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하지 마요.”
“왜요?”
“망할 자식에게 혼나요.”
“제가 막을게요.”
소매를 걷고 동선이 설거지를 시작하자 은수는 입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다른 정리를 시작했다.
“그 망할 자식 운도 좋아요.”
“왜요?”
“동선 씨 같은 사람을 만나니까요.”
“에이. 아닙니다.”
동선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다지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도요.”
“정말 그래요.”
동선의 대답에 은수는 그저 웃었다.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영준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은수 씨야 말로 대단한 거 아니에요?”
“제가요?”
“이것도 맡아주고.”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남들은 안 해요.”
은수의 덤덤한 표정에 동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은수의 표정이 그러다가 어두워지는 걸 보고 시선을 돌렸다.
“손님은 좀 어때요?”
“좀 많아요.”
“그럼 직원을 더 쓰죠.”
“그건 안 돼요.”
“네?”
은수의 말에 동선은 고개를 돌렸다.
“왜요?”
“공식적으로 기민 씨. 그러니까 원래 여기에서 일하던 그 사람 있잖아요. 여전히 여기에서 일을 하는 걸로 되어 있어서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는 저랑 기민 씨. 두 사람이 일을 하는 거죠.”
“아.”
동선의 표정에 은수는 가만히 웃었다. 은수는 그러면서도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 정도는 그다지 힘들지도 않아요. 그리고 매일 이렇게 동선 씨가 와서 도와주기도 하잖아요.”
“이 정도로 뭘요.”
“왜 여기에서 일을 해?”
그때 카페에 들어온 영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 말라니까.”
“어떻게 그래?”
“아니.”
“제가 하겠습니다.”
기민이 재킷을 벗고 바로 소매를 걷었다. 동선은 단호히 그를 막아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기민 씨 일 아니잖아요.”
“저 여기 직원입니다.”
“김영준.”
“어?”
갑자기 동선이 자신을 부르자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뭐가?”
“기민 씨 그만 하라고 해.”
기민은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영준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 주식을 그 녀석에게 쓴다고요?”
“그래.”
서혁의 대답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왜 그러느냐?”
“말도 안 되잖아요.”
영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식적으로는 저만 아버지의 아들이라고요. 모든 것이 다 저만.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세요?”
“그래서 모르는 거냐?”
“네?”
“다들 안다.”
서혁은 차분히 대답했다.
“모두 그 녀석이 내 아들인 걸 알아.”
“아니.”
서혁의 대답에 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요.”
영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용납할 수 없었다.
“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네가?”
서혁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네가 그러면?”
“네?”
“누가 무서워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냐?”
“아버지.”
“그 누구도 아니다.”
서혁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미소가 지워지고 진지한 무언가만 남았다.
“이기적인 놈.”
“제가요?”
“그래.”
서혁의 간단한 대답에 영우는 주먹을 쥐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건 이해를 할 수 없는 거였다.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거죠?”
“뭐라고?”
“저에게 뭘 바라시는 거예요?”
“못난 놈.”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혁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제가 할 것을 할 겁니다.”
“그래 보거라.”
서혁의 여유로운 태도에 영우는 침을 삼켰다.
“그럼 문제가 큰 거 아니야?”
“아니.”
은수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 예상도 하지 않고 거기에 돌아간 건 아니니까. 어차피 언젠가는 그 녀석도 알 거였어.”
“뭐?”
은수는 놀라며 가볍게 그의 팔을 문질렀다.
“무슨 소리야?”
“어차피 죽을 거니ᄁᆞ.”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여기. 이쪽도 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은수가 살짝 굳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정도는 알고 있던 거니까.
“이 녀석 엄살 아니야?”
“뭐?”
“별 거 아닌데 말이야.”
“뭐래?”
영준은 입을 내밀었지만 동선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팔을 때렸다. 영준은 울상을 지었다.
“아파.”
“애도 아니고.”
“정말 심각하십니다.”
순간 기민의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낮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셨는지 아신다면. 지금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실 수 없을 겁니다.”
“네?”
“기민 시.”
기민의 말에 영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지 마요.”
“그런 거였어?”
“아니야.”
영준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아픈 것을 다 알면서도 다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 아니야.”
“시각도 더 좁아지셨어요.”
“이기민 씨!”
영준이 자시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나서야 기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가야겠다.”
은수의 말에 영준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민이 멀어지고 나서 세 사람은 어색한 침묵을 이어갔다.
“정말 그래?”
“아니야.”
동선의 물음에 영우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런데 왜?”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영준은 대충 넘기려고 했지만 동선은 진지했다.
“왜 나에게 숨겨?”
“숨기긴.”
“김영준,”
동선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영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영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결국 동선도 하나하나 더.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에게 같이 살자고 한 거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다 말을 해야 하는 거라고.”
“다?”
“그래.”
“다라니.”
영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어떻게 그래?”
“왜 못 그래?”
“지금도 아파.”
“뭐?”
영준의 고백에 동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무슨.”
“지금도 숨을 쉬지 못할 만큼 아파. 네 모습도 잘 안 보여. 네가 거기에 있으니까 있는 거야.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다 말을 할 수가 있어? 이건 아닌 거잖아.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말을 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 네 냄새. 이거 하나로 네가 거기에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어?”
“그건.”
동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너무 몰아세운 거였다.
“미안해.”
“미안하라고 한 말 아니야.”
영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몰랐어. 전혀.”
“네가 모르는 게 좋아.”
영준은 겨우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안해.”
“뭐래?”
동선은 가만히 영준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알고 있던 것들. 서혁에게 그렇게 잘난 척 하던 것들. 사실은 그게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너무나도 작은 부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거였다.
“안아줘.”
“하지만.”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
동선은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왜?”
“음란한 암환자.”
“너의 연인이지.”
동선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큰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영준을 응시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입술이 곧바로 닿고 서로의 숨결이 거칠게 섞이기 시작했다. 영준의 등을 타고 동선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영준의 입에서 작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의 몸에 자신의 입술을 묻었다. 영준의 몸에서 꽃이 피어나고 방에 두 사람의 신음이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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