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장
“회사는?”
“잘 돼가.”
“젠장.”
“왜?”
“네가 싫어서.”
병원에 입원하기가 무섭게 영준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동선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
“한심해서.”
“안 그래.”
“거짓말 하지 마.”
동선은 영준을 안아주려고 했지만 영준은 그런 그를 거칠게 밀어내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김영준.”
“너 때문이야.”
“그래.”
영준의 투정에도 동선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변명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몫으로. 이 모든 잘못을 가지고 온다면.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라는 태도였다.
“그래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없어. 네가 하는 이 일. 이거 모두 다 옳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만은 필요 없어.”
“아니.”
“잘 된 거야.”
영준은 침을 삼켰다. 그 모든 것. 잘 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니 모든 게 결국에는 최악이었다. 그가 바라던 일. 그가 스스로 하고자 했던 그 일. 이걸 그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거잖아.”
“왜 없어?”
“어?”
동선은 서류 가방에서 파일철을 꺼냈다.
“다 검토해야지.”
“미친 새끼.”
“그래서 싫어?”
“아니.”
영준은 이가 드러나게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동선도 그런 그의 눈을 보며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 부회장이 없다는 겁니까? 그 사람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영우의 지적에 임원들은 웅성거리며 그의 말에 동의하는 모양새였다. 이미 회의는 오래 기다린 후였다.
“자기 혼자 잘난 것처럼 행동하고. 지금 회사에 문제가 생긴 거. 이거 지금 누가 수습하는 겁니까?”
영우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회의는 관두죠.”
영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임원들도 모두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열렸다.
“여기 왔습니다. 다들 어디 가시나요?”
동선이 미는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는 영준을 보며 다들 긴장한 기색이었다. 영우의 얼굴은 바로 굳었다.
“그 꼴로 온 거야?”
“왜?”
영우의 반응에 영준은 씩 웃었다.
“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
깡마른 외모였지만 영준은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왜?”
“아니.”
“나 부회장이야.”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니잖아.”
“최대주주고.”
영준은 더욱 밝게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이 휠체어를 밀고 영준은 회의실 가운데에 위치했다.
“다들 앉으시죠?”
영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다들 눈치를 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먼저 앉는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뭐.”
영준은 턱을 긁적였다.
“그럼 그대로 들으시죠.”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고 기민과 정이가 들어와서 모두에게 자료를 나눠줬다. 임원들은 하나하나 앉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KJ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그리고 다시 신뢰받는 기업으로 만들 것인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우는 그런 영준을 물끄러미 보다가 돌아섰다. 영준은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기민은 그런 둘을 번갈아 보다가 영우를 따라 나갔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발표를 이어갔다.
“들으셔야 합니다.”
“내가 왜?”
기민의 말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너는 여기에서 뭐 하는 거지?”
“네?”
“저 녀석 사람이잖아.”
“저는 이 회사 직원입니다.”
“아니.”
기민의 대답에 영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회사의 직원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저 녀석의 감시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저 녀석을 고른 거야. 그러고 지금 나에게 와서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나에게 도대체 뭘 바라려는 거야? 이상하잖아.”
“바라는 거 없습니다.”
“저 새끼 뒤지면 받아주라고?”
“아닙니다.”
기민은 단호히 답했다.
“부회장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건방져.”
영우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동선과 비슷한 말인 건지.
“그쪽은 그런 걸 가르치는 건가?”
“네?”
“무례한 말.”
“아.”
기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 하자는 거야?”
“무슨?”
“어차피 나를 몰아내려고 하는 새끼 옆에 있으면서. 지금 나에게 이러는 거. 그거 뭔가 이율배반 아니야?”
“아닙니다.”
기민의 대답에 영우의 눈썹이 움직였다. 영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저 새끼를 괴롭힐 거야. 내가 가질 회사. 내 마음대로 할 회사 이건 아니잖아.”
“회장님을 밀어내는 조건으로 손을 잡자는 그 말. 벌써 유효하지 않게 된 건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유효.”
영우는 턱을 긁적였다.
“여전히 유효하다면?”
“같이 하시죠.”
“내가?”
“네.”
“싫어.”
영우는 딱 잘라 거절했다.
“미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영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것. 그건 자존심이 퍽이나 상하는 일이었다.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새끼한테 내가 도대체 왜 고개를 숙이면서 받아달라고 해야 하는 건데?”
“성공하셨으니까요.”
“뭐?”
“반응을 확인하지 않으십니까?”
“반응?”
인터넷에서 별 시덥지도 않은 것들이 영준의 칭찬을 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회사는 그런 걸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각종 지표 안 보이나?”
“보입니다.”
“다 폭락이야.”
“그 동안이 비정상적이었던 겁니다.”
“아니.”
영우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이미 다른 회사들도 다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는 거였다. 분식을 하는 회사도 멀쩡하게 거래가 되는 상황에서 이건 우스운 일이었다.
“왜 우리만 그런 짓일 해야 하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
“기업 이미지 재고에 효과적입니다.”
“그런 말은 저 새끼에게 가서 해.”
“지금 같이 하지 않으시면 후회합니다.”
“후회?”
자신이 동선에게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저쪽에서 들으니 너무나도 우스운 말이었다.
“백동선 씨에게 미안해주는군.”
“네?”
“별 것도 아닌 새끼의 훈계라니.”
“아니.”
“알았어.”
영우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하는 말.”
“그럼 같이 하실 겁니까?”
“아니.”
기민의 거듭된 물음에도 불구하고 영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이유 없어.”
“하지만.”
“시끄러워.”
“사장님.”
“웃기지도 않는군.”
영우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 새끼랑 뭐 하려는 거야?”
“네?”
“나를 죽여서 뭘 얻으려는 거야?”
“사시라고요.”
기민은 영우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눈에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영우는 시선을 피했다.
“지금 부회장님이 이렇게 나서시기 전에 사장님 한 번이라도 뭔가를 해보신 적 있습니까?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뭐라도 해보신 적 있으시냐고요? 한 번도 저는 사장님을 모시면서 본 적 없습니다.”
“최선?”
“네. 최선.”
“네가 그걸 판단하는 건가?”
“네.”
“무슨 자격으로?”
“그러게요.”
영우의 물음에 기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기민.”
“사장님에게 저는 뭡니까?”
“뭐?”
“아닙니다.”
기민은 다른 말을 더 하려는 눈빛을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영우는 그런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정말 모르십니까?”
“뭐?”
“정말 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
영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영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기민은 그의 눈을 물끄러미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이기민.”
기민은 잠시 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영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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