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장
“다 네 놈 때문이다.”
“네.”
서혁의 원망에 동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쉬어야 해.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그 녀석을 부추겨서 자꾸 움직이게 만드는 거냐?”
“할 수 있으니까요.”
“뭐라고?”
동선의 대답에 서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모으는 서혁을 보며 동선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준은 이런 모든 것들을 견뎌야 하는 거였다.
“그럼 이만.”
“뭘 바라는 건가?”
“네?”
“돈?”
동선은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돈이라니. 그런 게 중요한 거였다면 그냥 공사에 다니는 쪽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도대체 저를 어떻게 보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제 뒷조사를 하신 것으로 보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건방진.”
“네.”
동선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그 녀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할 때. 점점 더 지칠 때. 그 순간 자꾸만 회장님이 그 녀석을 가엽게 마드십니다.”
“가엽다니!”
서혁은 발끈했다. 단 한 번도 영준을 부족하게 키우지 않았다. 그 아이는 가여운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모든 걸 다 해줬다.”
“그렇지만 혼자 두셨죠.”
동선의 대답에 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동선은 그런 서혁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냐?”
“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아. 뭐.”
동선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가진 게 많은 거 같습니다.”
“뭐라고?”
“적어도 아드님 마음을 확실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그리 적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도대체 뭐가 두려우신 겁니까?”
동선은 물끄러미 서혁의 눈을 응시했다. 서로의 시선이 부딪치고 그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서혁이었다.
“후회할 걸세.”
“이미 그 말씀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요.”
“아니.”
“그러니 그만 두시죠.”
동선은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더 강하게 나가는 것. 이것이 서혁으로부터 영준을 지키는 거였다.
“더 하면 어떻게 할 건가?”
“후회는 회장님이 하실 겁니다.”
“뭐라고?”
동선의 말에 서혁은 목소리를 높였다. 동선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와 대비가 되는 모습을 보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요.”
“안 있으면.”
“그 녀석을 더욱 부추기죠.”
“뭐라는 거야?”
서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안 그래도 저를 더 아끼는 그 녀석. 더 흔들 거라는 말입니다. 그거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죠.”
동선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다가 곧바로 이를 드러낼 정도로 밝게 웃었다. 그리고 바로 모든 표정을 지우고 서혁의 눈을 응시한 후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서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새끼들.”
이제야 겨우 두 사람이 왜 연인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 서혁이었다. 둘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그 녀석이 너 많이 걱정하는 거 알지?”
“알아.”
“김영준.”
“안다고.”
영준은 은수의 눈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하루라도 더 살아.”
“어?”
“어제도 회장님에게 다녀왔어.”
“무슨?”
영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게 사실이야? 나에게 아무 말도 없었는데.”
“그게 뭐가 좋은 일이라고 너에게 말해? 그거 웃긴 거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네가 그 사람을 지켜줄 거면.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더 줄 거면 하루라도 더 살아. 그게 옳은 거야.”
은수의 말에 영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더 사는 것. 그건 비단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치료를 해본다고?”
“네.”
서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왜 나에게 말하는 거냐?”
“그러게요.”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살짝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가 놓았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버지. 회장님 뿐이었으니까요.”
“해줄 것?”
영준의 고백에도 서혁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준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네 의사에게 말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해줄 게 없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영준의 입에서 들린 말은 서혁에게 더욱 충격이었다. 서혁의 얼굴은 굳었다.
“무슨.”
“아시잖아요.”
“아니.”
“부탁드립니다.”
서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서혁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른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복잡한데 서혁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였다. 지금 자신과 아버지라고 불러도 될지. 아니면 안 될지 모르는 사람은 시험대에 오른 거였다.
“내 계좌는 왜?”
“돈 주려고.”
“뭐?”
영준의 말에 동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네가 유언장에 네 이름만 적어 놓기는 했는데 말이야. 이것만 가지고는 영 불안해서 말이지. 아버지가 이걸 가지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르는 거고. 더 확실하게 돈을 주고 싶어서 그래.”
“뭐라는 거야?”
동선은 유난히 긴 하품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제대로 된 일도 구하기 어려울 거야.”
“괜찮아.”
“백동선.”
많이 지친 모습. 영준이 자신을 보고 싱긋 웃는데 어딘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어 동선은 그 눈빛을 피했다.
“그러지 마.”
“뭐가?”
“너 더 안 보고 싶어지니까.”
“뭐래?”
뭔가 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반드시 금전적일 이유는 없어.”
“그럼 내가 뭘 해줘야 하는 한데?”
“하루라도 더 있어줘.”
“싫어.”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매달릴 사람도 없었고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거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뭐?”
“정말 싫어.”
영준의 반응에 동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회사 통하면 알 수 있어.”
“그럼 그렇게 해.”
“야.”
“내가 어떻게 그래?”
동선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거라고 생각해? 네 돈. 그거 하나 보고 너에게 이러는 거라고 보지 않겠어? 나 그런 거 싫어. 나 네 돈 보고 여기에서 이러는 거 아니야. 그거 너도 알잖아.”
“알아.”
“그러니까.”
“이래.”
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서 가만히 동선의 손을 잡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네가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그대로 행동을 해야 하는 거라고. 나중에 네가 힘이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게 그래?”
“응.”
영준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내가 너를 놓은 그 이유. 내가 돈이 없어서 그랬어. 나에게 힘이 없어서 그런 거야.”
“지금은?”
“다르지.”
영준은 어깨를 으쓱하고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비틀거렸다. 동선은 재빨리 일어나서 그를 잡았다.
“미친.”
“좋다.”
영준은 동선의 품에 기댔다.
“편안해.”
“미쳤어.”
“고마워.”
“너 정말.”
“나를 위한 거야.”
동선은 가만히 영준을 응시했다.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동선을 밀어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 약 좀.”
“무슨 말이야?”
“약.”
영준이 손을 내밀자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진통제와 물을 건넸다. 영준은 입에 약을 넣고 삼키고 나서 겨우 눈을 떴다.
“내 마음 편하려고.”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응.”
“이기적인 새끼.”
“알아.”
결국 이 모든 것을 결정한 것도 자신이었다. 동선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영준에 오기로 한 이상 마주할 일이었다.
“미안해.”
“아니.”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영준이 사과를 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망설인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저쪽이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이쪽에서 더 용기를 내었으면 될 일이었다. 견디는 것. 그게 가장 자신이 잘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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