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장
“아무 방법도 없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의사의 말에도 영준은 덤덤했다.
“어차피 살려달라고 지금 선생님을 찾은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살려달라고 한들. 선생님게서 저를 살리실 기술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저 하루라도 더 여기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게 불가능합니다.”
너무나도 간단한 말.
“미안합니다.”
“아니.”
의학이 그렇게 발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멀쩡한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우스운 거였다.
“항암치료라도 해야죠.”
“안 될 겁니다.”
“뭐라고요?”
“그걸 하면 정말 지칠 겁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이렇게 하는 거지?
“선생님.”
“저는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실이고요. 하루라도 더 빠르게 스스로를 받아들이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받아들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세상에 어떤 의사가 무조건 환자가 죽을 거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제가 정말로 더 할 것이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없다니.”
영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라이브요?”
“네. 무조건.”
은수의 말에 영준과 동선이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하지만.”
“무조건 라이브여야 해요.”
은수는 검지를 들고 단호히 말했다.
“무리야.”
“뭐가?”
“라이브.”
영준의 말에 은수가 고개를 들었다.
“왜?”
“어?”
“라이브라는 거. 그거 되게 어려운 거잖아. 그거 댓글 관리를 하는 것도 어려운 거고.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그거 너도 모르는 거잖아. 그런 거 전부 다 수습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버지가 그냥 계실 거 같니?”
“무슨?”
은수의 질문에 순간 영준의 몸이 굳었다.
“뭐라고?”
“우리가 편집한 영상을 올리면. 그거 회사에서 막을 수 있을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하기 전에 미리 정리를 해야 하는 거고. 그거 하려면 무조건 라이브. 무조건 생방으로 가야 해.”
“생방송.”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왜?”
“그 녀석 다치게 할 수 없어.”
“그럼 네가 해.”
“어?”
영준이 놀란 표정을 짓자 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너는 그런 거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동선 씨 지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도 해야 하는 거고.”
“내가 거기에 나서게 되면 다들 내가 보라는 걸 보지 않고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거야.”
“그럼 안 돼?”
“어?”
“그럼 안 되는 거야?”
“아니.”
그럼 안 되는 걸까? 그런 것을 들어도 되는 거 같은데. 도대체 뭐가 더 중요한 것인지 어려운 순간이었다.
“김영준. 네가 지금 하려는 건 뭘 하려는 거야? 그냥 심심해서 회사에 한 번 질러보려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더 뭔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기 위해서는 너 뭐라도 해야 해.”
“뭐라도.”
은수의 지적에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 말이 옳을 거였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수 똑똑해.”
“그걸 몰랐니?”
“아니.”
은수의 말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잘 알았지.”
“뭐래?”
은수는 씩 웃으면서 살짝 영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바로 미소를 지우고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뭐야?”
“뭐가?”
“야.”
“뭐?‘
“너 지금.”
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영준은 자꾸만 자신에게 뭔가를 속이는 중이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건데?”
“뭐가?”
“너 지금.”
“뭐?‘
“야.”
“왜?‘
“너 정말.”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영준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다가 동선을 찾았다. 영준은 다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
“나 치료를 해보려고 했어.”
“어?”
은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행이다.”
“다행?”
“다행 아니야?”
“응. 아니야.”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행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거니까.
“나 정말로 아무 것도 못 한 대.”
“미국이라도.”
“미국?”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수는 영준의 팔을 문질렀다.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정말로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고마운 거였고. 이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거였으니까.
“고마워. 정말.”
“당연한 거지.”
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한다고?”
“응.”
“안 돼.”
“왜?”
“아니.”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영준이 나선다면 결국 모두가 더 그에게 관심을 가질 거였다.
“이미 이야기가 끝이 난 거 아니었어?”
“아니었어.”
“야.”
“정말 아니었어.”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동선의 손을 가만히 잡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거 내가 할 거야. 그리고 이거 내가 하는 게 맞는 거야. 내가 무조건 하려고 하는 거. 이거 성공할게. 그러니 나를 믿어줘.”
동선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믿음이 안 가?”
“어?”
“나 할 수 있어.”
“아니.”
동선의 말에도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야.”
“그게 옳을 겁니다.”
“뭐라고요?”
기민의 말에 동선은 눈썹을 움직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뭘요?”
“자꾸 이런 이야기 그만 두시죠.”
기민이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동선이 그를 잡았다.
“뭐 하자는 거죠?”
“네?”
“이봐요. 기민 씨. 내가 아무리 제대로 된 상사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제가 어떻게 대해주시기 바라시는 겁니까? 저는 부회장님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미친.”
“왜들 이래요.”
정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러지 마요.”
“미친 새끼 아니야.”
“뭐라고 하셨습니까?”
동선의 말에 기민은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영준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을 것은 없었다.
“저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실 권리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런 발언은 자제하시죠.”
“아직도 부회장 좋아하나?”
“뭐라고요?”
“그런 거라면 관둬.”
동선의 말에 기민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돌아섰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저기.”
“네?”
정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에요?”
“뭐가요?”
“기민 씨가.”
“아.”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그렇게 유치하게 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정이 씨는 이에 대해서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어느 정도는 상황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기민 씨 좋아해요?”
“네?”
정이의 얼굴이 순간 붉어지자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걱정을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할 이유는 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이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동선의 굳은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합니다. 다 말을 해주지 못해서.”
“아니요.”
정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복잡한 사정들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 소설 완결 > 너는 없었다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61장] (0) | 2018.12.27 |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60장] (0) | 2018.12.26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8장] (0) | 2018.12.21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7장] (0) | 2018.12.21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6장] (0) | 201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