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너는 누구니?
“선생님!”
“어? 네가 어쩐 일이야?”
윤호가 싱긋 웃으며, 손에 비닐봉투를 들어보인다.
“선생님 입 궁금하셨죠?”
“뭐, 조금 그렇기는 했지.”
민정이 싱긋 웃는다.
“어서, 들어와. 덥다.”
“네.”
“어휴. 정말 덥네요.”
그제야 민정은 윤호의 등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서 씻어.”
“네?”
“무지 덥잖아.”
“아.”
그제야 윤호는 자신의 몸이 땀 범벅인 것을 본 모양이다.
“그래도 되요?”
“물론.”
헤민이 싱긋 웃었다.
“가만 보자.”
민정의 자신의 옷장을 들여다본다. 윤호에게 맞을만한 것이 있으려나?
“아!”
자신이 입으려던, 조금 큰 박스티가 보였다. 이거면 윤호에게 아슬아슬하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킥.”
조금 작으면 어때? 민정은 작은 옷을 입고 나타는 윤호를 생각하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우와.”
윤호는 욕실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용기가 이렇게 많아?”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 초록색 갖가지 목욕용품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장미, 민트, 초콜릿?”
향도 가지가지였다.
“나도 한 번 써볼까?”
윤호가 싱긋 웃는다.
“바지는. 어?”
자신이 입기에는 큰 66사이즈의 바지가 하나 있었다.
“이제, 또 뭐?”
갑자기 민정의 얼굴이 붉어졌다.
“소, 속옷은 그냥 입겠지. 하, 하하.”
“우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거품 입욕제를 잔뜩 푼, 윤호는 이것이 진짜 거품 목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좋다.”
왜 여자들이 거품 목욕을 하는 지 알 것 같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헤헤.”
윤호는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민정이 욕실 앞에서 어슬렁거린다.
“나올 때가 됐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안 나오니?”
“네? 나가요!”
후다닥하는 소리.
‘퍽’
“으악!”
‘쾅’
“악!”
‘철푸덕’
“꺄악!”
‘탁’
“끄윽.”
각종 기괴한 소리가 욕실로부터 들려왔다.
“윤호야! 너 괜찮은 거야?”
“네.”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를 윤호가 내뱉었다.
“괘, 괜찮아요.”
“그, 그래.”
민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으.”
윤호가 무릎을 만지며, 일어났다. 허리도 너무 아프다. 분명 여기저기 멍이 들 것 같다. 하여간, 칠칠지 못한 건, 집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쪽팔려서 어디 숨고 싶은 심정이다.
“히.”
일어나서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미소가 지어진다. 너무 잘생겼다.
“역시, 이정도는 되야지, 선생님의 연인이 될 자격이 있지.”
윤호가 싱긋 웃는다.
“선생님. 저, 저기.”
“아! 옷 욕실 앞에 내다놨거든, 그거 입어.”
“네.”
윤호가 손만 내밀어서 옷을 집어간다.
“!”
윤호가 울상을 짓는다.
“이, 이게 뭐야? 너무 작잖아!”
민정에게는 너무 큰 66이라고 하지만, 항상 105를 입는, 윤호에게는 너무 작다.
“하아.”
게다가 민정이 입으라고 준 바지는, 말 그대로 안습이다. 허벅지에 끼어서 들어가지도 않는다.
“이게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걸 입고는 나갈 수 없다. 정말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휴.”
윤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킥.”
민정은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 옷을 입고.”
“하아.”
윤호가 혼자 거울을 보고 투정을 부린다.
“이건 정말 아닌대. 무슨 시트콤 찍는 것도 아니고. 하아.”
윤호가 욕실을 두리번 거린다.
“!”
윤호의 눈에 가운이 보인다.
“저거라도 입을까?”
윤호가 조심스럽게 가운을 품에 대 보았다.
“우와.”
굉장히 품이 넓었다. 윤호가 입기에도 넉넉한 사이즈였다.
“그, 그런데.”
너무 짧다. 짧아도 너무 짧다. 아슬아슬하게 내려온다. 마치 여자들이 입는 나노미니스커트를 걸친 기분이다.
“하아.”
그래도 어쩌겠는가? 쫄쫄이를 입고, 민정의 눈 앞에서 쇼를 하기는 싫다.
“그래, 이게 더 낫잖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윤호다.
“킥”
민정은 윤호를 생각하면서 혼자 웃는다.
