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33장]

권정선재 2018. 11. 16. 00:48

33

도대체 왜 미리 오고 싶었던 건데?”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아니.”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김영준.”

?”

뭘 숨기는 거야?”

아니.”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되었건 동선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왜 그러는 건데?”

뭐가?”

김영준,”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

너 지금 이상해.”

아니.”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이상한 것은 본인이면서 이상하게 자신의 탓을 하고 있는 거였다. 지금 그가 이러는 것을 보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네가 제대로 이야기를 해줘야 내가 지금 네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거잖아. 아니야? 우리 두 사람 같이 살기로 했고. 얼마 전 한 이야기. 그것도 결국 이것에 대한 이야기였던 거잖아.”

그래도 나도 너에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는 걸 이해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왜 그걸 이해를 못 해?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다 너에게 보고를 해야 해? 너 내 상사가 아니잖아.”

상사라니.”

동선은 인상을 구겼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 전부인데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건 두 사람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은 절대로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도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네가 이러면 우리 두 사람 다시 싸우게 될 거야. 나는 그런 거 너무나도 싫어. 이렇게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꾸 다투는 거 나 싫어.”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우리 두 사람 그래도 연인이니까. 네가 내 요양보호사가 아닌 거잖아. 안 그래? 우리 두 사람 연애를 하는 거야. 네가 나를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니라고.”

아니.”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환자라고 생각을 한 적 없어.”

거짓말.”

?”

내가 그런 말에 속을 거 같아?”

아니.”

속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고, 이걸 가지고 싸우는 건 이상한 거였다.

이 시간 아깝지 않아?”

?”

그냥 말을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가 포기하면 되는 거지.”

아니.”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무슨.”

뭐가?”

아니야.”

동선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영준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모릅니다.”

기민 씨.”

저는 모릅니다.”

아니.”

기민까지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왜 다들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기민 씨도 아는 것처럼 나랑 그 녀석 같이 살고 있어요.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모릅니다.”

아니.”

모릅니다.”

정말 너무하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영준의 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걸까? 물론 이게 정말로 그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민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돕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그 녀석을 돕기 위해서는 뭐라도 더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요. 그런데 내가 지금 그 녀석의 상태를 모르는데 도울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그럼요.”

왜 같이 사시는 거죠?”

?”

갑작스러운 기민의 물음에 동선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 기민은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그러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준 사장님과 별로 어울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그렇습니다.”

안 어울린다고요?”

.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건조한 대답. 이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민 씨는 도대체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혹여라도 내가 지금 이 모든 대화를 다 영준이에게 하면. 그 순간 기민 씨는 어떻게 될지 생각도 안 해요?”

. 하지 않습니다.”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묘하게 불쾌한 기분. 도대체 자신을 놀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두 분 안 어울리세요.”

그런 말이 아니라.”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

왜 그러는 거죠?”

?”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민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다만 제가 영준 사장님과 오랜 시간을 보내니, 두 분이 그다지 잘 어울리시는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서로에게 조금씩 지치는 것이 다 보이고요.”

아니요.”

동선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런 것을 가지고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기민 씨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될 겁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 그럴 겁니다.”

동선의 대답에 기민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술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그저 앞만 제대로 보이면 좋겠다는 거였다. 암을 다 낫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주 약간. 정말로 아주 약간만 뭐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건데 그게 안 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아시잖아요. 돈은 얼마든 낼 수 있습니다. 저 주식도 많이 가지고 있고. 이거 다 쓸 수도 있어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지금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암세포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뇌에 시신경과 닿아있는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거 위험합니다.”

아니요.”

이미 그런 위험은 모두 다 감수한 상황이었다. 이제 죽어가는 사람인데 그런 것을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일이에요. 더 이상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거.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으니 수술을 해주세요. 제발.”

못 견딜 겁니다.”

아니요. 견딜 겁니다.”

죽을 거라면 진작 죽을 거였다. 지금 이 순간도 엄청난 고통이 온 몸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두 다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그런 일이라는 건 없었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 보호자요?”

자신은 서른이었다. 게다가 이제 곧 죽을 사람에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농담이시죠?”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의사입니다.”

. 의사시죠.”

영준의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을 살리시는.”

그런데 지금 죽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

그 수술 죽습니다.”

아니.”

무슨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세상에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을 하면 죽는다고 하는 걸까?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죠? 그러면 저는 죽기 전. 어둠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아니.”

결국 또 사과를 듣고 말았다.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것. 그게 바로 사과였다. 그런 사과를 이렇게 자꾸만 듣게 되는 거였다.

그런 거 말고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영준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서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셔서 그래요. 저 지금 이렇게 아무 것도 못 볼까. 그게 걱정이에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뭐라고요?”

걸을 수는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이런 말을 지금 위로가 되라고 하는 말일까.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저를 왜 부르신 거죠?”

이제 할 것이 없다고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할 게 없다니.”

진통제는 지금 계시는 곳 근처의 병원에서 받을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호텔로도 안 옮기셔도 될 겁니다.”

?”

호텔로 옮기려는 이야기까지 모두 아는 거였다.

아버지도 아십니까?”

아니요.”

왜죠?”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니까요.”

이럴 때는 회피를 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엄마에게도 이랬다.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그저 혼자서 다 견디게 만들었다. 그런 거였다.

그거 아니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니.”

영준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 말고.”

눈물이 차올랐다.

젠장.”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물은 나니까.

정말 씨발.”

자꾸 욕만 나왔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러는 거죠?”

의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물음을 하는 이들이 가득일 거였다.

제길. 제길. 제길. 씨발.”

아무리 욕을 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