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고작 이런 걸로.”
겨우 혈압 조금 높은 것을 가지고 병원에 오라고 하다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하여간 아버지만 안 계시면.”
영우는 이 말을 내뱉고 주위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다른 이가 들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젠장.”
영준이었다.
“그러니까.”
하지만 영준은 자신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어?”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뭐야?”
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쪽이 백동선 씨?”
“네?”
근무 중이던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누구?”
“김영우입니다.”
“아.”
영준의 이복 동생.
“여기는 무슨 일로?”
“대화 좀 하죠.”
“근무 시간입니다.”
“아. 그래요?”
영우는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씩 웃었다.
“그럼 여기에서 이야기를 하죠.”
“네? 그게 무슨?”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례하군요.”
“이 정도 있으면 무례해도 되는 거죠.”
영준의 처음 모습과도 닮아있는 구석이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제가 근무를 하는 곳이고.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시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요?”
“가주시죠.”
“뭐.”
영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과 만나는 사람이라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은 알았다.
“점심은 언제죠?”
“그쪽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돈 줄게요.”
“네?”
“많이.”
“아니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 동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거라면 그냥 돌아가시죠. 그리고 저에게 하실 이야기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영준이 녀서하고 하시면 됩니다.”
“그 녀석 앞 안 보이죠?”
“네?”
순간 동선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그저 시야만 좁아진 거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거라면 그냥 돌아가십시오. 도대체 그런 소리를 왜 나에게 하는 거죠?”
“아 모르는 구나.”
영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몰라.”
“네?”
“아무 것도.”
“아니.”
“신기해요.”
영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젖히고 다시 표정을 지웠다.
“그렇게 같이 살면서. 그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 걸 나에게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여기에까지 와서 이러는 거. 너무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영우는 입술을 내밀고 턱을 긁적였다.
“왜일까?”
“이봐요.”
“그 녀석 말려요.”
“네?”
“회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동선은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자신을 위한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 형제인 거 아닙니까?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형제요?”
동선의 말을 잠시 듣던 영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말을 했던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형제라니.”
“그럼 아닙니까?”
“아니죠.”
영우는 사납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형제라니.”
“그럼?”
“원수.”
“원수라니.”
“원수죠.”
영우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그리고 숨을 내뱉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혀로 입술을 살짝 축였다.
“그쪽이 그 망할 녀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말려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 그 녀석이 덜 아프니까.”
“안 아프다.”
영우의 대답에 동선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지금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동선은 물끄러미 영우의 눈을 응시했다.
“아직도 두려우신 거군요.”
“뭐라고요?”
“그냥요.”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우를 보고 싱긋 웃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해.”
“네가 왜?”
“내 형제니까.”
“아니.”
영준의 사과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볍게 영준의 얼굴을 만지고 싱긋 웃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김영준.”
동선이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영준은 씩 웃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숨기지 마.”
“어?”
“너.”
“아니.”
“너 지금 안 좋지?”
“아니야. 좋아.”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러게.”
영준은 고개를 숙였다.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네가 자꾸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너를 떠날 수밖에 없어. 나는 너를 피할 수밖에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데?”
“연애.”
“연애라고?”
동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하는 거 연애 아니야.”
“뭐?”
“이건 아니라고.”
“야.”
“나는 아니라고 본다.”
동선의 진지한 말에 영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호텔로 가.”
“어?”
“우리 같이 사는 거 다시 생각을 하자.”
“아니.”
“나가줘.”
동선의 말에 영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진지하고 무거운 말.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서 바로 나온 거야?”
“응.”
“네가 잘못을 한 거네.”
“뭐?”
은수는 가볍게 영준을 문질렀다.
“이봐요. 김영준 씨. 같이 산다는 건. 문제가 있더라도 모두 다 이야기를 한다는 걸 이야기를 하는 거야. 특히나 너는 아픈 사람이잖아. 아픈 사람과 같이 사는 거. 그거 쉬운 일이 아니라고. 모든 것을 이미 다 감내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야 가능한 거야. 동선 씨 그런 마음이야.”
“그럼 나는 쉬워?”
“어?”
“그럼 나는 쉽냐고!”
갑자기 영준이 고함을 지르자 은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너 왜 그래?”
“나는 쉽냐고.”
영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힘들어.”
“영준아.”
“정말.”
영준의 몸을 은수가 감쌌다.
“김영준.”
“정말.”
“좀 진정해.”
영준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고마워요.”
“아니요.”
동선의 인사에 은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에게 이런 것도 해주지 못하는 게 우스운 거였다.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닌데.”
“아파서 그래요.”
“아파서.”
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대단해요.”
“네?”
“지금.”
“좋아하니까요.”
“정말로 좋아하는 거네요.”
“그럼요.”
“부럽다.”
은수의 말에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순간 영준이 꿈틀거렸다. 은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짧게 고개를 숙였다. 동선은 은수가 나가기가 무섭게 영준만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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