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67장]

67장

“내가 왜 해야 하는 거지?”

“더 오래 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요.”

“지킨다.”

영우의 말에 기민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으십니까?”

“뭐지?”

“네?”

“나에게 왜 이래?”

영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민을 응시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한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이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그러게요.”

기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저 더 이상 부회장님과 사장님이 싸우면서 형제간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그런 거 보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뭔데?”

“그러게 말입니다.”

“젠장.”

영우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침을 삼켰다.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기민이 행동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내가 아니라 그 새끼가 더 좋다고 그 새끼랑 일을 한다고 간 거잖아. 그런 녀석이 도대체 왜 지금에 와서는 나에게 와서 내 편이 되어주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그거 이상한 거잖아.”

“단 한 번도 누군가의 펴이 된 적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겁니다.”

“올바른 것.”

영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아니야.”

“네?”

“나는 재단 반대야.”

“사장님.”

“무조건 반대라고.”

기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기미의 보고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우가 동의를 할 리가 없었다.

“그 녀석이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런 녀석이 쉽게 재단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있어?”

“하지만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회사 이미지도 좋아지고 사장님에게도 좋을 겁니다.”

“그렇죠.”

기민의 분석에 영준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게 전부입니까?”

“네?”

“아니.”

영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끼어들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일단 준비하시죠.”

“알겠습니다.”

기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겠어?”

“응.”

“아니.”

“할 수 있어.”

동선의 걱정이 더해지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했잖아.”

“이건 달라.”

“안 달라.”

“달라.”

동선이 힘을 주어 말하자 영준은 입술을 내밀었다. 자신은 그대로인데 동선의 걱정만 커진 기분이었다.

“지금 내 생각에는 네가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내가 이런 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네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네 tkdox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거야.”

“알아.”

영준은 동선의 손을 잡았다.

“안다고.”

“김영준.”

“그래서 해야 하는 거야.”

“무슨?”

“죽기 전에.”

“야.”

“당연한 거잖아.”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이런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정말 이제 곧 끝이라는 것. 그 모든 게 느껴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 지금도 아파.”

“그럼 약을.”

“아니.”

동선이 약을 내밀자 영준은 손을 들어 그걸 밀어냈다.

“그런 말이 아니야.”

“어?”

“약을 아무리 먹어도 아파.”

“무슨?”

동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동선을 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그럼 약을 바꾸거나 늘려.”

“싫어.”

“왜?”

“그럼 나를 잃어.”

“어?”

“나는 알아.”

영준은 침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독한 약은 지금 당장의 고통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결국 삶을 빌려가는 거였다. 한 순간을 늘리기 위해서 멀쩡한 시간을 모두 다 잃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할래.”

“안 돼.”

동선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왜라니?”

“나 어차피 죽어.”

“아니.”

동선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말 좀 하지 마.”

“왜?”

“어?”

“왜 하면 안 되는 건데?”

영준은 손을 내밀어 동선의 뺨을 만졌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슬퍼야 할 사람은 바로 네가 아니라 나야. 그런데 왜 이렇게 슬퍼하고 그래?”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네가 되어가고 있어.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결국 떠나는 거잖아.”

“아.”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부모도 없고 혼자인 동선에게 자신이 제멋대로 들어와버린 거였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자신은 이기적인 걸까? 동선이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 이게 어떤 의미인지. 왜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이리 이기적으로 굴었던 걸까?

“슬퍼하지 마.”

영준은 동선의 목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건조하지만 그 안에 온기는 남아있는 입맞춤이었다.

 

“왜 받아들이라는 거야?”

“네가 승계를 받기도 쉬울 거야.”

“뭐?”

“겉으로 보이지는 않고.”

영준의 말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몰라?”

“뭘?”

“회사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들이 재단으로 들어오게 될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이걸 중간에 넣고 돈장난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긍정적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는 있어.”

“지배라.”

영우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영준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들이 한 번에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나에게 해주는 이유가 뭐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바로 너였잖아.”

“그래.”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런 기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그렇다고 막을 이유도 없었다.

“대신 회사 경영은 전문 경영에 맡겨.”

“뭐라고?”

영우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무슨 헛소리야?”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회장이라니. 그런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따.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네가 무슨 힘으로?”

영우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어차피 너 죽잖아.”

“응.”

영준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그런데?”

“대신 주식.”

“그 주식!”

영우는 사자후를 토하듯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왜 이런 녀석에게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준 걸까? 이 녀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쓸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떤 걸까?

“네가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주식을 처리하게 두지 않아. 이 회사의 노조라는 것도 그리 두지 않을 거고.”

“그래?”

영준의 눈썹이 장난스럽게 움직였다.

“다시 방송하지 뭐.”

“뭐라고?”

“뉴스 농장에서도 오라던데?”

“뭐라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려고 했지만 영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장 많은 이슈를 만드는 아침 시사 라디오에까지 초대를 받았다는 말이 그저 허언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결국 너도 다치게 될 거야. 더 많은 관심은 더 많은 칼날로 돌아올 거야.”

“그래.”

“그래도 된다고?”

“응.”

이미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모든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직 동선에 대해서 모르고 있지만 그걸 아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였다. 더 이상 숨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나 정말로 죽어가고 있으니까. 굳이 이런 상황에서 다른 것들을 더 고려할 이유는 없어.”

“뭐라고?”

“나 그냥 다 하려고.”

영준은 아랫입술을 물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오기로 한 일이 이렇게 된 거였다.

“그냥 아버지가 나를 바라만 봐주면 될 일이었는데. 그러지 않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면.”

“아니.”

영우가 다급히 수화기를 들려고 하자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단순한 꼴이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모든 주식을 다 준 것인지 아주 조금은 감이 잡혔다.

“나는 아버지만 무너뜨리면 돼.”

“그게 나도 다치게 할 거야.”

“너는 뭐가 되었건 다칠 거야.”

영준의 경고에 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