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기민의 사과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오히려 다행이에요.”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기민 씨 덕에 그 녀석에게 제대로 말했어요. 나 의외로 말을 못 하는 부분도 많았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라니까.”
영준은 정말 밝게 웃었다. 일단 이거 하나라도 해결한 것이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영우였다.
“일단 회사 일부터 하죠.”
“알겠습니다.”
기민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내가 답해야 하나?”
“뭐?”
영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뭘 숨기는 거지?”
“그러게.”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영우가 이렇게 의심을 할 때는 오히려 이렇게 나가는 편이 나을 거였다.
“내가 어떻길 바라?”
“뭐?”
“죽기라도 바라는 거야?”
영준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영우는 침을 삼켰다. 지금 자신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다.
“이사회에서 알릴 거야.”
“그렇게 해.”
영준이 간단히 답하자 순간 영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인거야.”
“뭐?”
“너 암이야.”
영준은 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 물끄러미 영우를 응시했다.
“그래서 즐거워?”
“어?”
“그 미소.”
“아니.”
영우는 당황했다. 지금 자신의 미소라는 것은 그저 추측이 옳았다는 것에서 나온 거였지 자신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뭐?”
영준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그를 몰아세우는 거.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였다.
“유치하게.”
“뭐라고?”
“내가 죽기 바라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영우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볍게 턱을 만지며 싱긋 웃었다.
“실수한 거 맞죠?”
“네.”
“젠장.”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김영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답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지 않을 일도 없는 거였다.
“그 녀석이 언젠가는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다소 이르군요.”
“그렇습니다.”
기민의 걱정이 섞인 말에 영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마요.”
“네?”
“표정.”
“아. 죄송합니다.”
“에이.”
기민이 사과를 하자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사과는 왜?”
“그래도 죄송합니다.”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뭐라도 더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거였다.
“그 녀석이 알았다고?”
“네.”
“확실히?”
“네.”
대충 뭔가 이상하게 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영우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과도 다를 거였다.
“그 녀석은 유치하게 굴 거다.”
“알고 있습니다.”
영준의 간단한 대답에 서혁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내 아들이구나.”
“그 녀석에게 힘을 주세요.”
“뭐?”
“그러셔야 합니다.”
서혁은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왜 회사에 돌아온 거라고 생각을 하세요?”
“무슨?”
서혁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그 녀석이 너무나도 싫어요. 하지만 그래도 유일한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지키기 바라요.”
“너는?”
“아니죠.”
영준의 대답에 서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해.”
“사과는.”
영준의 사과에 동선은 가볍게 팔을 문질렀다.
“앞으로 더 바쁠 거야.”
“알아.”
동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혁과 자신이 만난 것을 영준이 알고 이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너는 안 힘들어?”
“왜?”
“아니.”
“안 힘들어.”
동선은 영준을 품에 꼭 안았다.
“나는 정말 안 힘들어.”
“고마워.”
“뭐가?”
“견뎌줘서.”
“뭐래?”
영준은 동선의 팔을 가볍게 문질렀다.
“앞으로 더 힘들 거야.”
“뭐가?”
“여러가지.”
“그래.”
영준의 말에 동선은 다른 것을 더 묻지 않았다. 영준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이 뭘 하고 있는 거 같나?”
“아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
서혁은 턱을 문질렀다. 도대체 자신이 영준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또 영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복잡했다.
“일단 비밀 지키게.”
“알겠습니다.”
서혁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혹시 알고 계세요?”
“뭘 말이냐?”
“아니.”
순간 서혁의 말투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알고 계시는 군요.”
“뭐?”
“말도 안 돼.”
배신이었다. 도대체 자신을 가족으로 보기는 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이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도대체 저에게 언제 말을 해주실 거였죠?”
“영원히.”
“네?”
“영원히 숨기려고 했다.”
“무슨.”
영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어떻게 그래요?”
“왜 못 그러냐?”
“뭐라고요?”
“나는 너에게 모든 걸 숨기고 싶다.”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멍하니 서혁을 응시했다. 서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냐?”
“그럼 저도 알아서 하죠.”
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사람이 지금 회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몰아내야만 합니다.”
영우의 말에도 사람들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영우는 오히려 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왜?”
“유치하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영준은 씩 웃었다.
“저를 두고 할 이야기가 고작.”
“무슨?”
“회장님 건강하십니다.”
모든 시선이 서혁에게 향했다.
“언제까지 이 회사를 김 가가 할 수도 없고요.”
“무, 무슨?”
영우의 얼굴이 질렸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영준은 싱긋 웃었다.
“저 암입니다.”
모두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회사에서 어떤 것을 하려는 건 아니라는 것을 다 아실 겁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저 이사입니다.”
“이사라니!”
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왜요?”
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닙니까?”
“아니.”
“맞잖아요.”
“그거야.”
영우는 멍해졌다.
“그러니까.”
“이걸로 마치지.”
“아버지.”
“회장님.”
“하지만.”
“마치지.”
서혁이 일어나자 모두 다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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