 멍한 표정에 여자는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다시 얌전히 자리를 잡았고, 여자는 남자를 주의 깊게 응시했다. 이웃과 살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양새였다.
“저런 거 할 수 있어?”
“인사?”
“응.”
“다르구나.”
“많이.”
“그러게.”
그의 진짜인 남자는 너무나도 달랐다. 다른 게 당연한 걸까? 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잠시도 망설이지 않은 여자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들이 여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생긴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신기했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사람.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거 너무나도 어려울 거야. ㅌ특히나 나처럼 멍청한 존재가 한다면 바로 걸릴 거야. 위험해.”
“너 상냥해.”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용기도 없이 온 거야?”
“응.”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
“그런데 왜 온 거야?”
“너와 나오고 싶어서.”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그의 얼굴을 살핀 후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머리를 뒤로 쓸어넘긴 후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는 소리.”
“왜?”
“너는 깨끗하잖아.”
여자의 말에 그는 머리를 뭔가로 쾅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웃어보였다. 여자를 조금이라도 위로를 하고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를 주고 싶었다. 여자는 그런 그를 보다가 담배를 물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그것을 빼앗았다.
“뭐 하는 거야?”
“뭐가?”
“담배.”
그는 어버버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담배라니.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이거 우리에게 금지가 된 거야.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나는 괜찮아.”
“무슨?”
“봐.”
여자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폐도 줬어. 한쪽이야. 아무리 진짜가 양심이 없다고 해서 폐를 두 개 모두 다 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폐에 자궁을 줬어. 그리고 빌어먹을 발가락까지 줬다고. 지금도 그 없는 발가락이 나를 아프게 하는데. 내가 뭘 더 줘야 하는 거야? 내가 이 상황에서 담배도 하나 마음대로 피울 수 없는 거야?”
“그건.”
그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여자는 다시 그에게서 담배를 가져ᄀᆞᆻ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뭐라고 하건, 그건 내 선택이야.”
“그래.”
여자는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은 연기를 뿜었다. 유난히 뿌연 연기. 여자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게 좋아?”
“너도 줄까?”
“아니.”
여자가 담배를 건네려고 하자 그는 도리질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씩 웃고 더 깊이 연기를 마신 후 뿜었다.
“나도 진짜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
“인간이라며?”
“아닌 거 같아.”
여자는 생긋 웃었다. 인간이라니. 여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닮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의 입에서 깊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싫다.”
“미안.”
“왜 사과를 해.”
그의 사과에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짧은 헛기침을 했다.
“이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얼른 가.”
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 순간에도 망설여지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했지만 겁이 나고 두려웠다.
“만일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게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런 삶을 그냥 가야 하는 거야?”
그의 물음에 여자는 잠시 고민에 빠진 후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그럴 리 없잖아.”
여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다 걸고 하는 거였다. 그런데 저 삶이 아니라니. 그럴 수 없는 거였다. 단순히 그만 이 삶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
“우스운 일이야.”
“그런가?”
“그래.”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믿음을 갖기에는 겁이 났다. 그가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 여자는 그 어느 순간부터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따.
“행복할 거야.”
“정말?”
“그리고 행복해야 해.”
“그래. 행복.”
그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행보기라는 거. 자신이 해야 하는 거였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왜?”
“다들 못 보는 거라니까.”
“볼 수 있을 거야.”
“그럴 리 없잖아.”
그는 고개를 흔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여자도 알고 있고, 그도 알고 있고 다른 가짜들도 알고 있는 거였다. 자신이 저 진짜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고 있는 거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진짜와 가짜는 서로 몰라야 하니까. 만날 수 없을 거였다.
“나비다.”
순간 그들 앞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이 나비가 신일까?”
“드라마?”
“그 도개비 나오는.”
“아. 그거.”
모두 거실에 모여서 봤던 드라마였다. 진짜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말에 그들도 봐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힌 것은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다는 거였다. 아니, 재미라기 보다는 흥미롭다는 거였다.
“그런데 신이 우리에게도 올까?”
“왜?”
“우리는 신이 만든 진짜가 아니잖ㅇ.”
“가짜.”
여자는 입을 내밀고 미간을 모았다. 가짜라는 것. 그리고 진짜라는 것. 그것을 누가 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거였다. 적어도 자신들은 진짜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갈 거야?”
