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장
“당신에게 이게 의미가 있나?”
“아니.”
“그런데 왜 이래?”
동선의 짜증에 유준은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그거 지금 미친 짓이야.”
“알아.”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준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신기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이게 미친 것인지 알고 있어. 나도 어떤 건지 아니까.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서 하는 거야.”
“해야 하는 일.”
유준이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럴 사이 아니지 않나?”
“그렇지.”
도대체 왜 이런 놈들만 만난 건지. 모두 다 이기적인 인간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떠난 건 너야.”
“그래.”
“그런데 이래?”
“응.”
이기적인 새끼. 다들 이런 식이었다. 영준도 결국 이런 식으로 온 거였으니까. 이상한 녀석들이었다.
“나는 갈게.”
“다시 기회를 줘.”
“기회?”
어이가 없으니 화가 나지도 않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지?”
“너도 나에 대한 미련이 있으니까 이 자리에 나온 거 아니야? 아예 안 나오면 되는 거 같은데 말이야.”
“미친 거 아니야?”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이 자리에 나온 것에 대해서 다시금 후회의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갈게.”
“가지 마.”
동선은 그냥 가려고 하자 유준은 그의 손을 잡았다. 동선은 그 손을 모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지옥이네.”
“뭐?”
“이 순간.”
동선은 거칠게 유준을 밀어냈다.
“이제는 연락하지 마.”
“그 녀석 어차피 죽는다며?”
순간 동선의 얼굴에 살기가 스쳤다.
“어디에서 들은 거야?”
“이쪽에 소문이 자자해.”
소문? 동선은 그런 유준을 더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그걸 몰랐어?”
“어?”
너무나도 바로 대답을 하는 이쪽 친구를 보면서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다들 이걸 어떻게 아는 건지.
“다 안다고?”
“그게 너인지는 몰랐네.”
“아니.”
“유명해.”
“유명하다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도대체 왜 그런 소문이 돌고 어디에서 시작을 한 건지.
“뭐라고?”
“응. 그냥? KJ 부회장의 숨겨진 애인? 그 정도 소문은 돌고 있어. 이거에 대해서 더 걱정은 하지 마.”
“더 자세한 건?”
“다행히 없어.”
“그래.”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이상 영준을 지치게 하는 소문이 더 이상 도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네 구 남친이 어떻게 안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거 너인지 나도 몰랐으니까.”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자신은 영준에게 덫이었다. 힘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만 힘을 빼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를 그렇게 다녀와?”
“어?”
영준이 자신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선은 씩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안았다.
“왜 그래?”
“내 옆에 없지 마.”
“그래.”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준을 품에 곽 안았다.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하는 거였다.
“긴장 돼?”
“아니.”
영준이 물을 마시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것을 보며 동선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웃어?”
“네가 좋아서.”
“그거야 당연하지. 나도 너를 좋아하니까.”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에게 입을 맞췄다.
“힘들면 바로 말해.”
“응.”
영준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미리 진통제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다음 1등을 했다고?”
“응. 실시간 검색어 1위 찍었어.”
“대박이야.”
네 사람은 서로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더 알아간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이 나쁜 거 같지 않죠?”
“그렇죠. 다른 것도 관심이 없고.”
영준 개인의 일에 대해서 질문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빠르게 일 자체에 대해서 넘어갔다.
“피곤하지는 않아?”
“조금 피곤해.”
“그럼 들어가자.”
동선이 영준을 부축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사무실 문이 열렸다. 서혁은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그대로 손을 들었다. 영준이 눈을 감는 순간 동선이 그것을 막아서며 영준의 앞에 섰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너는 뭐 하는 새끼야?”
“지금 여기에서 이러시는 거.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시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그만 두시죠.”
“나 KJ 회장이야. 그런데 내가 지금 이런 걸 그냥 넘어가라고? 이 미친 새끼가 지 혼자 뒤지면 뒤지는 거지! 어디 배은망덕하게 제 아비를 궁지로 몰아. 내가 너 가은 것의 아버지라는 게 부끄러워.”
“그러세요?”
서혁의 가시 돋친 말에도 영준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지금 건드린 것이 제대로 아버지의 역린인 모양이에요. 저에게 와서 이러시는 것을 보면.”
“지금 네가 하는 그 일이 결국에 너를 죽일 수 있다는 걸 몰라? 너까지 위험에 빠지게 될 거다.”
“이미 위험합니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아버지의 덕 같은 것을 볼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식을 주신 이유. 이건 아버지가 바른 사람이 되기 바라셔서 그러신 거라고요.”
“바른 사람?”
영준의 대답에 서혁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영준ㅇ르 응시했다.
“너 같은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너의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지금 너로 인해서 이 모든 문제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정말로 몰라?”
“네. 모릅니다.”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서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풀고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해도 지금 자신의 아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밥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 네 놈이 하는 그 일. 그게 도대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아라. 바로 회사에 문제가 생길 거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럴 거다.”
서혁은 단호했다.
“무조건.”
서혁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영준은 그대로 자리에 무너졌다. 동선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정말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영준의 물음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생각을 해도 이게 잘못인 것 같기도 해서. 아버지의 말처럼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동선은 다시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영준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잘 하고 있어. 그러니까 다른 것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네가 한 거. 그거 옳은 일이야.”
“고마워.”
“고맙긴.”
동선과 영준은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그 온기.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락?”
“일단은 그래.”
“미친.”
동선의 말에 영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서킷 브레이크. 주가의 미친 폭락을 겨우 나라에서 막은 거였다.
“이게 말이 돼?”
“그러니까.”
사무실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자신들이 한 일의 무게 같은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빠르게 반응이 오고 거칠게 올 줄 몰랐기에 모두 반응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을 한 거야.”
“알아.”
동선은 영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무 나쁜 생각은 하지 마. 너는 잘 하고 있어. 김영준. 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잘 했어.”
“맞아요.”
“맞습니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모두 고마워요. 나는 좀 쉴게.”
“그래.”
동선이 부축하려고 하지만 영준은 손을 흔들었다.
“나 혼자서 괜찮아.”
“정말?”
“응.”
“하지만.”
“괜찮아.”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영준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김영준. 너 괜찮은 거지?”
“그럼.”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어. 나도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는 걸.”
“그래.”
“그러니까 괜찮아.”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그런 그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지만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했다. 다들 일단 모르는 척 하는 것. 그게 지금의 선택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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