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앞으로 식사도 어려울 겁니다.”
“아.”
의사의 말에 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니까.”
“소화를 하실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선이 자신과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일이 바로 식사였다.
“미치겠네.”
모든 것이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거였다. 이제 겨우 자신도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거였고. 이제 겨우 여기까지 온 거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죄송합니다.”
“아니.”
의사의 사과를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다.
“사과 말고요.”
영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의사가 하는 사과.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더욱 공포가 엄습했다.
“그런 거 말고.”
“그래서 죄송합니다.”
의사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그의 말이 큰 무게가 있음을. 겨우 알 수 있게 되었다. 겨우.
“젠장.”
욕만 나왔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닌.
“도대체 왜.”
그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거였다.
“심심하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탑승하고 자신이 할 것은 없었다.
“백동선.”
그의 인생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차라리 지금 이런 순간에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거였다. 지금 그에게는 영준이 있으니까. 영준의 문제. 이것을 생각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영우는 아직도 조용한 거죠?”
“네.”
“젠장.”
그 녀석이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불안한 일이었다. 특히나 그 녀석이라면 자신이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거였다.
“지금 약을.”
“아. 네.”
약을 먹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진통제를 삼켰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손은 떨렸다.
“혹시 사탕 같은 거 갖고 있습니까?”
“네?”
“간단한 군것질이라도.”
“아. 사오겠습니다.”
“아니.”
괜찮다고 하려다가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녀오세요.”
“네.”
기민이 나가고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김영준.”
죽어간다는 것은 이런 거였다. 몸에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젊은 나이였고 이건 암이 좋아하는 몸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의 몸의 진행은 빨랐다.
“죽어간다는 것.”
시야도 터무니없이 좁아졌다.
“미치겠군.”
영준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 얼마나 안 좋아?”
“네?”
밖으로 나가던 기민은 영우를 만나서 미간을 모았다.
“무슨?”
“대충 알고 있어.”
영우는 턱을 만지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 녀석이 죽고 나면. 너 다시 나에게 돌아와야 하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줄을 제대로 서는 게 어떨까 싶은데 말이야. 지금 그저 동정심. 그거 하나에 너를 걸기에 다소 아깝지 않아?”
“그런 거 아닙니다.”
“뭐?”
기민의 차분한 대답에 영우의 얼굴이 굳었다. 기민은 자신에게 있을 때와 다른 사람인 거 같았다.
“지금 무슨 말이지?”
“영준 사장님이 좋습니다.”
“뭐라고?”
영우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영준이 좋다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기민은 자신이 뽑은 사람이었다.
“너는 내가 그 녀석에게 붙인 거야. 그런데 지금 와서 그 녀석이 좋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기민의 음성은 너무나도 차분했다.
“뭐라고?”
그는 무조건 자신의 사람이어야만 하는 거였다. 자신이 붙인 거였는데. 지금 기민은 그렇지 않았다.
“후회를 할 수도 있어.”
“네?”
“그 녀석 죽어.”
“압니다.”
“그런데 이래?”
“네.”
기민의 건조한 대답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지금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더 오래 살아.”
“압니다.”
“그런데 이래?”
“네.”
“왜?”
“왜라고 하셔도.”
기민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가.”
“이유라.”
기민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영준 사장님은 내일이 있습니다.”
“내일?”
“네.”
“그 녀석에게 왜?”
“그러게요.”
기민의 대답에 영우는 주먹을 세게 내리쳤다. 기민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영우의 행동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뉴스에 나실 수 있습니다.”
“뭐?”
“그리고 단순히 영준 사장님을 넘기려고 뭔가를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오히려 사장님에게 미래가 없는 겁니다.”
“뭐?”
영우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전 이만.”
“야!”
뒤에서 영우의 비명이 들렸지만 기민은 그를 무시하고 돌아섰다. 영우는 뒤에서 어깨를 들썩이더니 미간을 모았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아?”
영우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영준의 인사에 기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심하십시오.”
“네?”
“지금 영우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아.”
기민의 경고에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
“하지만.”
“알아요.”
왜 이러는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그 녀석이 나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점심은 나가서 먹죠.”
“네.”
기민의 말을 끊는 것에는 일을 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기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죠?”
“아닙니다.”
“거짓말.”
영준은 싱긋 웃었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마요. 나는 이제 곧 죽는 사람이니까. 죽는 사람은 이 정도는 할 수가 있는 거거든.”
“그런 말씀은.”
“사실이니까요.”
영준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기민은 이 순간 깨달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은 영우가 아니라 바로 영준이었다.
“젠장.”
회사 안에서 한 이야기가 어떻게 기사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혁이 막은 것이 실패했다는 거였다.
“괜찮아?”
“응.”
영준의 단호한 대답에 동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점심에 시간을 내서 만난 건데 일부러 이럴 이유는 없었다.
“괜찮을 거야.”
“뭐?”
순간 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그거 뭐야?”
“뭐가?”
“무슨.”
“아니.”
“놀리는 거야?”
갑자기 영준이 악을 쓰자 동선의 얼굴이 굳었다. 영준의 화는 너무나도 느닷없는 것이었고 큰 거였다.
“왜 그래?”
“내가 우스워?”
“아니.”
“그런데 왜?”
영준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이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영준아.”
“무서워.”
영준의 얼굴을 본 동선은 그를 가만히 안았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고통이 다 담겨 있는 기색이었다.
“괜찮아.”
“정말 싫어.”
동선은 고개를 그의 머리에 묻었다. 그리고 가만히 영준의 등을 문질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짓된 믿음을 그에게 주면서. 정말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괜찮아.”
“나 무서워.”
“알아.”
동선은 그의 어깨를 문질렀다.
“사랑해.”
동선의 말에 영준은 겨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동선은 계속 영준의 등을 문질렀다. 영준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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