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장
“네가 왜 그런 일들을 하고 다녀?”
“왜?”
“아니.”
영준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동선을 응시했다.
“다들 너를 원망할 거야.”
“그래.”
동선은 입술을 내밀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라고 한 거였다. 차라리 이 편이 마음이 더 편했다.
“그 망할 인간들이 너에게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일부러 더 모질게 나갈 이유는 없어. 그게 결국 너에게도 위협이 될 거라는 걸 모르는 거야?”
“응. 그런 거 나 관심 갖지 않아.”
동선은 영준의 뺨을 만지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가 우선이야.”
“백동선.”
“왜?”
“너 정말 미친 거 같아.”
“그래.”
동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농담이 아니야.”
영준의 눈빛은 꽤나 진지했다.
“지금은 내가 버티고 있으니까 너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 일들. 내가 사라지는 동시에 너에게 할 거야.”
“지금 내가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 여기로 왔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 아니지? 그냥 나만 믿어.”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믿어.”
동선은 한 번 더 말을 반복하며 영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갔다. 영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네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
“잘 할 거야.”
“정말?”
“응. 지금도 잘 하고 있잖아.”
“그렇지.”
동선의 의기양양한 대답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동선은 몸을 살짝 떼고 그런 영준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가볍게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건조하면서도 거칠한 영준의 입술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재단이라니?”
서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도대체 왜 우리 회사의 돈을 그런 거지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거야? 그런 걸 왜 해야 하는 건가?”
“장기적인 관점입니다.”
동선은 펜으로 서류를 두드렸다.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KJ의 이미지가 얼마나 나쁘게 변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보고는 들으셨죠?”
“네 놈 탓이다.”
“아니요.”
동선은 물끄러미 서혁의 눈을 응시했다.
“이미 이 나라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그 시점부터 그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거 모르시는 겁니까?”
“지금 나를 가르치는 거냐?”
“네.”
“건방진 놈!”
서혁은 고함을 지르며 서류뭉치를 동선에게 던졌다. 동선은 얼굴에 그것들을 맞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 아들 놈이 도대체 네 녀석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바람을 불어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에게 이 회사의 지분 같은 것은 전혀 주지 않을 거다. 그러니 뭔가 바꿀 생각은 하지 마. 알겠어?”
“만일 제가 이 회사를 받을 거라면 그냥 이대로 두는 게 이쪽에게 더욱 유리할 거라고 보는데요.”
동선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서류들을 주워서 다시 서혁에게 건녔다.
“장기적인 관점입니다.”
“무슨?”
“그리고 김영준 재단.”
서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제라도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나는 이미 아버지야.”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뭐라고?”
서혁은 소리가 나게 테이블을 내리쳤다.
“지금 누구에게 훈계질이야!”
“그냥 가여워서요. 두 분 모두.”
서혁은 주먹을 세게 쥐고 몸을 가볍게 떨었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다소 건방진 것이라고 해도 영준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이런 무모한 일도 해야 하는 거였다. 그래야만 했다.
“제게 가족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제 조사를 다 끝을 마치신 이후라서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후회할 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선은 서혁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녀석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 옳은 일. 그걸 하실 기회. 지금이라도 가지십시오. 그게 올바른 거니까요.”
서혁을 보며 동선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동선아.”
“야.”
동선은 놀라서 영준에게 다가갔다. 코피가 말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동선은 재빨리 셔츠를 벗어서 영준의 얼굴에 가져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무서워.”
“괜찮을 거야.”
동선은 자신에게 타이르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들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기민의 보고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구나.”
“괜찮으십니까?”
“네?”
“지금.”
“아.”
아마도 넋을 놓고 있었을 거였다. 동선이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걸 진짜로 확인하고. 자꾸만 이런 시간이 생기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는 괜찮아요.”
“많이 지치신 거 같습니다.”
“아니요.”
기민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부회장님을 지켜주시기 위해서는 더욱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 정도 사실은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죠.”
동선은 손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병실에는 제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 없습니다.”
기민의 차분한 대답에 동선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럼.”
“고마워요.”
“아닙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쉬시라고 했습니다.”
“다행이네.”
영준의 반응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지금 아프신 것은 부회장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시는 겁니ᄁᆞ?”
“내가 좋아하니까?”
“아니.”
“알아.”
기민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 녀석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나도 그 녀석에게 뭐라도 해줘야 하는 거잖아.”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요?”
영준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기민이 이렇게 놀랐다는 말을 한다는 것에 이쪽이 더욱 놀랄 지경이었다.
“이기민 씨는 감정을 잘 숨기잖아.”
“네?”
“그런 사람인 줄 아는데.”
“그래도 이건 다릅니다.”
“다르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네?”
“아니요.”
기민이 반문하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하나하나 다 열거하면서 굳이 닭살의 분위기를 만들 이유는 없었으니까.
“다른 말은 없죠?”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영우라면 뭔가 다른 제안을 해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녀석 속을 알 수 없었다.
“김영우가 어떻게 할 걸로 보여요?”
“네?”
“그래도 같이 일을 했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기민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동안 본인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해서 한 번도 막힘이 없으셨던 분이라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그렇겠네.”
자신이 굳이 나서겠다고 생각을 하기 이전까지 이 회사는 오롯이 영우의 것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민 씨가 보기에 내가 잘못하는 걸로 보입니까?”
“아니요.”
“왜죠?”
“네?”
영준의 반문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말씀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그 자식의 사람이니까?”
“아닙니다.”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기민이 영우의 사람이라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거였다. 여기에서 본 것들. 이 모든 것들을 영우에게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도 있을 거였다.
“이기민 씨도 아시는 것처럼 내 옆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거 알아야 하는 거예요.”
“카페가 있잖아요.”
“네?”
“그 카페. 저 거기 직원입니다.”
“아.”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씩 웃었다.
“그걸 잊고 있었네.”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네요.”
카페.
“거기는 잘 되고 있죠?”
“그렇게 다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그래야죠.”
영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좀 잘게요.”
“제가 지키겠습니다.”
“고마워요.”
영준이 눈을 감는 모습을 보며 기민은 고개를 저었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뭔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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