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요.”
기민의 물음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기민에게 모두 보일 이유는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 말씀을 하셔도 됩니다.”
“네?”
“모두 다.”
기민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영준의 눈을 응시했다. 이전과 다르게 빛을 잃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보는 그 눈은 힘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사장님은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생각도 하지 마시고 지금 하시는 것을 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이상하죠?”
“네? 아닙니다.”
“거짓말.”
영준의 미소에 기민은 어색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니까. 모두 다 자신의 문제였다.
“그 녀석과 살아야 하는 거냐?”
“네?”
갑작스러운 서혁의 말에 영준은 미간을 구겼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거야.”
“나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네?”
“너를 만나는 조건으로.”
“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동선은 지독한 장난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다른 것을 생각을 할 것은 없었다. 서혁은 모르겠지만 그건 그다지 큰 악의는 없을 거였다.
“그런 녀석하고 무슨.”
“그런데 왜 만나신 거죠?”
“뭐?”
“왜 만나신 거냐고요.”
갑자기 이야기가 자신이 생각한 곳과 다른 방향으로 가자 서혁의 얼굴이 굳었다.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버지가 그 녀석을 만나실 이유 전혀 없잖아요. 도대체 그 녀석을 만나서 뭘 하시려고 하는 건데요?”
“당연히 내가 아버지인데 그 녀석을 봐야 하는 거 아니겠냐? 그게 내갸 해야 하는 일이란 말이다.”
“아니요.”
서혁의 항변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 누구도 해야 할 일이 아니었고, 그 누구도 할 이유가 없는 거였다.
“얼마를 주건 그 녀석이 저를 만나주는 것 자체가 고마워요. 저 이제 죽어요. 그거 아버지 모르시는 거 아니죠?”
“무슨.”
“죽어가는 사람을 누가 만나요?”
“미친 자식.”
“사실이잖아요.”
영준의 간단한 대답에 서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정말.”
“너는 자존심도 없는 거냐?”
“네.”
“뭐라고?”
“없어요. 그런 거.”
영준은 단호히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그런 거 왜 가져야 하는 거죠?”
“너는 이 그룹을 이끌어갈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그런 녀석에게 모든 것을 다 거는 거. 그거 말도 안 되는 거다.”
“저 죽어요.”
몇 번을 들어도 냉정한 말. 너무나도 냉정한 말에 서혁은 침을 삼켰다.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더 듣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죽어요. 그리고 죽어가는 저랑 살아준다는 것은 그 녀석이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 녀석을 밀어내려고 하세요?”
“너랑 같이 살 사람이 필요한 거라면 나도 있다.”
“네?”
“네 아버지가 있어.”
“아버지라.”
영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정작 자신이 필요로 할 때는 없으면서 자꾸만 나서는 사람이었다.
“그러지 마세요.”
“뭐라고?”
“그리고 돈 주세요.”
“망할 녀석.”
“그게 저를 위하시는 일이에요.”
영준의 대답에 서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해.”
“아니야 내가 실수한 거야.”
영준의 말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유치하게 행동을 한 것인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말을 할 이유는 없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 잔인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를 위한 거니까.”
“어?”
“그래서 그런 거잖아.”
“뭐.”
동선이 괜히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자 영준은 그런 그의 허리를 꽉 안았다. 동선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동선의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영준에게 들어왔다.
“낮이야.”
“그래서?”
동선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영준의 몸을 쓸었다. 늘 통증만 느껴지던 몸에서 가볍게 탄성이 터져나왔다.
“젠장.”
영준이 신음을 참으려고 하자 동선은 씩 웃었다.
“소리를 내도 돼.”
“미쳤어?”
“왜?”
“여기 사무실이야.”
“그래서?”
동선은 가볍게 영준의 젖꼭지를 비틀었다. 영준은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그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귀여워.”
“미쳤어.”
“사랑하니까.”
동선은 영준의 쇄골에 입을 묻었다. 그의 입술이 옮겨지는 곳마다 꽃이 피었다. 영준의 허리는 뒤로 젖혀지고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몸을 비틀면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건장한 동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냥 즐겨.”
“하지만.”
동선은 가볍게 영준의 몸을 쓸었다. 그리고 천천히 단추를 풀고 그대로 그의 젖꼭지를 입 안 가득 머금어서 혀로 장난하기 시작했다.
“흣. 하지 마.”
“싫어.”
영준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동선은 씩 웃었다.
“미친.”
“좋아. 미쳐서.”
그리고 손을 아랫도리로 가져가서 쥐었다. 동선의 손에 가득 찬 뜨거운 자신의 몸에 영준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몸은 원하네.”
“시, 시끄러워.”
“귀여워.”
그리고 동선이 더 내려가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기, 기민 씨.”
“죄송합니다.”
“아니요.”
기민이 그대로 나가려고 하자 영준은 동선을 밀어내면서 단추를 채웠다.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왜 온 겁니까?”
“긴급 회의입니다.”
“네?”
영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요?”
“그저 너는 보면 되는 거다.”
“아니요.”
서혁의 말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보기만 하는 것. 그건 자신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앞으로 죽을 아들을 가까이 하고, 오래 있을 아들을 멀리 하는 거라고요. 그거 잘못이에요.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런 행동을 하시면 안 되는 거라는 거 모르세요?”
“모른다.”
“아버지.”
“나에게 아들은 너 하나다.”
“무슨.”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뭘 하시려고요?”
“너를 부회장에 앉힐 거다.”
“네?”
“그리고 너는 치료를 받아라.”
“아니.”
“그럼 그 녀석에게 돈을 주마.”
“네?”
결국 동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혁은 아직도 동선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녀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너를 위한 거라면 지금 내 생각을 접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럼 지금 이것도 접으시죠. 제가 많이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거. 아버님도 아시는 거 아닌가요?”
“안다.”
서혁의 간단한 대답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아신다고요?”
“그래.”
“그런데 왜?”
“그러니 말이다.”
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동안 자신이 배운 모든 경제 서적에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거였지만 이런 걸 하는 거였다.
“내가 생각을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게 결국 아버지라는 거라면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
“아니요.”
서혁의 말에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건 그저 그가 뭔가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아버지께서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부채를 지니시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실 거 없습니다.”
“네 주식만 있으면 된다.”
“아니요.”
영준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굳이 영우와 부딪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셔서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영우를 지킬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방법은 틀렸어요.”
“내가 도우마.”
“아버지.”
“도울 수 있다.”
“아니요.”
서혁이 도우려고 하면 오히려 더 망칠 거였다.
“제가 할 겁니다.”
“하지만.”
“그리고 회사에서는 나서지 않아요.”
“모두 기사를 낼 거다.”
“네?”
“이미 모두 정해진 거다.”
“정해진 거라니.”
영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싱긋 웃었다. 그런 그의 미소에 서혁은 오히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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