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장
“다들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영준의 인사에 기민은 고개를 저었다. 정이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저희는 이제 들어가 보게씃ㅂ니다.”
“먼저 가렉요.”
“가세요.”
영준은 둘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바로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입장에서 복잡한 일이었다.
“힘들다.”
“그러게.”
영준은 가만히 동선의 팔을 잡았다.
“걸을 수 있겠어?”
“아니.”
“안아줘?”
“미첬어.”
“왜?”
동선은 영준을 가만히 보고 씩 웃었다. 그리고 그를 안으려고 하자 영준은 그를 밀어내고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는 건 알잖아.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건데. 이러는 거 이상한 거잖아.”
“사고는 무슨.”
“맞아.”
영준의 우울함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팔을 가만히 문질렀다. 영준은 겨우 미소를 지었다.
“아. 동선이 너 먼저 들어가.”
“왜?”
“아버지.”
“같이 가지.”
“아니.”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을 가지고 굳이 둘 다 서혁을 마주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꽤나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자신으로 인해서 힘든 동선을 더 괴롭힐 이유는 없었다.
“그럼 근처에서 기다릴게.”
“아니 그러지 마.”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입을 내밀었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정말 괜찮아서 그래.”
“그래. 알았어.”
동선은 마지못해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살짝 허리를 숙여 영준에게 입을 맞췄다.
“어떻게 수습할 거냐?”
“지금도 거품이 가득한 걸로 보입니다.”
“거품?”
서혁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 거품이라는 것 덕분에 네가 조금이라도 지금 누리는 그것들이 더 커다랄 수 있다는 것을 몰라?”
“그게 사라지면요?”
“그걸 네가 왜 걱정하는 거냐?”
서혁은 고함을 지르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컵이 소리를 내며 떨어졌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뒤질 놈이.”
“좋네요.”
“뭐라고?”
영준의 반응에 서혁의 눈ᄊᅠᆸ이 꿈틀거렸다.
“무슨.”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그거 하려고요.”
영준의 미소에 서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들이라는 놈이 왜 이리 마음에 들지 않게 구는 것인지.
“미친 새끼.”
“고맙습니다.”
영준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내 말 안 끝났다.”
“저는 끝났습니다.”
영준은 입술을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남지도 않은 제 시간을 이런 식으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신의 말만 남기고 돌아서는 영준을 보며 서혁은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구겼지만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좋은 곳에서 지내는 거 같아.”
“미친.”
유준이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보며 동선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하지만 이런 날이 선 동선과 다르게 유준은 그저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너라면 좋을 거 같아?”
“딱히 싫을 거 없을 거 같은데.”
“미친 새끼.”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녀석이 자꾸만 자신에게 엮이려고 하는 것인지. 안 그래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녀석에게 다른 관심을 더 가질 이유도 없었다.
“나에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가. 나는 너랑 대화를 나누는 것 조차도 싫으니까.”
“네 친구 정도는 되지 않나?”
“뭐?”
동선은 어이가 없어서 유준의 눈을 응시했다.
“그게 지금 나에게 할 말이야?”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아니.”
이미 헤어진 사이. 게다가 유준이 먼저 헤어지자고 해서 깨진 사이였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런 주제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 건지. 너무나도 불쾌했다.
“나 취업 좀 시켜주라.”
“뭐라고?”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는 나에게 이런 걸 부탁해도 되는 사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도대체 왜 들어줄 거라고 믿는 거야?‘
“왜?”
유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상부상조?”
“미친.”
“어차피 뒤질 새끼 옆에 딱 붙어 있는 거. 뭔가 다른 걸 얻어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거 그래도 너랑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였고 연인이었던 나랑 나누자고 하는 건데. 이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뭐라는 거야?”
동선은 바로 유준의 멱살을 잡았다. 답답한 소리. 지금 자신의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지는지도 모르고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였다. 자신은 지금 영준을 살리기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이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 정말 죽여버릴 거야. 너라는 새끼 없앨 거라고.”
“같이 누리자니까.”
유준은 동선을 밀어내고 셔츠를 털었다.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뭐?”
“봉 하나 잡았으면 같이 누려야지.”
“개새끼가.”
“그만 두죠.”
그때 영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동선의 얼굴이 굳었다. 영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
“괜찮아.”
동선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풀고 싱긋 웃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
“뭐라고?”
“이 남자 내 남자야.”
영준은 동선의 어깨를 가볍게 문지르며 생긋 웃었다. 유준은 어이가 없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남아서 다시 돌아보려는 순간 영준은 눈썹을 움직이고 입을 내밀었다. 이 정도를 가지고 안 되는 건가? 계속 이쪽을 보자 영준은 동선에게 입을 맞췄다.
“약은 됐어.”
“해열제 먹어야지.”
“아니.”
영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먹는 약이 엄청 많아서 힘든데 무슨 약을 더 먹어. 이 정도 가지고 약을 먹기는 싫어.”
“하여간.”
“왜?”
동선은 영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영준의 곁에 앉아서 그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그냥?”
동선은 싱긋 웃었다. 열을 식히려는 거였으니까.
“부끄러워.”
“왜?”
“그래도.”
“다 한 사이에.”
“이건 달라.”
동선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영준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래?”
“응.”
영준이 몸을 자꾸만 가리려고 하자 동선은 잠시 그런 그를 보고 한숨을 토해내더니 이내 장난스럽게 웃고 자신의 옷을 먼저 벗었다.
“뭐 하는 거야?”
“이제 안 부끄럽지?”
영준은 입을 내밀었지만 더 이상 저하하지 않았다. 동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물수건으로 계속 영준의 몸을 닦았다. 이제 살 하나 남지 않아서 깡마른 그의 몸을 가만히 닦아냈다.
“그런 약도 안 먹으려고 해요?”
“네.”
“말도 안 돼.”
은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약은 먹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지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러게요.”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동안 영준이 마르는 것만 보고 동선이 마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동선 씨도 좀 쉬어야 해요.”
“아니요.”
“지금 지쳤어.”
“아닙니다.”
동선은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먼저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지금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백동선 씨가 더 괜찮아야. 더 건강해야지만 저 녀석을 지킬 수가 있다는 거 모르는 거 아니죠?”
“압니다.”
동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 하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영준을 지키지 못할 거였다. 게다가 모두가 다 영준을 흔들려고 하는 사람들로만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은수 씨가 중요한 거죠.”
“아니요.”
은수는 힘을 주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이 카페. 카페 하나를 지켜주는 것. 이것 하나 정도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장사 안 되는 거 알죠?”
“아. 압니다.”
방송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은수는 손을 내밀어 동선의 손을 잡았다.
“그러라고 한 말 아니에요.”
“하지만.”
“나도 동선 씨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는 이야기로 한 거였어요. 혼자서 다 견디지 말아요.”
“고맙습니다.”
동선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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