“너, 안 나와?”
“나, 나가요.”
윤호가 허둥지둥 댄다.
“킥.”
너무 귀여울 것 같다.
‘벌컥’
욕실 쪽을 바라보던 민정의 눈이 커진다.
“켁.”
“괘, 괜찮아요.”
윤호가 황급히 와서 민정의 등을 두들겨준다.
“켁, 너 왜, 쿨럭. 그 가운은, 쿨럭.”
가운만 입은 윤호를 보고, 사례가 제대로 걸려버렸다.
“옷이 너무 작은 걸 어떡해요? 그거 입으면 웃기잖아요.”
“그, 그래도. 쿨럭.”
너무 야하잖아! 민정은 이 말을 애써 목으로 집어 넣는다.
“하, 하하.”
“놀랐어요?”
“아, 아니.”
“솔직히 이거 입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이상해요? 그럼 다시 그 옷 입을까요?”
윤호가 다시 욕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민정이 잡는다.
“아, 아니. 입었는데 왜 갈아입어. 옷이나 세탁기에 넣어, 탈수까지 시켜가지고 입고 가야지.”
“네.”
윤호가 싱긋 웃으며 욕실로 갔다.
“너 뭐 마실래?”
“음, 주스요.”
“알았어.”
민정이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를 연다.
“아!”
“왜요?”
“체리, 사과, 오렌지, 포도, 어떤 거?”
“네?”
윤호가 성큼성큼 민정의 옆에 와서 선다.
“무슨 주스가 이렇게 많아요?”
정말 갖가지 주스가 가득 채워져 있다.
“네, 네가 주스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저번에 와서, 주스 없냐고 해서. 호, 혹시 또 오면, 먹을 일 생길까봐.”
“진짜요?”
“어.”
“선생님.”
“윤호야.”
윤호가 이글거리는 눈길로 민정을 바라보았다.
“우, 우리면 안 돼.”
“선생님.”
“윤호야.”
윤호가 민정을 으스러 지듯이 껴안는다.
“윤호야.”
“선생님, 사랑해요.”
“나도!”
“선생님?”
“어?”
윤호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민정을 바라본다.
“이거 썩은 거 아니에요?”
“어?”
상상속이랑 너무 다르다.
“써, 썩기는.”
“봐요? 유통기한 지났잖아?”
진짜다.
“선생님, 이게 뭐에요?”
“아, 아니.”
윤호가 싱긋 웃는다.
“그냥 앉아계세요. 제가 저녁 해드릴게요.”
윤호가 아까 내버려두었던, 비닐봉투를 뒤적거린다.
“?”
햄, 파, 양파, 어묵, 당면
“뭐하게?”
“부대찌개요.”
“부대찌개?”
민정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그럼요.”
윤호가 싱긋 웃는다.
“선생님은 내가 커피 만들고, 샌드위치 만들고, 토스트 굽고, 와플 만들고, 스파게티 만드는 정도 밖에 못 봤죠?”
“어.”
“저 한식도 잘 하고, 일식도 잘 하고, 중식도 배웠어요.”
“진짜?”
“내일 점심은 메밀소바해드릴까요?”
“됐어.”
민정이 싱긋 웃는다.
“그런데 그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선생님 처럼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안 가져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치.”
윤호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요리해?”
“아니요.”
“왜?”
“귀찮잖아요.”
“그래? 그럼 나한테는 왜 해주는데.”
윤호가 칼을 내려놓고 민정에게 걸어왔다.
“?”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헤민의 귀에 입을 가져간다.
“사랑하니까요.”
“!”
민정의 얼굴이 붉어진다.
“자, 장난하지마.”
“장난 아닌대.”
윤호가 헤헤 거리며 걸어간다.
“저 선생님 사랑한다니까요.”
“!”
“선생님은 아닌가봐요?”
“아, 아니, 아니야.”
“에? 부정의 부정?”
윤호가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흠.”
“선생님.”
“그래, 나도 너 좋아한다!”
민정이 눈을 질끈감고 소리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해요.”
어느새 다시 윤호가 민정의 앞에 와 있다.
“사랑해요.”
“나도.”
“진심이에요.”
“응.”
“지켜줄게요.”
윤호가 민정을 살포시 안았다.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해줄게요.”
“고, 마워.”
윤호가 민정의 입술을 갑자기 덮쳤다.
“!”
민정의 스르르 눈을 감았다.
“사랑해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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