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정이의 보고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아직 별다른 반응은 없으십니다.”
“그렇군요.”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이었지만 견뎌야만 했다.
“약 줘?”
“아니.”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동선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영준을 바라봤다.
“이걸 하면 그만 둘 거냐?”
“그러게요.”
서혁의 물음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어떻게 하기 바라세요?”
“뭐?”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망할 새끼.”
영준은 턱을 긁적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꾸 욕만 하실 게 아니라. 제대로 어떻게 할 건지. 그런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요?”
“너 혼자서 정의롭다고 자위하기 위해서 한 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손해가 난 줄 알고 있어?”
“네.”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어느 정도 회사의 재산이 날아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외국 투자도 무산이 되었죠.”
“그래.”
“그래서요?”
“뭐?”
“아버지만을 위한 거잖아요.”
“무슨?”
“이 회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도 없으시죠.”
영준은 검지로 테이블을 만지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지금 회사가 이 정도 수익을 내는 것도 기적이라는 것. 이미 아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제대로 된 투자는 하나도 하지 않아서 돈도 못 벌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네가 잘나서 낳은 결과가 뭐냐? 사람들의 조롱거리만 되고 회사가 흔들리는 것을 바란 거야?”
“네.”
“뭐라고?”
“그래야지.”
영준은 입술을 내밀며 손을 깍지를 꼈다.
“아버지는 이 회사를 뭐라고 생각을 하시죠?”
“무슨 말이냐?”
“그냥. 뭐.”
영준은 입맛을 다시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리듬을 타듯 두드린 후 가볍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 회사를 할아버지께서 맨 처음 차렸던 바로 그 회사로 다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 네가 하는 일이라면 틀린 거다. 아버지께서도 네가 그런 걸 하기 바라시지 않을 거다.”
“하지만 여기에 계시지 않죠.”
“불효막심한 놈.”
“그럴 수도 있죠.”
영준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저는 피곤하니 돌아가주시죠.”
“후회할 거다.”
“지금 아버지가 하시는 거 아닌가요?”
“뭐?”
“보이시죠?”
영준은 자신을 가리켰다.
“죽어가고 있어요.”
“무슨?”
“아버지께서 치료도 안 돕고요.”
“그거야.”
“알아요.”
아마 서혁도 별다른 도리가 없을 거였다. 애초에 그가 그 무엇도 알아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아무튼 가시죠.”
“네가 하는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너는 보지 못할 거다.”
“네.”
“그래도 후회는 없는 거냐?”
“당연하죠. 저는 할아버지의 뜻이니까요.”
서혁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영준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괜찮아?”
“응.”
병실에 들어서던 동선이 놀라서 그대로 굳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신기해?”
“어? 어.”
다시 선 거였다.
“하여간 김영준.”
“왜 그래?”
동선은 바로 영준에게 가서 그를 안았다.
“아프지 마.”
“그래.”
“제발.”
“응.”
동선의 어깨가 들썩였다. 영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동선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겠어?”
“그러게.”
은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귀찮은 일일 거야.”
“알아.”
은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부탁이야.”
“아니.”
“응?”
카페를 대신 맡아준다는 핑계로 거액의 돈을 받는다. 그리고 이건 모두 다 동선에게 주는 거여야만 했다.
“내가 배신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위험한 것을 나에게 시키는 거야? 나를 믿을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라 바로 너라면. 뭐 네가 갖는 거라면 그래도 내 친구니까 다행인 거 같은데.”
“아니.”
은수는 입술을 죽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준은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거 동선 씨 안 받을 거야.”
“알아.”
“그런데 왜 주는 거야?”
“너라면 줄 수 있을 거 같아.”
“뭐?”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영준의 말에 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라고 해서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백동선 씨가 안 그래도 많이 지치고 있는 상황에서 너의 이런 행동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라?”
“울더라.”
“어?”
“내 앞에서.”
“울어?”
“응.”
은수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이거 비밀이야.”
“그럼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어야지.”
“그래도.”
은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도 잘 알고 있지? 지금 동선 씨가 하는 그 일. 그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거. 정말로 많은 희생을 한다는 거.”
“알아.”
“아니까 잘 해.”
“응.”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은수는 영준의 손을 잡았다.
“많이 힘들어?”
“응. 지금은 숨을 쉬는 것도.”
말처럼 영준은 많이 지쳐보였다. 이제 정말로 끝이라는 것. 그게 앞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다르는 중이었다.
“그럼 그 직원들을 다 자르라는 겁니까?”
“본사에서 돌려야죠.”
“아니.”
중간 업체 사장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가능합니까?”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그 동안 해오던 일들이 있는데. 그렇게 바로 다른 팀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잘 할 수 있습니까?”
“뭐가 되었건 이제 필요 없는 부서를 없애는 겁니다.”
“직원들도 생각을 하시죠.”
동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과 영준을 만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준의 모든 에너지를 전부 다 앗아갈 사람이었다.
“그래서 뭘 바라시는 겁니까?”
“일단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내 자리는요?”
“지금 본인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기심이었다.
“당연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가?
“제가 뭘 해주시기 바라는 겁니까?”
“지금 부회장님의 개혁에 대해서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테니 저 좀 신경을 쓰라고 전해주십시오.”
“신경이라.”
동선은 턱을 긁적였다. 영준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종류의 이야기였는데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하는 걸까?
“뭘 해주기 바라시는 겁니까?”
“최소한의 자리보전은 해주셔야죠.”
“자리보전.”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쪽은 해고가 될 겁니다.”
“뭐라고요?”
“아. 그리고 고소도 할 겁니다.”
동선은 검지를 들고 씩 웃었다.
“회사에 문제가 있게 된 것. 본사만의 문제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게실 거라고 봅니다.”
“무슨?”
“싫으시죠?”
동선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럼 모든 자료 넘기시죠.”
“무슨?”
“그럼 고소는 접겠습니다.”
“회사는?”
“관두시는 거죠.”
“뭐라는 거야!”
계열사 사장이 고함을 질렀지만 동선은 여유로웠다. 이런 위험한 일들도 이제 모두 다 자신이 해주기로 결심한 거였다. 영준이 다치는 것. 그리고 더 지치는 것. 그런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걸 다 해주고. 그러기 위해서 이 일을 선택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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