“어?”
“나도 돌아가야 해.”
여자는 시간을 확인한 후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그를 진짜의 삶으로 돌라고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여기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돌아가야만 했다.
“너도 여기에 남을래?”
“미쳤니?”
여자는 곧바로 파안대소하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 그는 혀로 아랫입술을 축인 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그냥 머?”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준다면 아주 약간의 불안함이 사라질 거 같아서. 모두를 같이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숨이 막혀.”
여자는 가만히 하늘을 응시했다.
“같은 하늘인데 다른 거 같아. 우리가 늘 보던 하늘에 비해서 더 맑은 거 같아. 구름도 많고 자유로운 거 같아.”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그의 대답에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꼰 후 짧게 헛기침을 한 후 목을 가다듬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그럴 리 없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여자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여유롭게 담배를 피는 흉내를 냈다. 그 순간 종업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곳은 금연입니다.”
“물고만 있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됩니다.”
여자는 종업원을 빤히 응시했다. 특별한 곳이 하나 없는 얼굴. 하지만 자신과 다른 진짜.
“까다롭네.”
“죄송합니다.”
가짜인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진짜. 여자는 순순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담배는 몸에 해롭습니다.”
“고마워요.”
종업원이 돌아서고 여자는 씩 웃었다. 그러다 툭 하고 눈물이 떨어지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게 뭐야?”
여자는 당환한 채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만히 웃었다.
“그냥 울어.”
“싫어.”
그의 제안에 여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감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나 우는 거였다.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울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진짜들이 우리를 보면 알아볼 수 없는 거네.”
“당장 저기로 가. 저 사람에게.”
그와 닮은. 아니 그의 원래인 그. 하지만 그와 닮았지만 너무나도 지치고 늙은 남자.
“정말 내 진짜일까?”
“뭐?”
그의 말에 여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까지 와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누가 봐도 너랑 닮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진짜 너야. 진짜 너라고. 지금 네가 망설일 이유 하나도 없단 말이야.”
“너무 다르잖아.”
“달라?”
그의 말에 여자는 물끄러미 진짜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말을 듣기 전에는 그 누구보다도 그와 남자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아니 다른 사람이었다.
“그건 당연한 거야.”
“왜?”
“살아온 게 다르니까.”
“살아온 것.”
여자는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짜증이 섞인 듯 아랫입술을 한 번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돌아가.”
“미쳤어.”
여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들에게 엄청난 의미였다. 이대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돌아갈 수 없었다. 다들 뭔가를 기다릴 거였다. 무조건 그는 진짜가 되어야만 하는 거였다.
“너는 희망이야. 다시 돌아가면 모두 뭐라고 할 거 같아? 이렇게 왔으니 다행이다. 그럴 거 같아? 아니 모두 너를 몰아세울 거야. 모두가 갖고 있던 꿈을 망가뜨린 거잖아. 모두가 바라는 희망이야.”
“희망.”
여자는 잠시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순간에 자신은 뭘 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갈래?”
“뭐?”
“네가 있다면 가능할 거야.”
“그게 무슨.”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저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다면 모두 놀랄 거였다. 그런데 같이 가다니.
“그러면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있어. 우리는 희망이 될 거야.”
“희망이라니.”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웃음이 될 거야.”
“해보지 않고 모르는 거잖아.”
그는 여자를 보고 생긋 웃었다. 이제 진짜처럼 보이는 웃음. 여태 그가 보이던 웃음과 전혀 다른 웃음이었다.
“그렇게도 웃을 수 있는 거였구나.”
“이렇게도 웃을 수가 있는 거였어.”
그의 덤덤한 대답에 여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가 여전히 망설이자 그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여자를 보며 씩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여자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여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가자.”
“어?”
“가보자.”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자가 망설일 새도 없이 성큼성큼 남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런 걸 매일 마시다니.
“희망.”
희망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자신도 할 수 있는 것. 여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안 들어.”
그는 어느새 남자와 마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가 무슨 사고를 치기 전에 그에게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면서 점점 걸음이 느려졌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의 앞에 있는 남자는 단정하게 단추를 잠근 셔츠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목에 흉터가 보였다. 그 흉터는 배까지 이어져 있을 거였다. 여자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돌아선 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여자에게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지만 여자의 고막에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희망은 없었다. 자신들은 가짜의 가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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