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32장]

권정선재 2018. 11. 15. 23:05

32

미안해.”

아니야.”

영준의 사과에 은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었는데 그가 사과를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너에게 뭔가 더 바란다는 게 이상한 거지.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사과는 안 해도 돼.”

그래도.”

정말로.”

은수는 가볍게 영준의 팔을 문질렀다.

갑자기 왜 이래?”

기민 씨도 없고.”

아유. 괜찮아.”

은수는 영준의 눈을 보고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고마웠다.

많이 안 좋은 거지?”

? .”

영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치료는?”

절대로 불가능.”

아니.”

절대로 불가능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은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게.”

영준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겨우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 녀석에게는 말을 하지 말고.”

이미 다 알 걸?”

그래도.”

김영준.”

은수는 미간을 모았다.

다 말 해.”

?”

동선 씨.”

싫어.”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선에게는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안 그래도 다 보이는 걸.”

그러니까 말을 해야 하는 거야. 그냥 네가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아는 거. 이거 말도 안 되는 거야. 동선 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동선 씨도 힘들 거야.”

그렇겠지.”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지치고 힘드는 만큼 그 역시 힘들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럼 어떻게 해?”

?”

다 말을 하라고?”

당연하지.”

아니.”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 없어.”

?”

나 정말 심각해.”

?”

너도 안 보여.”

?”

순간 은수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 지금 영준이 하는 말이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영준은 은수의 얼굴이 있는 곳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 어딘지 모르게 정확한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은수는 입을 가렸다. 그 동안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른 일이었다.

왜 말을 안 했어?”

말을 하면 달라져?”

아니.”

은수는 눈썹을 긁적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 이거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해. 도대체 왜 앞이 안 보이는 건데? 이거 정말로 문제가 되는 거잖아.”

그렇지.”

영준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문제지.”

김영준.”

부탁이야.”

.”

?”

영준의 말에 은수는 어이가 없었다. 동선에게 비밀이라는 거. 결국 이런 말이었다. 이걸 숨기라는 거였다.

나 못 해.”

왜 못 해?”

동선 씨 매일 여기에 와.”

그러니까.”

아니.”

너만 알아야 해.”

싫어.”

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걸 자신만 알고 있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슬프고 무서운 일은 다른 사람도 알아야 하는 거였다. 더군다나 동선이라면 더 알아야 하는 거였다.

동선 씨. 네 시야가 많이 좁아진 거 알고 있어. 그런데 굳이 이걸 숨길 이유 없는 거잖아. 안 그래?”

나 사랑하고 싶어.”

?”

그 녀석이랑 연인이고 싶어.”

아니.”

알아.”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아픈 것을 이용해서. 내가 지금 아픈 거라서 그 녀석을 잡은 건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 녀석하고 그냥 연인이고 싶어.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하니까. 그냥 그러고 싶어.”

은수는 쉬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전시는 싫어.”

?”

식사를 준비하던 동선이 가볍게 고개만 돌렸다.

?”

그냥.”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 아까워.”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작가잖아. 그런 거면 같이 가면 될 거 같은데? 우리 홍대에 간지 오래 되기도 했고. 너 거기 옆에 미미네 좋아하잖아. 거기에서 떡볶이 먹고 그러면 될 거 같아. 어때?”

아니.”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에 가서 어떤 소감을 하지 못하는 거 그거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거 좀 그래.”

아니.”

싫다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어?”

?”

순간 동선의 음색이 변하자 영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게 이런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지?”

없어.”

정말?”

.”

혹시라도 뭘 더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내일 퇴근하고 가자.”

그래.”

영준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기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전시 좋아합니다.”

그래요?”

다행이었다. 기민이 그저 자신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해주는 건 고마웠다.

그런데 다 해줄 수 있죠?”

그럼요.”

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심호흡을 했다.

 

다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

.”

기민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여덟 시간 내내 전시관에 있었다. 이렇게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준 기민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합니다.”

?”

지쳤죠?”

아니요.”

기민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렇습니다.”

거짓말.”

왜요?”

거짓말인 거 아니까.”

아닙니다.”

기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준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안 보이십니까?”

? .”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진행이 되는 중이었다.

젊어서 그래.”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기민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혀로 입술을 축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민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말씀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런 거 아시기 바랄 거 같습니다.”

아니요.”

기민의 제안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왜 모두 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까?

기민 씨는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

정말로요?”

.”

기민의 눈빛은 순간 진지했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구나.”

사장님 같은 분이라면 다 알고 싶습니다.”

그거 신기하네.”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기민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시죠.”

. 가죠.”

영준은 기민에게 살짝 의지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계시더니 아직 다 못 보셨어요?”

?”

직원의 말에 영준은 몸이 굳었다.

무슨 말이야?”

아니.”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침을 삼켰다. 본인은 친근하려고 한 인사. 그게 결국 문제가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